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앞바다에서 우주로…‘평화의 섬’은 어쩌다 우주기지가 됐나

서보미 기자 2026. 5. 14.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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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발사 앞둔 서귀포 강정 가보니
2023년 12월4일 제주 서귀포시 예래동 앞바다에서 군 주도로 고체 연료 우주발사체 3차 시험발사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뤄진 해상 발사다. 연합뉴스

“평화의 섬 제주를 전쟁 인프라로 만들 해상 발사 중단하라!”

지난 4일 낮 12시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해군기지(민군복합형 관광미항) 정문 앞. 바닷바람에 펄럭이는 알록달록한 펼침막 위로 구호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강정 주민, 평화활동가, 연대하러 온 시민들은 군인이 지키고 있는 기지 앞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시를 읽고 노래를 불렀다.

2013년부터 매일 정오마다 이어져온 해군기지 반대 집회에 ‘해상 발사’ 중단 구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약 석달 전부터다. 2월 중순 해군기지 안에서 우주발사체 발사시설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목격되기 시작한 뒤다. 이날도 해군기지와 가까운 해안도로에서는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은 듯한 범섬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회색빛 금속 구조물이 쉽게 관찰됐다.

지난 4일 제주 서귀포시 강정동 제주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강정 주민과 평화활동가들이 해상 발사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서보미 기자

‘우주군사화와 로켓발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롯한 제주 시민단체와 진보 정당은 지난달 방위산업기업 한화시스템(한화)이 제작한 인공위성을 실은 우주발사체(우주로켓)가 제주 앞바다의 바지선 위에서 쏘아올려질 것이라고 추정했지만, 아직 해상 발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제주도 혁신산업국 관계자는 “지난달 예정됐던 해상 발사는 기상 문제로 밀린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발사 날짜는 우리도 한화로부터 통보를 받는데 아직 언제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머잖아 해상 발사가 이뤄진다면 제주 앞바다에서 우주로 날아가는 최초의 ‘제주산 위성’이 탄생하게 된다. 2023년 12월 한화가 개발한 지구관측용 ‘합성 개구 레이더’(SAR) 위성을 실은 군 주도의 고체 연료 우주발사체가 서귀포시 중문 해안으로부터 4㎞ 떨어진 해상에서 처음으로 발사되긴 했으나 탑재된 인공위성은 제주산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번째 해상 발사 때 실릴 위성은 지난해 12월2일 서귀포시 하원동 하원테크노캠퍼스에 문을 연 한화의 제주우주센터에서 제조됐다.

1999년만 해도 제주는 우주기지가 되기를 거부했다. 당시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는 정부가 독자적인 인공위성 발사를 위해 추진하던 우주센터의 유력 후보지로 꼽혔다. 대한민국 최남단인 제주는 남쪽 바다를 향해 우주발사체를 다양한 각도로 쏠 수 있고, 전파 간섭이 적어 위성과 지상 우주센터 간 교신에 유리하다는 점이 부각됐다. 하지만 “국제자유도시이자 평화의 섬 이미지가 손상된다”, “일상과 생업에 피해를 준다”는 제주도와 주민의 반대로 정부 계획은 무산됐다. 2006년 우주과학센터는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들어섰다.

2023년 오영훈 지사가 이끄는 제주도는 ‘우주산업 육성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관광과 농업·어업 중심의 제주 산업 구조를 보완하겠다며 우주항공산업 중심 산업단지인 하원테크노캠퍼스 조성을 추진했다. 2024년 제주도의 요청으로 정부의 기회발전특구(지역의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해 세제·재정 지원이 되는 구역)로 지정된 이곳에는 지난해 말 한화가 앵커기업(주도적인 기업)으로 입주했다.

위성 제조와 발사에서 나아가 위성 관제와 데이터 활용이 가능한 ‘제주형 우주산업 독자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제주도의 목표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일 국내 우주 스타트업 컨텍은 제주시 한림읍 상대리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민간 우주지상국 단지인 ‘아시안 스페이스 파크’(ASP)를 열었다. 위성과 지상 사이에 데이터를 주고받는 이 중계기지에는 컨텍의 안테나를 비롯해 프랑스·이탈리아·미국 등의 저궤도·정지궤도 위성용 안테나 12기가 모여 있다. 이미 2022년 11월부터 제주시 구좌읍 덕천리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정보원이 설립한 국가위성운영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12월2일 제주 서귀포시 하원동에 문을 연 한화시스템 제주우주센터 조감도. 한화시스템 제공

제주도는 민간이 우주산업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에 ‘우주경제’ 거점이 되겠다고 하지만,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제주가 군사기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 위성이 군사·안보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데다 위성을 고체 연료 발사체로 쏘는 방식에도 군사적 의도가 있다고 판단한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보통) 우주발사체에는 액체 연료를 쓰는데 제주 해상 발사 때는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게 의문”이라며 “원래 고체 연료는 연료 주입 시간이 매우 짧기 때문에 유사시 미사일 또는 로켓의 발사 속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주발사체에 위성을 달면 인공위성이 되고, 탄두를 달면 장거리 미사일이 된다”며 “(2022년) 국방과학연구소가 했던 1·2차 고체 연료 발사체 시험을 한화가 이어서 하는 건 단순한 우주의 평화적인 이용을 넘어 ‘이중 용도 기술’(민간·군사 목적 모두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고 덧붙였다.

우주발사 시설이 머무는 해군기지가 있는 강정마을과 발사 바지선이 이동할 수 있는 인근 마을에도 해상 발사는 중요한 문제다. 고학수 강정마을회장은 “(한화와 제주도는) 내후년까지 총 7차례 정도 해상 발사를 한다고 설명했다”며 “해안에서 4㎞ 지점에서 첫 해상 발사를 했을 때는 진동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진동, 소음, 공기 오염 등 어떤 영향이 있는지 보고 앞으로 찬반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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