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외로움 처방전’이 부른 변화…“은둔 청년, 문밖에 나서다” [건강한겨레]

푸르른 5월은 가족과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시기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이어지며 가족, 지인 간의 만남과 연락이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활기찬 계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의 흐름에서 비껴난 사람들에게 5월의 햇살은 오히려 일상 속 외로움을 더욱 또렷하게 비추는 조명이 되기도 한다.
최근 1인가구의 급증과 관계 단절 등 급격한 사회구조 변화 속에서 외로움과 고립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심각한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 2025년 조사를 보면, 깊은 외로움을 겪는 고립 청년은 약 19만 명, 6개월 이상 집 안에 머무는 은둔 청년도 약 5만 명에 달한다. 청년뿐만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중장년층과 노년층 은둔 가구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진다.
이에 서울시는 이러한 외로움·고립·은둔을 사회가 함께 대응해야 할 중대한 공공의 과제로 선포했다.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외로움을 전면적 정책 의제로 다룬 ‘외로움 없는 서울’ 프로젝트가 바로 그것이다. 시행 2년차를 맞이한 올해, 서울시의 외로움 처방전은 지난 1년의 객관적 성과를 바탕으로 시민의 일상에 한층 더 깊고 촘촘하게 스며들며 진화하고 있다.

새벽 3시, 누군가 내 말을 들어준다면…‘외로움안녕120’
가장 돋보이는 변화는 시민이 언제든 편하게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소통 창구의 안착이다. 지난해 4월 시작된 ‘외로움안녕120’은 서울시 외로움 대응 정책의 든든한 출발점이 됐다. 365일 24시간 언제나 열려 있는 이 상담 창구는 서울시 다산콜센터(120)로 전화를 걸어 안내에 따라 숫자 ‘5번’을 누르면 전문 상담원과 바로 연결된다.
문을 연 지 1년 만에 누적 상담 건수는 약 4만 건, 하루 평균 125건에 이른다. 주목할 만한 점은 전체 상담의 약 60%가 밤과 새벽 시간대에 집중됐다는 사실이다. 고요한 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립감이 깊어지는 시민들의 현주소가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이용자 대부분은 복지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어서’ 수화기를 들었다고 답했으며, 1인당 평균 상담 횟수는 4.8회였다. 이는 한 번의 통화가 단발성 대화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정서 지원과 유대감 형성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서비스 만족도는 5점 만점에서 4.6점에 달했다.
이에 올해 하반기부터는 기존의 전화와 카카오톡 채팅 상담을 넘어 ‘대면 상담’까지 전격 확대 추진한다. 익명의 목소리로 시작된 온기가 사람 간 지속적인 관계 맺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상담 이후의 관리 체계를 대폭 고도화한 것이다.

문턱 넘으면 쌓이는 포인트, 참여형 안부 확인 적립금
마음을 달래는 상담이 첫 단추라면, 두 번째 과제는 닫힌 방문을 열고 사람들을 다시 일상으로 나오게 하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올해부터 시민의 능동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참여형 정책’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대표적인 것이 ‘참여형 안부확인 적립금’ 사업이다. 고립·은둔 상태에 놓인 시민이 동네 복지관을 방문하거나 가벼운 상담, 간단한 활동에 참여할 때마다 적립금(포인트)을 제공하는 제도다. 문밖을 나서 복지관에 도장을 찍는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소액이 적립되고 활동 단계가 높아질수록 적립금도 커진다. 일정 기간 꾸준히 참여해 모은 포인트는 지역 상품권 등으로 전환해 생활에 보탬이 되게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포인트를 받기 위해 복지관을 찾았던 발걸음이 점차 상담과 프로그램 참여로 이어지는 ‘외출의 선순환’ 효과는 지난해 일부 지역 시범 사업을 통해 뚜렷하게 증명됐다. 이에 서울시는 올해부터 시범 사업 딱지를 떼고 대상 지역과 운영 규모를 서울시 전역으로 전면 확대해 정규 사업화했다. 과거 지원 물품을 집 앞으로 배달하던 수동적 복지에서, 시민이 직접 움직이도록 돕는 능동적 복지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작은 성취가 모여 활기찬 일상으로, ‘365 서울챌린지’
반복되는 밋밋한 일상에 작은 쉼표와 활력을 더해주는 생활 밀착형 시도도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시민 스스로 활동을 선택하고 수행하는 참여형 프로그램 ‘365 서울챌린지’가 그것이다. 온라인 플랫폼에 접속해 자신만의 ‘빙고판’을 만들고 미션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이 챌린지는 거창한 목표를 요구하지 않는다. ‘공원 산책하기’ ‘전통시장 방문하기’ 같은 외부 활동은 물론, ‘가족이나 지인에게 안부 전화하기’처럼 마음만 먹으면 일상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간단한 행동도 포함돼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지난해에는 약 8만 명의 시민이 참여하며 애초 목표치를 크게 웃도는 돌풍을 일으켰다고 한다.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아무 의욕이 없었는데 밖에 나갈 작은 이유가 생겼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미션이라 부담이 적다”는 긍정적인 후기가 쏟아졌다.
지난해 폭발적인 호응에 힘입어 올해 ‘365 서울챌린지’는 체계적인 기수제로 운영된다. 오는 6월부터 8월까지 1기를 진행하고, 이어 9월부터 11월까지 2기를 가동해 시민들의 지속적인 일상 회복을 도울 예정이다. 이에 더해 올해는 민간기업과 협업한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기획해 시민들에게 더욱 다채롭고 풍성한 챌린지를 선보일 예정이다.

‘외로움’이라는 사회적 질환, 치유의 열쇠는 ‘가장 보통의 일상’
지난 2년간 ‘외로움 없는 서울’ 정책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맞물려 진화해왔다. 캄캄한 고독을 달래주는 ‘외로움안녕120’이 누군가에게 처음 말을 걸 수 있는 안전한 대나무숲이라면, ‘참여형 적립금 사업’은 무거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게 이끄는 다정한 마중물이다. 그리고 문밖으로 나온 일상을 ‘365 서울챌린지’가 건강하게 지속시킨다. 특별할 것 없는 가장 보통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서울시는 매월 19일을 ‘식구일’로 정해 가족 또는 가까운 사람에게 안부 전화를 권하고 있다. 특별한 계기가 없어도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작은 행동이 외로움을 줄이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서울시의 이 모든 정책은 결국 ‘관계의 회복’이라는 단 하나의 도착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고립과 단절이라는 두꺼운 얼음은 행정 기관의 일방적 지원만으로는 결코 깰 수 없다. 시민 스스로 움직여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를 다시 잇는 과정만이 유일한 치유책이다.
윤종장 서울시 복지실장은 “외로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밖으로 나와 짧은 눈인사를 나누는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분명 외로움의 밀도를 낮출 수 있다”며 “외로움은 개인의 탓이 아닌 사회가 함께 보듬어야 할 숙제인 만큼 앞으로도 시민이 일상에서 언제든 기댈 수 있는 따뜻한 접점과 연결망을 끊임없이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와 고립의 벼랑 끝에 서기 전에, 120번을 누르고 동네 복지관을 찾아가보고, 소소한 나만의 빙고 칸을 채워보는 것. 그것이 올봄, 서울시가 천만 시민의 마음 건강을 위해 처방한 가장 다정하고 강력한 예방약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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