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수퍼사이클이 재정 민낯 가리고 있다”

김정훈 기자 2026. 5. 14.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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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학자들 ‘확장 재정’ 경계

반도체 호황에 세수가 늘 것에 기대서 재정을 확 풀려고 하는 최근 정부 움직임에 대한 경고가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반도체 호황, 수출 증대, 이에 따른 성장률 상승이 급증하는 국가부채비율의 실제 모습을 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서강대에서 ‘대한민국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제언’을 주제로 열린 남덕우기념사업회 토론회에서 최근 정부의 재정 정책에 대한 재정학자들의 충고가 쏟아졌다.

그래픽=김현국

◇반도체 호황이 재정 민낯 가려

이날 발표를 맡은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한국재정학회장)는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 덕에 명목 GDP(국내총생산)가 늘어 정부부채 비율이 3~4%포인트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부채비율을 계산할 때 사용하는 분모(分母)인 GDP가 상승해, GDP 대비 부채비율이 전망치보다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경기 사이클이 재정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다”며 “반도체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 폭증하는 AI 투자가 진정세로 가거나 늪에 빠질 때 우리는 반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최병호 부산대 교수는 “최근 반도체 경기 때문에 세수가 엄청나게 늘어날 거라는 예측하에 뭔가 우리가 좀 더 여유를 누려도 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는 것 같다”며 “수년 전에는 소득주도성장이더니, 이젠 재정주도성장을 하려는 것인가”라고 했다.

이날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페이스북 게시물에서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그것이 역대급 초과 세수로 이어진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당 고민해야 할 설계의 문제”라며 반도체발 호황을 확장 재정으로 연결시키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는데, 이를 비판한 것이다.

국제기구인 IMF(국제통화기금)도 지난달 발행한 ‘재정 모니터’를 통해 한국 재정이 AI 변수에 취약하다고 경고했다. 부채로 쌓아 올리고 있는 AI 투자가 금융시장 조정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데, 한국이 유독 영향을 받기 쉽다는 것이다. IMF는 보고서에서 AI 투자 열풍이 사그라들면 “실물 경로를 통해 한국과 대만 같은 기술 노출도가 높은 수출국에 영향을 미치고, 금융 경로를 통해 국가 채무 조달 비용을 상승시킬 것”이라고 했다.

◇“재정으로 잠재성장률 못 올려”

김우철 교수는 이날 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의 임계점을 62.5%라고 했다. OECD 선진국이 부채 대응에 한계를 느끼는 시점인 부채비율이 90~100% 정도인데, 여기에 한국이 비기축통화인 원화를 쓰고, 고령화와 잠재성장률 둔화가 심각하며, 금리가 오르는 추세이고, 비금융 공기업과 연금 부채 등을 감안하면 62.5%가 한국 정부가 한계를 느끼는 낭떠러지 지점이라는 것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은 한국의 정부부채 비율이 2031년 63.1%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추정치 54.4%에서 꾸준히 오른다는 것이다. 반면 IMF가 분류한 ‘G7을 제외한 선진 18국’의 부채 비율 평균은 향후 5년간 변화가 거의 없다.

재정학자들은 현 정부의 공격적인 확장 재정 정책을 경계했다. 이철인 서울대 교수는 “공기업에 부채 비용을 전가해 (정부부채 비율을)줄이는 방식 등은 쉽게 말하면 ‘창조 회계(creative accounting)’인데, 이는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최병호 교수는 “재정을 써서 잠재성장률을 올릴 수 있다면 누가 지금까지 안 했겠는가”라고 했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재정을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재정을 잘못 쓰는 게 문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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