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과거에서 보내는 엽서] [66] 혁명 지옥

이응준 시인·소설가 2026. 5. 13.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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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마오쩌둥의 홍위병 열병식에 참석하기 위해 천안문 앞에 운집한 홍위병들. /AP연합뉴스

1966년 5월 14일 나는 천안문 광장에 서 있다. 이틀 뒤,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확대회의를 거쳐 ‘5·16 통지’가 채택됨으로써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 시작된다. 이 문건은 당과 국가에 침투한 반혁명분자들, 자본주의와 타협하는 세력을 찾아내 박멸하자고 주장한다. 단기간 내에 영국과 미국의 국력을 추월하겠다며 추진한 ‘대약진 운동’의 대실패로 위기에 처한 마오쩌둥은, 저런 명분을 내세우며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같은 실용주의 개혁 세력을 제거해 다시금 자신의 절대권력을 공고히 하려 했다.

정치 투쟁의 가면을 쓴 권력 투쟁이야 어느 시대 어느 체제에서나 다반사이겠으나, 마오쩌둥은 이 일에 젊은 대중, 특히 ‘아이들’의 폭력과 광기를 사용했다. 이른바 ‘홍위병(紅衛兵)’이다. 중고등학생, 대학생들은 ‘마오 어록’을 악마의 성경처럼 들고서 가치와 권위가 깃든 모든 것들을 파괴하고 유린했다. 스승과 선배와 부모를 질질 끌고 다니며 비판하고 삭발시킨 뒤 짓밟았다. 반혁명 분자로 찍힌 누구라도 쫓기고 모욕당하고 강제수용소로 보내졌고, 와중에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문화재만 파괴한 게 아니라 무형문화재인 사람들까지 죽여서 중국 문화의 많은 부분이 그때 대가 끊겼다. 홍위병들은 대부분 ‘혁명 지옥’을 만드는 것 말고는 교육도 받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아 한 세대 전체가 무식한 세대가 돼 후대의 사회 문제가 되었다.

이 역겨운 비극은 필설로는 설명이 안 된다. 다큐 동영상들을 직접 봐야 감이라도 잡힌다. 마오쩌둥은 1966년 8월부터 11월 사이 총 8차례 매번 수백만 명의 홍위병과 접견식을 벌였다. 1966년 8월 18일 천안문 광장 접견 동영상 안에서 파시즘의 초현실적인 진면목을 본다. 나치 역시 아이들을 조직하고 동원했지만 저 정도로 나치의 주축은 아니었다.

한국인, 특히 386세대는 이 문화대혁명을 미화하거나 왜곡되게 기술한 책들에 ‘부지불식간에 여러 경로로’ 영향받았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정전(正典)을 읽어야 한다. 송재윤 교수의 ‘슬픈 중국’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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