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로 읽는 시대와 저항…ACC ‘폴란드 포스터전’
거리 풍경에서부터 현대사까지 입체적으로 조명

한국에 K팝이 있다면 폴란드엔 포스터가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동유럽의 작은 국가 폴란드는 어떻게 포스터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을까.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리고 있는 '침묵, 그 고요한 외침: 폴란드 포스터전'은 포스터를 통해 한 시대의 문화와 정치, 사회를 읽어보는 전시다. 1950~70년대 세계 그래픽 디자인계에 큰 영향을 준 '폴란드 포스터 학파'를 중심으로, 상업 디자인을 넘어 예술과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낸 폴란드 포스터의 흐름을 조명한다.
영화 홍보물 아닌 '재해석된 창작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영화 포스터들이다. 당시 폴란드 포스터 학파가 특히 독보적인 성취를 남긴 분야다. 주연 배우나 장면을 강조하는 상업 영화 포스터와 달리, 개성 넘치는 그래픽으로 영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게 특징이다.

은유·유머·상상력…8개 키워드로 보는 전성기
전시는 폴란드 포스터의 황금기를 8개 키워드로 풀어낸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은유와 암시' 섹션이다. 줄무늬 죄수복 위 꺾인 꽃으로 아우슈비츠 여성 수감자를 암시한 '마지막 무대'(1948) 등 한 편의 문학 작품 같은 포스터들을 만날 수 있다. 해석할 수 없는 폴란드어가 이미지 위로 겹쳐질 때면 작품은 더욱 매혹적인 수수께끼가 된다.
그밖에도 '유머' 섹션에선 투박하고 친근한 인물들로 경직된 체제에 균열을 낸 작업들이, '호기심과 상상력' 섹션에서는 일부러 모호하게 남겨 해석을 유도하는 작업들이 펼쳐진다. 평범한 얼굴의 호소력을 보여주는 '얼굴의 힘', 가히 혁신이었던 '콜라주와 페이퍼 컷아웃 기법', 글자를 그림처럼 녹여낸 '레터링과 이미지의 통합' 등의 키워드는 마침내 1980년대 이후의 포스터로 이어지며 폴란드 포스터 학파가 서서히 막 내리는 풍경까지 담아낸다. 방대한 타임라인이 산뜻하게 요약돼 어렵지 않게 관람할 수 있다.

1950년대 폴란드 거리에서 디자이너 작업실까지
과거 폴란드의 한 장면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도 있다. 당시 폴란드 거리 풍경을 재현한 뒤, 길거리에 포스터를 붙여둔 것이다. 이곳에서 포스터는 미술관에 걸린 작품이 아니라 길을 걷다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풍경이 된다. '포스터의 갤러리는 거리'라는 문구 역시 모든 이들에게 차별 없이 다가가는 포스터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한다.
폴란드 현대사를 조망할 수도 있다. 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침략과 지배를 겪었던 폴란드의 현대사가 전쟁 및 정치 상황을 다룬 포스터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전시 마지막에는 핵심 디자이너였던 빅토르 고르카의 작업실도 구현돼, 한 장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침묵, 그 고요한 외침: 폴란드 포스터전'은 단순히 '예쁜 포스터'를 모아놓은 자리가 아니다. 폭력과 억압에 맞서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저항했는지 보여주는 자리다. 전시장을 걷다 보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던 이들의 시대정신과 태도를 곱씹어보게 된다. 전시는 오는 6월 21일까지.
전시 기간: 2026년 5월 1일~6월 21일 (매주 월요일 휴관)
장소: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복합전시 1관
요금: 성인 1만원, 청소년·어린이 7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