"최고가격제 두 달, 4조원 손실…종전 후 유가 하락땐 손실 눈덩이"
최고가격제 시행 2달째…손실 눈덩이
업계 “시장가격 기회비용 반영해야”
정부는 원가 기준 손실 보전 검토 이견
[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국제유가 급등과 정부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국내 정유업체들의 손실 규모가 4조원에 육박할 거란 분석들이 나온다. 최고가격제는 말 그대로 석유제품의 상한선을 지정하는 것인데, 이 상한선이 없었을 경우에 정유사들이 4조원은 더 벌 수 있었을 거란 얘기다.
정부는 지난 3월13일 중동발 고유가로 석유 최고가격제를 실시하기로 하면서 이에 따른 손실을 정부 재정으로 보전해주기로 했다. 이를 위해 4조2000억원의 예비비도 편성해놨다. 정부는 이달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발생한 정유사들의 손실액 보전을 검증하는 최고액 정산위원회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법률, 회계, 정유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정산위원회를 가동해 여러 요소를 살핀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손실보전 기준이다. 업계에서는 상한제가 없었을 때의 기회비용을 손실로 따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과연 정부가 이를 얼마나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원유제품 원가 기준으로 손실 규모를 계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다. 정유사가 석유제품을 판매했을 때 그 판매가가 원가를 밑돌 때 그 차액을 손실로 보겠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손실액을 추산해서 정부에 제출하면, 이를 검토해 최종적으로 보전액을 확정하는 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유업체들마다 보유한 원유 재고량과 관리 방법이 다 달라 원가를 산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 한 마리를 정육해 다진 고기를 만든 뒤 부위별 원가를 따지기 어려운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최고가격제 시행 기간이 길어질수록 손실보전 규모를 둘러싼 잡음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미국과 이란의 전쟁 발발로 국제유가가 치솟자 국내 유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지난 3월13일부터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다. 지난 7일 5차 최고가격을 동결하면서 휘발유 가격은 리터(ℓ)당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으로 유지됐다. 2차 발표 때 유종별 가격을 ℓ당 210원을 인상한 이후 5차까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최고가격제가 단기간이 끝나지 않을 경우 정유사들의 손실 규모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유사들의 1분기 호실적 소식이 들려오며 오히려 불안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적은 이미 전쟁 전에 유가가 낮았을 때 들여온 원유를 바탕으로 제품을 판매한 것이 반영된 결과다. 그런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전쟁 통에 폭리를 취했다는 비판이 형성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에쓰오일은 올해 1분기 1조2311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전년 대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GS칼텍스도 1조6367억원의 대규모 이익을 냈으며, SK에너지도 1조283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HD현대오일뱅크의 영업이익은 9335억원으로 집계됐다.
유가의 급격한 하락이 예상되는 것도 문제다. 올해 1분기 정유사들이 호실적을 낸 배경 중 하나는 바로 유가 폭등으로 인한 제품가격 상승이 자리한다. 저렴한 가격에 사온 원재료로 제품을 만든 뒤 비싼 가격에 파는 ‘래깅효과’가 발휘된 것이다. 그런데 유가가 하락하면 비싼 값에 산 원재료로 제품을 만든 뒤 싼 값에 팔아 손해를 보는 ‘역래깅효과’가 불가피하다. 물론 앞으로 유가가 하락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번 사태가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발생한 만큼, 양국이 종전에 합의할 경우 유가가 빠르게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기회비용을 보전도 안 해주면서, 그렇다면 유가가 떨어져 발생한 손해는 어떻게할 거냐”라는 볼멘 소리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회계상의 대규모 재고평가손실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재고평가손실이란 재고자산의 가치가 취득원가보다 낮아졌을 때, 그 차액을 비용으로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백철우 덕성여자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정유사가 입은 실질적 손해는 회계상 원가와 통제가격의 차액이라기보다는, 국제시장에 수출하거나 시장가격으로 판매할 수 있었던 기회를 포기하며 발생한 기회비용에 가깝다”고 말했다.
김성진 (jin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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