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환의 진화의 창]‘탈것’은 중요하다. 다만…

“맙소사! 인간은 유전자를 미래 세대로 운반하는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고?” 반세기 전에 출간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여전히 읽는 이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도킨스는 그의 첫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다른 책에서 소개한 바 있다. 어떤 이는 그 냉혹하고 암울한 메시지에 충격받은 나머지 사흘 밤을 설쳤다. 한 여학생은 삶이 공허하고 어떤 목적도 없음을 깨달았다며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유전자가 개체를 임시 탈것으로 이용한다는 ‘유전자 관점(gene’s eye view)’의 진화 이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떤 이론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경쟁 이론을 살펴보면 둘 다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옥스퍼드대의 생리학자 데니스 노블은 유전자가 개체를 이용하기는커녕, 개체가 유전자를 이용한다고 역설한다. 유전자, 단백질, 세포, 조직, 기관 등 생명의 여러 수준은 복잡하게 서로 얽혀서 개체를 위해 협력한다. 유전자는 특정한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설명서일 뿐이다. CD 재생기가 없으면 음악 CD에 담긴 디지털 정보를 들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단백질 생산 공정을 완비한 세포가 없으면 DNA에 담긴 유전 정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효소, 리보솜, 세포핵, 심장, 간 등등이 개체를 모시는 하인이듯이, 유전자도 개체를 모시는 하인일 뿐이다.
어느 쪽이 옳을까? 도킨스는 최근 저서 <불멸의 유전자>(원서의 제목은 ‘사자(死者)의 유전서’)에서 두 이론이 ‘내가 이기면 네가 지는’ 제로섬 관계가 아님을 지적한다. 설명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근접 설명은 ‘어떻게 그 시스템이 작동하는가?’를 묻는다. 예컨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유행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생리적, 심리적 측면에서 설명한다. 노블이 강조하듯이, 생명의 각 부분은 복잡한 상호작용의 그물망을 이루어 경탄스럽게 임무를 완수한다.
반면에, 궁극 혹은 진화적 설명은 ‘왜 하필이면 그 시스템인가? 왜 다른 시스템은 아닌가?’를 묻는다. 예컨대, 먼 과거에 전염병에 그런 식으로 대처하게 했던 형질이 어떻게 다른 형질을 제치고 자연 선택되어 개체군에 널리 전파됐는지 설명한다. 근접 설명과 궁극 설명은 상호보완적이다. 생명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둘 다 필요하다.
도킨스는 이 대목에서 별표 세 개를 크게 친다. 생리적, 심리적 측면을 논한다면, 우리는 유전자, 단백질, 세포, 기관 등이 복잡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모두 똑같이 중요하다고 얼마든지 찬양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를 논한다면, 한 가지 특권적인 수준의 인과관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바로 유전자의 수준이다.
진화에 관한 한, 왜 유전자가 특별할까? DNA에 든 정보만이 개체보다 더 오래 살기 때문이다. 대다수 동물은 몇주 또는 몇달만 산다. 극소수만 수십년을 산다. 물론 DNA 분자라는 물질도 개체와 함께 죽는다. 그러나, DNA 염기 서열에 든 정보는 사본의 형태로 대대로 복제되어 전해진다. 수만년 동안 이어질 수도 있다. 유전 정보는 잠재적으로 불멸한다. 선택의 대상이 된다.
모든 유전자가 다 불멸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유전자는 불멸하는 데 성공하고, 어떤 유전자는 실패한다. 성공한 유전자는 자신이 올라탄 개체가 잘 살아남아 번식하게끔 도움으로써 먼 미래까지 복제본을 남기게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개체가 체온을 조절하거나, 전염병을 피하거나, 이성을 유혹하거나, 자식을 돌보는 일을 보다 잘 해결하게 한다. 오늘날 널리 퍼진 유전자는 먼 과거의 환경에서 후대에 자신의 복제본을 더 많이 퍼뜨리는 데 성공한 유전자라는 의미에서, 도킨스는 유전자가 ‘이기적’이라고 은유했다.
요약하자. 유전자 관점의 진화 이론은, 진화에 관한 한, 유전자가 특권적인 수준의 인과관계에 있음을 강조한다. 유전자는 거의 불멸한다. 자연 선택의 단위가 된다. 유전자는 개체나 집단, 종을 미래 세대로 옮겨가는 탈것으로 이용한다. 두말할 필요 없이, 개체는 숨쉬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단위로서 우리의 삶에 대단히 중요하다. 다만 그토록 창발적이고 통합적인 시스템은 그냥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어떻게 지구상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치열한 설명을 요구하는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유전자 관점의 진화 이론은 개별적 몸의 중요성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그저 개체(‘탈것’)의 역할은 유전자(‘복제자’)의 역할과 다른 종류임을 강조할 뿐이다.”(도킨스, <불멸의 유전자>, 267쪽)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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