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감시 뚫은 ‘광주행 외국인’
연합교회 총회장 로이스 윌슨… “서울 거주” 압박에도 광주 방문
유가족과 만나 ‘5·18 진실’ 들어… 귀국 후 교회-교단 신문에 기고

윌슨 씨는 당시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사복경찰의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누군가는 “광주에 가라”고 권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는 결국 용기를 내 광주행을 택했다.
● 암울한 시대, 은밀한 광주행
당시 사회 분위기는 냉혹한 동토와 같았다. 신군부는 5공화국 출범을 앞두고 사회 전반에 대한 감시와 탄압을 극대화했다. 대법원은 1981년 1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고, 신군부는 권력 장악을 본격화했다. 신군부는 다음 날인 1월 24일 비상계엄을 해제했지만 감시의 눈초리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강추위까지 겹치며 세상은 얼어붙은 듯했다. 민주주의를 갈망하던 국민들은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지 8개월이 지났지만 누구도 쉽게 광주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고, 유가족들의 눈물과 탄식만 이어졌다.
윌슨 씨는 1981년 1월 캐나다 연합교회(UCC) 총회장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누구도 5·18을 입 밖에 내지 못하던 암울한 시기에 광주를 찾았다. 신군부는 그에게 서울에만 머물 것을 권했지만 그는 “그렇다면 더 가야겠다”며 광주 방문을 결정했다. 광주행에는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였던 김소영 목사(1930∼2012)가 동행했다. 김 목사는 암울했던 1980년대 교회 연합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이들의 광주 방문은 신군부의 감시를 피해 극비리에 이뤄졌다. 김 목사의 아들인 한 의대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1981년 당시 의대 본과 2학년이었는데 아버지가 광주에 다녀왔다는 사실조차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광주YMCA와 기독병원 등에서도 윌슨 씨 방문과 관련한 기록이나 사진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윌슨 씨는 5·18 구속자 가족들도 만났다. 이 씨는 “윌슨 씨를 만났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며 “당시로서는 대단한 용기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 씨는 당시 상황을 비교적 또렷하게 기억했다. 정 씨는 13일 “윌슨 씨와의 만남은 낮부터 시작됐는데, 당시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나는 밤이 돼서야 식당에서 합류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윌슨 씨는 5·18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국가폭력의 아픔에 깊이 공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감시를 피해 다니며 윌슨 씨를 만났는데, 낯선 외국인이 광주에 관심을 갖는다는 사실 자체가 신기하면서도 용기 있어 보였다”고 했다.
정 씨는 특히 “오월의 진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에 외국인 여성이 신군부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광주를 찾아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고 말했다.
그는 “윌슨 씨가 캐나다 국기가 새겨진 배지와 스카프를 선물로 줬다”며 “국기를 배지로 만들어 애국심을 표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한국도 태극기 배지를 통해 애국심을 고취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윌슨 씨는 생전에 “나는 5·18민주화운동 이후 오월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광주를 찾은 첫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아무도 5·18을 쉽게 입에 올리지 못하던 시절, 푸른 눈의 낯선 외국인 여성은 오월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광주를 찾는 용기를 보여줬다.
캐나다로 돌아간 뒤에도 윌슨 씨는 광주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세계 교회에 알리기 위해 힘썼다. 교회와 교단 신문에 글을 기고했고,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 등을 통해 광주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전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는 “횃불을 들고 광주 금남로를 걸었는데 감격스러웠다”고 회고했다. 이후에도 한국에 대한 관심을 이어간 윌슨 씨는 세계교회협의회(WCC) 회장과 캐나다 상원의원, 캐나다 레이크헤드대 총장 등을 지내며 평생 인권 신장 활동에 힘썼다.
고재대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윌슨 목사는 냉혹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낯선 광주를 찾아 용기 있는 인권활동을 펼쳤다”며 “오월 광주 역시 오늘날 세계 곳곳의 또 다른 5·18과 연대하고 손을 맞잡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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