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웅”→“위험한 인물”... 머스크와 올트먼의 사랑과 증오
이제는 법정에서 치부 꺼내는 혐오관계로

12일(현지 시각) 미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연방법원 법정.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증언대에 올랐다. 이날 재판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올트먼 등을 상대로 “오픈AI가 비영리 창립 사명을 버리고 영리화됐다”고 소송을 제기해 열린 것이다. 머스크는 올트먼의 퇴진과 손해 배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굳은 표정으로 증언대에 선 올트먼은 “머스크는 오픈AI의 미션을 지킬 수도 없었고, 오픈AI의 운영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머스크가 오픈AI를 통제하고 돈을 벌고 싶어 했으며, 자기 자녀에게 오픈AI의 지배권을 넘기려는 생각도 했다”고 말했다. 머스크를 탐욕스럽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인물로 묘사한 것이다. 지난달 말 머스크도 같은 법정에서 “나는 그(올트먼)를 믿을 만큼 어리석었다”며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인공지능(AI)을 책임지는 것은 전 세계에 큰 위험”이라고 공개 비난했다.
머스크와 올트먼, 두 사람은 한때 ‘인류를 위한 AI’를 만들겠다는 소명을 공유하며 의기투합해온 사이다. 챗GPT 출시로 AI 대중화를 이끈 오픈AI의 초기 설계를 함께했다. 그런 두 사람이 이제는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서로를 헐뜯고,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다. 같은 곳을 바라보던 이들이 어쩌다가 서로를 겨누는 사이가 됐을까. 법정에서 공개되고 있는 자료와 그간 두 사람의 발언 등을 바탕으로 내막을 정리했다.
◇인류 위한 AI 공동의 꿈 꾸던 ‘브로맨스’
머스크와 올트먼 관계의 시작은 약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0년대 초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Y콤비네이터 수장이던 올트먼은 실리콘밸리에서 머스크를 알게 된다. 외신에 따르면 올트먼은 당시 머스크를 멘토처럼 따랐다고 한다. 올트먼은 “스페이스X 투어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머스크가 로켓의 모든 세부 사항과 그 안에 들어간 모든 엔지니어링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가까워진 두 사람은 인류의 미래와 AI 기술에 대해 이후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2015년 구글이 영국의 AI 스타트업 딥마인드를 인수한 것을 계기로 비영리 AI 연구소인 오픈AI를 함께 설립했다. “AI라는 강력한 기술을 구글이 독점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픈AI 초기 두 사람은 완벽한 브로맨스를 보여주는 듯했다. 이미 테슬라 등을 키워낸 성공한 사업가였던 머스크는 돈과 명성을, 올트먼은 실리콘밸리 네트워크와 조직 운영 감각을 가져왔다. 머스크는 초기 자금 상당 부분인 4400만달러를 지원하며 오픈AI의 핵심 이사회 멤버로 참여했다.
하지만 오픈AI가 난관에 봉착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엔 균열이 갔다. 핵심은 ‘돈’이었다. AI 개발에는 막대한 컴퓨팅 자원과 자본이 필요했고, 오픈AI가 추구해 온 ‘비영리·공개 연구’ 철학과 천문학적인 자본이 필요한 현실이 충돌했다.
결국 2018년 오픈AI의 영리 법인 전환이 논의됐다. 그 과정에 머스크는 올트먼과 갈등하다가 이사회에서 물러났다. 머스크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내가 오픈AI를 후원한 이유인 ‘비영리’ 사명을 올트먼이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올트먼은 “머스크가 경영권을 직접 잡고 테슬라와 합병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SNS에서 유치한 설전...공개 비난
두 사람은 나아가 서로를 증오하고, 혐오하는 관계가 됐다. 머스크가 떠난 뒤 ‘영리 부문 자회사’를 설립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오픈AI를 머스크는 맹비난했다. “오픈AI는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고, “이미 MS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고도 했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인데도 2024년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올트먼은 “회사 장악 시도에 실패한 머스크가 몽니를 부린다”고 맞받았다. 2022년 11월 챗GPT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오픈AI가 ‘AI 모델 최강자’로 부상하자 머스크의 ‘질투’가 극에 달했다는 것이 올트먼 측의 주장이다. 오픈AI 측 변호인 윌리엄 사빗은 머스크의 소송 동기에 대해 “본인 없이 회사가 챗GPT로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자, 그 성공을 견디지 못하고 ‘신포도(Sour Grapes)’ 심정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유치한 설전을 이어왔다. 오픈AI 구조 전환에 대한 글도 있지만, 서로를 별다른 이유 없이 헐뜯고 조롱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지난해 11월 올트먼은 자신의 ‘엑스(X)’에 테슬라에서 주문한 차량의 인도가 늦어지고 있다는 글을 썼다. 이는 당초 계획보다 신차 출시가 늦어지고 있는 테슬라를 조롱하는 취지였다. 그러자 머스크는 답글로 “당신은 비영리(법인)를 훔쳤다”고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도 각종 과거 자료를 공개하며 서로의 내밀한 치부까지 드러내는 진흙탕 싸움을 하고 있다. 미 월간지 ‘더 애틀랜틱’은 “이 재판이 AI 붐을 사소하고 지저분하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당신은 내 영웅”
드라마에는 ‘혐관(혐오 관계) 로맨스’라는 클리셰가 있다. 서로 싫어하거나 대립하던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서사를 말한다. 머스크와 올트먼도 서로를 헐뜯고 싸우는 와중에도 서로를 향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2023년 머스크가 공개적으로 오픈AI를 공격하자, 올트먼이 머스크에게 “당신은 내 영웅이었다. 당신이 오픈AI를 공개적으로 공격하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머스크는 “상처 주려는 것은 아니었다”고 올트먼을 달래면서 “하지만 ‘문명의 운명’이 달렸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올트먼과 머스크가 비슷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 충돌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두 사람 모두 통제광인 데다 “인류를 구해야 한다”는 메시아주의 사상을 가졌기 때문에 “내가 더 세상을 구할 적임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미 IT 전문 매체 더 버지는 “머스크가 자신을 인류를 구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했고, 뉴요커는 오픈AI 경영진의 과거 이메일을 공개하며 올트먼이 오픈AI의 CEO 자리를 스스로 강력히 원했었다고 보도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유재덕의 공유주방] [19] ‘욕심’의 두 이름
- [태평로] 전작권 전환 서둘러 트럼프·김정은만 웃나
- [김도훈의 엑스레이] [121] ‘칸느 박’이 읽지 않기를
- [전문기자의 窓] “나도 징계하라”는 검사들 메아리
- [기고] 한미동맹의 미묘한 균열, 메시지 일관성 유지가 최우선이다
- [최영미의 공놀이, 세상놀이] [10] 한화 투수 김서현을 위한 변명
- [김철중의 생로병사] 스마트폰 사용 하루 1시간 줄이면 뇌와 삶이 풍성해진다
- [리빙포인트] 여행 갈 때 샴푸 챙기는 법
- [오늘의 날씨] 2026년 5월 20일
- [르포 대한민국] 구조적 도약인가 단기 버블인가… 8000선 터치한 코스피의 두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