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280m 옆 ‘비행기 소리’ 풍력발전기…“어지럽고 무서워 약 먹을 지경”
무안 운남면 주민들, 운영사와 분쟁

섬처럼 삼면이 바다인 전남 무안군 운남면. 북쪽에 거대한 육상 풍력발전기 4기가 서 있다. 농사를 짓는 원동마을 이장 송아무개(69)씨의 집은 북쪽 끝 범바위에 있는 1호기로부터 280여m, 그 아래 2호기로부터 300여m 거리에 있다. 발전기들은 2023년 1월부터 상업운전 중이다.
“너무 가까워요. 끊임없이 울리는 소리 때문에… 불면증·우울증으로 약까지 먹을 지경이었다니까요.” 지난달 29일, 송씨는 집 마당을 둘러싼 발전기들을 올려보며 말했다. “낮에 바람개비가 돌면 그림자가 깜빡이는데, 머리가 그걸 따라 도는 것 같아 어지럽죠. 만에 하나 쓰러지면 집을 덮칠 것 같아 무섭고.”
이날 1·2호기는 정비 중이라 돌지 않았다. 대신 4호기로부터 250여m 떨어진 인근 이아무개(90)씨 집에선 지붕에 꽂힌 바람개비처럼 지척에서 발전기가 돌아갔다. 멀리 비행기가 지나는 듯 ‘웅웅’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저 소리를 몇 년 들었어도 익숙해지질 않아. 그런데 뭐 어찌할 방법이 있나….”(이씨)

송씨는 이곳 풍력발전단지를 운영하는 ㅅ회사와 분쟁 중이다. 송씨를 비롯한 발전기 주변 주민 202명은 환경오염 피해를 판단하는 중앙환경조정위원회에 재정(결정)을 신청했다. 그 결과 2024년 7월 위원회는 “저주파소음이 환경 기준을 초과한다”며 202명에게 ㅅ회사가 총 2432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발전기와 가까운 집은 50만원, 그렇지 않으면 10만원 수준이다. 그러나 이 결정에 ㅅ회사는 ‘손해를 배상할 채무가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발전기의 저주파 소음은 사회 통념상 참을 수 있는 정도(수인한도)라는 것이다.
갈등의 핵심은 “너무 가깝다”는 것이다. 송씨 등은 “대한민국에서 거주지로부터 가장 가까운 풍력발전기”라 주장한다. 풍력발전의 이격거리를 정한 법은 없지만, 과거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정온시설에서 1500m 떨어져야 한다’는 권고 지침을 냈다. 지자체들도 조례를 만들었는데, 무안군은 2018년 개정 조례에서 정온시설에서 1500m, 주거밀집지역에서 1000m, 10호 미만 주거지에서 700m 이내에 지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다만 ㅅ회사는 조례 개정 전인 2017년 개발행위허가를 신청했단 이유로 적용을 받지 않는다.
사전에 충분한 협의가 있었다면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사업이 추진되자 주민들은 ‘적어도 1㎞는 떨어져야 한다’며 군청에 진정을 냈다. 인허가 과정에서 여러 행정관청도 “민원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라”며 보완을 요구했다. 2017년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서 영산강유역환경청도 “가급적 정온시설과 최대한 이격해 위치를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가피하면 지역협의체 등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대책을 마련·이행하라”고 했다.


그러나 ㅅ회사는 처음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계획안으로 2021년 개발행위허가를 받아냈다. ㅅ회사는 “입안 당시 적용되던 모든 관계 법령과 지자체 조례상 기준을 준수했고, 관련 행정기관 및 전문 부서의 다각적 기술 검토와 적법한 인허가 승인을 거쳐 확정된 것”이라고 한겨레에 밝혔다. 개발행위허가를 내준 무안군도 이 사업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했다. ㅅ회사는 “발전소 운영 수익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해 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는” 내용의 협약도 맺었다고도 주장한다. 이른바 ‘이익 공유’란 취지다. 협약서를 보면, ㅅ회사는 신흥·원동·내동마을에 15년 동안 해마다 3천만원씩을 지급하기로 했고, 일부는 이미 지급했다.
다만 송씨의 말은 다르다. “몇몇만 부르는 일방적 모임을 열고 ‘설명회’라 했고, 협약서도 전임 이장이 주민들 반대를 무마하는 조건으로 맘대로 작성했다”는 것이다. 실제 이어진 상황을 보면, 협약에 따라 지급한 금전은 ‘이익 공유’나 손해배상보단 ‘사업 협조에 대한 대가’ 성격이 짙다. 실제 ㅅ회사는 지난해 “협조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동마을에 대해서만 협약 해제를 통지했다. 송씨를 비롯한 원동마을 주민이 소송 등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ㅅ회사는 “상생하고자 최선을 다했으나, 지속하는 법적 분쟁과 민원 제기가 협약 체결의 근본 취지를 훼손했기 때문에 취한 합리적 조치”라고 밝혔다.

기업과 다투는 것은 큰 부담이라, ㅅ회사가 제기한 소송에는 송씨 부부와, 발전기에서 380m 떨어진 새우양식장을 운영하는 윤아무개씨 등 3명만 참여했다. 최근 이들은 새로운 시도를 했다. ㅅ회사 풍력발전단지 협력사인 독일 지멘스에너지를 대상으로 독일 경제수출감독청(BAFA)에 진정을 제기한 것이다. 독일은 일정 규모 이상 자국 기업에 대해 공급망에서 인권·노동·환경 위험 실사를 의무화하고, 이를 경제수출감독청이 감독하는 ‘공급망실사법’을 시행한다. 국제적으로 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시도다.
기자에게 저간의 일을 설명하던 송씨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운남면에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설치하려는 업자가 있는데, ‘이장님이 주민들 동의를 잘 받아주면 마을에는 1500만원, 이장님에게 500만원을 줄 수 있다’ 하니, 한번 만나보라”는 제안이었다. 에너지저장장치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는 설비로 주목받는다. 그러나 이미 자신이 동의하지 않은 거대한 전력설비를 머리 위에 이고 사는 송씨에겐, 그저 화만 돋우는 제안일 뿐이었다.
“우리가 재생에너지를 반대할 이유가 있나요? 충분히 협의하고 적당히 거리를 띄우고 들어왔으면, 반대하고 싸울 일이 없었겠죠. 저게 여기 들어왔을 때랑 똑같은 상황이 또 벌어지면 안 될 텐데….”
“재생에너지도 난개발 땐 역효과…이격거리 폐지돼 ‘2차 쓰나미’ 올 것”
2022년 6월,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는 전남 영광군 주민 163명이 근처 풍력발전기 때문에 저주파소음 피해를 보고 있다며 발전회사 쪽에 총 1억3800만원 배상 결정(재정)을 내렸다. 풍력발전 저주파소음 피해를 인정한 첫 사례다. 무안 운남면보다 2년가량 앞선 이 사건도, 현재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이다. 이격거리 500m 안팎으로 주거시설 가까이 지어진 점, 인허가 과정에서 주민 동의를 위해 마을에 발전기금을 낸 점 등 두 사례는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많다.
영광 창우마을 이장을 맡은 김아무개씨는 “회사 쪽이 배상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법으로 심판받겠다’ 하여 3년 가까이 소송 진행 중”이라 말했다. 배상하지 않고 소송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무안 ㅅ회사는 “개별 사안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향후 풍력발전 산업의 기술적 표준과 법적 가이드라인을 확립하기 위한 필수적인 대응”이라고 밝혔다.
전남 지역은 태양광·풍력에 유리한 입지를 지녔고, 그에 따라 2010년대 말부터 재생에너지 사업들이 본격적으로 늘어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주민과의 분쟁 등 부작용도 생겼고, 그 여파가 지금도 이어지는 모양새다. 박은자 ‘농어촌파괴형 풍력·태양광 반대 전남 연대회의’(연대회의) 집행위원장은 한겨레에 “제대로 된 주민 동의 없이 농지를 개발하기 위해 업자가 보상금으로 공동체를 현혹하거나 갈라놓고, 그 결과 농어촌이 파괴되는 것”이 핵심 문제라고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확충은 농어촌을 파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연대회의를 꾸려 활동해온 이유다.
무안·영광 등의 사례가 아직 관련 법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졌던 ‘난개발’의 부작용이라면, “앞으로는 ‘2차 쓰나미’가 올 것”이라고 박씨는 우려했다. 주민 동의도 제대로 받지 않은 개발 사업이 우후죽순 펼쳐지던 상황에서, 지자체 조례 등 ‘이격거리 규제’는 거의 유일한 대응 수단이었다 한다. 그런데 올해 2월 국회가 재생에너지법 개정으로 이격거리 자체를 철폐하며 그나마 있던 제동장치가 사라졌단 것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태양광·풍력 설비에 대한 이격거리 상한선은 재생에너지법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 지자체별 특성 및 기존 조례, 주민 수용성, 안전 요소, 해외사례 등을 종합 고려해 최종 확정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재생에너지·전력 설비에 대해 이재명 정부는 규제보단 주민들이 사업에 직접 참여해 운영이익을 나눠 갖는 ‘이익공유’ 모델을 강조·장려하고 있다. 그러나 박씨는 “말로만 ‘주민참여형’이지, 주민들이 실제로 주체적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지적했다. 또 “수도권에 공급할 목적으로 지역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업자들이 농민을 활용해 돈을 버는 구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씨 등을 대리하는 김종철 변호사(기업과인권네트워크)는 “기후위기로 인해 취약해진 농민들이 기후위기 대응으로 더 취약해지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빠른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라도 무분별한 개발행위를 막고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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