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여성의 스위스 조력사망을 도왔다…나답게 죽을 권리를 위해 [잘생, 잘사]
<7> 나다운 존엄한 죽음, 사회가 책임지게 하려면
어머니 조력사망 후 합법화 운동하는 남유하 작가 인터뷰
편집자주
잘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이 과제인 시대입니다. 행복하게 살다가 품위 있게 늙고 평온한 죽음을 맞으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최문선 논설위원과 함께 해법을 찾아봅니다.

인터뷰 섭외를 위해 전화를 했을 때 그는 스위스에 있었다. 조력사망을 선택한 어느 50대 여성과 동행 중이라고 했다. 조력자살, 조력존엄사라고도 부르는 조력사망은 의사 도움을 받아 약을 먹거나 주사해 스스로 생명을 중단시키는 죽음이다. 말기 암 환자였던 어머니를 2023년 같은 방식으로 떠나보낸 그다. 처음 가는 길이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건 ‘죽기 위해’ 아픈 몸으로 멀고 낯선 나라에 가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얼마나 힘든 일이 기다리고 있는가를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어머니는 한국에서 조력사망이 가능했다면 겪지 않았을 고통을 겪고서야 눈을 감았다. 장시간 이동하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조력사망 지원기관 ‘디그니타스’와 약속한 날에 맞춰 스위스에 도착하려면 힘이 남아 있을 때 비행기를 타야 했다. 존엄한 죽음을 위해 더 살 수 있는 날들을 포기했다. 날짜를 세면서 링거를 맞아 가며 버텼다. “다른 환자들은 나처럼 괴롭지 않았으면, 우리나라에서 죽을 수 있으면 좋겠어.” 어머니 말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이 내려앉는다.
소설 쓰는 남유하 작가 이야기다. 더 편하게 보내드리지 못한 게 한스러울 뿐, 남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을 도운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는 죽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고문 같은 통증을 끝낼 방법, 끝까지 존엄을 지킬 방법이 죽음밖에 없었던 거예요. 스스로 고통을 물리친 엄마는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조력사망 여정을 기록한 책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를 써내 현실을 알린 뒤 그는 ‘조력존엄사법’ 입법을 위해 뛰고 있다. 여전히 싸늘한 시선을 등지고서. "너도나도 스위스에 가자는 게 아닙니다. 나답게 죽을 권리를 찾자는 거예요. 한국 사람이 왜 스위스까지 가서 죽어야 하나요.” 인터뷰하면서 그는 여러 번 눈물을 보였다.
엄마는 삶을 사랑했다...고통을 견디지 못했을 뿐

Q. 스위스에 동행한 분은 누구인가요. 가족이 아니었다고요.
“기관삽관을 하고 누워 지내는 루게릭병 환자였어요. 말기·임종기 환자 자기결정권 보장 운동을 하는 한국존엄사협회를 통해 만났어요. 가족에 둘러싸여 평온하게 가셨어요. 딸이 어머니 시신을 안고 말하더군요. ‘우리 엄마가 이미 죽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고요. 디그니타스 도움으로 한국인이 조력사망을 한 건 엄마가 8번째, 그분이 12번째라고 합니다. 그분은 아침 일찍 떠나고 싶어 했어요. 고통에서 빨리 벗어나려고요. 스위스 의사를 만나 ‘I want to die, quick, quick’이라고 한 엄마처럼요.”
Q. 가족이든 타인이든, 조력사망을 돕는 건 불법 아닌가요.
“엄밀히 따지면 저는 자살방조죄를 저지른 범죄자죠. 지금까지 고발당하거나 수사받지 않은 건 조력사망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차올랐기 때문일 거예요. 2023년 어느 여론조사에서 찬성률이 81%나 됐어요. 저는 조력사망을 권하려고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에요. 아파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조력사망이 합법적 선택지가 돼야 한다는 걸 알리려는 거예요. 죽어가는 환자 삶의 질을 돌보지도 않는 사회에서 무슨 명분으로 반대하나요. 조력사망이 가능하다는 것, 원할 때 원하는 모습으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오늘을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죽을 수 있다는 희망’도 희망이에요.”
#. 남 작가 어머니, 1944년생 조순복씨. 2019년 유방암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1년 만에 암이 재발했다. 뼈까지 전이된 말기 암. 2년간의 항암치료도 소용없었다. 영화에서 본 조력사망을 떠올리고 딸에게 물었다. “엄마도 스위스 갈까?” “응.”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 엄마의 고통을 한몸처럼 느껴서였다. “어디 한 군데라도 괜찮아야 같이 살자고 붙들고 늘어지지…” 아버지도 동의했다. 딸은 엄마를 대신해 디그니타스와 연락하고, 온갖 서류를 준비하고, 엄마가 돌아오지 못할 여행 계획을 짰다.
딸 생일을 챙겨주고 떠나겠다던 엄마, 적금 만기를 채우고 떠나겠다던 엄마는 통증이 심해지자 ‘디데이’를 세 번이나 앞당겼다. 마지막 날 아침엔 “행복하다”고 했다. ‘자발적 자살 확인서’에 서명하고 디그니타스 조력자가 건넨 구토억제제와 물약을 마신 뒤 잠들었고, 이내 떠났다. 딸은 슬펐지만 기뻤다. 엄마가 마지막 소원을 이루었으니까. 유언대로 엄마를 화장해 스위스 어느 언덕에 뿌렸다. 사망 후 48시간이 지나야 화장할 수 있다는 것이 현지 규정이고 아버지 건강이 좋지 않아 화장을 지켜볼 수도, 유골을 직접 뿌릴 수도 없었다.
딸은 엄마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사랑하니까

Q. 어머니가 떠나는 과정에 난관이 많았어요. 그래도 남은 가족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던가요.
“함께 준비한 죽음이니까요. 엄마의 편안한 마지막을 본 것도 위안이 됩니다. 제가 너무 슬퍼하니까 사촌언니가 ‘엄마가 정을 안 떼고 가서 네가 그러는구나‘ 하더군요. 언니 엄마인 이모는 요양병원에서 7년 지내다 가셨어요. 가족이 끝까지 아프다 떠나면 정이 떨어진다는 건데, 그렇다면 저는 오히려 다행이죠. 엄마가 여전히 애틋하고 그리우니까요. 시간을 들여 인사를 나눌 수 있었고요. 이렇게 엄마의 죽음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특별한 애도라는 생각도 합니다.”
Q. 어머니가 조력사망 결정을 몇 번 번복하셨다죠.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게 됐겠죠. 엄마가 바라지 않은 모습이에요. 엄마는 머리를 안 감고는 집 앞 편의점에도 가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예쁘게 가고 싶다면서 마지막 날도 정성껏 화장을 하고, 전날 밤엔 마스크팩도 했어요. 그런 엄마의 존엄이 무너지는 걸 보는 건 엄청난 고통이었을 겁니다.
‘호스피스병원이 충분했다면 스위스에 안 갔을 것’이란 말을 저한테 듣고 싶어 하는 의사들이 있어요. 틀렸어요. 엄마는 끝까지 정신이 또렷한 상태이기를 바랐어요. 호스피스 통증완화 과정에서 환자들은 오랜 시간 잠을 잘 수밖에 없어요. 그런 엄마라면 결국 스위스에 가는 선택을 했을 겁니다. 호스피스병원을 늘리고 재택의료 시스템도 확충해야 하지만, 동시에 조력사망도 제도화해야 합니다. 환자들이 그중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해요.”
Q. 넷플릭스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비롯해서, 미디어는 조력사망 과정을 대체로 우아하게 그리지요.
“디그니타스와 일정을 논의할 때 저도 스위스 여기저기를 여행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는 계획을 세웠어요. 엄마와 지낼 호텔도 전망 위주로 잡았고요. 현실은 달랐어요. 중요한 건 전망이 아니라, 쇠약한 엄마를 위해 동선을 최소화하는 거였어요. 조력사망을 하는 건 정말로 코너에 몰려서, 더는 버틸 수 없어서예요. 관광하고 즐길 힘이 남아 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겠죠. 물론 미디어에서 조력사망을 다루는 것만으로 감사해요.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기회이니까요.”
Q. 조력사망이 자살과 뭐가 다르냐는 비판도 있습니다.
“처음엔 엄마의 죽음이 자살과 다르다는 걸 꼭 확인받고 싶었어요. 이젠 아니에요. 캐나다에선 의사가 약물을 주입하고, 스위스에선 의사가 상담과 약물 제공 등의 도움만 줍니다. 스위스 방식은 ‘조력이 있는 자살’이니 자살인 거죠. 암 환자 자살률이 굉장히 높다고 들었습니다. 자살은 조력사망 또는 조력자살보다 훨씬 괴로운 죽음입니다. 조력자살은 보통의 자살과 분명히 달라요. 실패해서 더 나쁜 상태가 될 가능성이 적고, 사랑하는 이의 축복을 받으며 떠날 수 있어요. 남은 사람도 덜 비참하고요. ”
"행복의 나라로 떠난 엄마...저도 행복합니다"

Q. 60대 남성이 조력사망을 위해 스위스행 비행기에 탔다가 가족 설득으로 포기했다는 보도가 있었어요.
“저희 가족도 다 찬성한 건 아니에요. 오빠가 반대해서 공항에 나오지도 않았고, 연락을 끊은 이모도 있어요. 하지만 죽음은 죽는 사람의 것이에요. 당사자 결정을 존중해야 합니다.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조심스러워하면서 죽음에 대해선 왜 선을 넘나요? 대신 아파 줄 건가요? 죽음의 방식을 누구보다 오래, 깊이 고민한 사람은 당사자예요. 한국의 가족주의 때문에 조력사망이 합법화되면 가족에게 민폐를 끼칠까 봐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택할 것을 걱정하고는 하지요. 반대예요. 가족주의 때문에 환자들이 무의미한 고통을 겪어요. 중환자실, 요양병원에 가보세요. 서로 눈치만 보잖아요.”
Q. 생명 경시다, 죽음을 조장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요.
“실체 없는 공포 유발이에요. 조력사망률이 캐나다에선 5%, 스위스는 2% 정도예요. 조력사망 허가를 받고 비극적 죽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에 안심한 채로 실행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요. 제도가 있다고 누구나 막 하는 게 아니에요. 까다로운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고요. 캐나다는 호스피스 제도와 연계해서 진짜 마지막 순간에 조력사망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삶을 단축당한 엄마와 달리,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는 거죠. 디그니타스에 비용을 내고 스위스까지 가느라 수천만 원이 들었어요. 돈이 없으면 조력사망이라는 선택지에 접근하기도 어려워요. 불평등이고 차별이죠.”
Q. 국회와 정부가 적극적이지 않아요. 합법화가 될까요.
“의료계도 미온적이고 종교계 반대도 심하죠.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대 국회 통과를 목표로 조력존엄사법 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방부 장관이 되면서 동력이 없어졌어요. 국회의원은 표 떨어지는 걸 제일 무서워하죠. 조력사망 합법화 수혜자는 투표장에 가기 어렵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낙선운동을 할 수 있으니 나서지 않죠. 그래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합법화 요구 헌법소원을 낸 하반신 마비 환자를 위해 참고인 진술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도우라고 하셨으니, 제 소명이에요.”

Q. 모두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 애쓰는 분으로서, 좋은 죽음이란 뭘까요.
“죽음을 공부할수록 죽음에 대해 단호하게 말할 수 없더라고요. 죽음 앞에 ‘좋은’이란 말이 어울리는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도 뭔가를 말해야 한다면, 나다운 죽음이 좋은 죽음이겠죠. 죽음과 삶은 분리되지 않아요. 탄생부터 죽음까지가 삶이고, 삶에 죽음이 포함돼 있어요. 필연적으로 찾아올 죽음을 상상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소설이나 드라마 결말이 나쁘면 작가를 욕하면서 왜 자기 삶의 결말은 방치하나요. 그러니까 원하지 않는 죽음을 맞는 거예요."
책과 영화 속의 조력사망
죽음을 입에 올리는 걸 여전히 불편해하는 사회에서 조력사망은 금기 중의 금기. 삶과 죽음을 첨예하게 고민하는 문화예술은 조력사망을 깊이 다룬 지 오래다. 조력사망이 궁금한 이들을 위해 남 작가가 책과 영화 다섯 편을 골라 추천하는 글을 보내왔다.
□영화 ‘미 비포 유’: 전신이 마비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스위스에서 조력사망을 택하는 이야기. “피치 못할 상황이 오면 나도 저런 선택을 하고 싶어.” 암 수술 뒤 추적검사를 하던 시기에 엄마가 한 말이 예언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로맨스 장르여서 조력사망이 아름답게 그려진 면이 있지만, 남자의 선택이 진지하고 절실했음을 지금의 나는 이해한다.
□다큐멘터리 ‘우아한 죽음’: 70세 영국 여성 재닛의 조력사망 과정을 담았다. 원제는 ‘The Good death.’ 존엄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엄마와 나 안에서 구체화시켰다. 암 전이 후 다큐를 본 엄마는 재닛을 몹시 부러워했다. 결국 "부러워하지만 말고 우리도"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책 ‘사랑을 담아’: 알츠하이머 남편을 디그니타스에서 떠나보낸 아내가 썼다. 조력사망이 순수한 자기 의지임을 증명해야 하므로, 알츠하이머 환자는 인지능력이 떨어지기 전에 이른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엄마가 조력사망 허가인 ‘그린라이트’를 받고 서류를 준비할 때 출간돼 참고서처럼 읽었다. 원제는 'In love’. 결국 모든 것은 사랑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영화 ‘룸 넥스트 도어’: 암 환자인 주인공 마사가 삶을 끝내는 순간, 노란 수트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그의 삶. 감독은 원색을 통해 죽음이 삶을 마무리하는 화사한 여정이라는 걸 보여준 것이 아닐까. “눈이 내린다. 모든 산 자와 죽은 자 위로.” 제임스 조이스 소설 ‘죽은 사람들’을 인용한 대사가 흐른다.
□책 ‘나는 죽음을 돕는 의사입니다’: 2016년 메이드(MAiD-의료조력사망) 합법화 이후 조력사망을 도운 캐나다 의사의 에세이. 죽음을 보는 시각부터 의료윤리까지 두루 살핀다. “(나는) 환자들에게 그들이 조력사망에 적합하다는 걸 알려줌으로써 자율권을 준다. (…) 그리고 그 결과는 고통의 축소다.”
최문선 논설위원 moonsun@hankookilbo.com
김지우 사원 dearz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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