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1946년생 대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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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자 우후죽순과도 같이 대학설립기성회를 각 시·도에서 조직하여 그 설립 인가서가 문교부에 쇄도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무감정적일지 모르나 그 당시에는 매우 감격적이었다. 일제의 압박 아래 36년간 우리 말도 쓰지 못하고 우리 글도 쓰지 못하고 우리 역사도 배우지 못하다가 이제 그 철쇄가 단절되어 우리 마음대로 자유롭게 교육할 수 있고 또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감격이었다." 1960년 발간된 '한국교육십년사' 일부다.
부산대는 기업인과 시민이 자발적으로 출연한 기금 1032만9000원과 경남 고성의 옥천사가 내놓은 토지를 기반으로 1946년 5월 15일 개교한 한국 최초의 종합국립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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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이 되자 우후죽순과도 같이 대학설립기성회를 각 시·도에서 조직하여 그 설립 인가서가 문교부에 쇄도했다. 오늘날에 있어서는 무감정적일지 모르나 그 당시에는 매우 감격적이었다. 일제의 압박 아래 36년간 우리 말도 쓰지 못하고 우리 글도 쓰지 못하고 우리 역사도 배우지 못하다가 이제 그 철쇄가 단절되어 우리 마음대로 자유롭게 교육할 수 있고 또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감격이었다.” 1960년 발간된 ‘한국교육십년사’ 일부다. 유길준의 아들이자, 미군정 체제 문교부장(교육부장관)이었던 유억겸은 광복 직후를 이렇게 회고한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에는 4년제 대학이 경성제국대학 뿐이었다. 일제가 조선인의 민립대학 운동을 억압하고 저지했던 까닭이다. 광복과 함께 봇물처럼 쏟아진 게 대학 설립 요구였다. 지역 기업인과 시민의 참여가 잇따랐다. “부산에서는 많은 부유한 사람들이 자기 돈을 새 인문계 대학 설립을 위한 기금에 기부했다.”(미군정기 한국교육사자료집) 서울대 부산대 경북대 조선대 등 서울과 지방의 주요 국립대와 사립대가 이때 세워졌다. 1946년 한 해에만 15곳, 미군정기 3년간 무려 42곳에 이른다. 가난에 찌들려 국내총생산(GDP) 규모조차 잡히지 않던 빈국에서 나라를 되찾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대학 설립이었던 것이다.
부산대는 기업인과 시민이 자발적으로 출연한 기금 1032만9000원과 경남 고성의 옥천사가 내놓은 토지를 기반으로 1946년 5월 15일 개교한 한국 최초의 종합국립대학이다. 고신대는 신사참배 거부로 평양형무소에 투옥됐다 풀려난 기독교 신도들이 1946년 9월 20일 세웠다. 동아대는 전신인 ‘남조선대학’을 기점으로 삼는다. 오는 11월 1일이 개교 80주년 기념일이다. 부산수산대와 부산공업대 통합으로 탄생한 부경대는 조선총독부 구제전문학교였던 부산고등수산학교가 국립종합대(부산대 수산과대학)로 정립된 1946년을 원년으로 기념(5월10일)한다.
올해 80돌을 맞은 1946년생 대학들의 희비는 엇갈린다. 1980년대까지 같은 국립대로 어깨를 견주던 서울대 부산대 경북대의 위상은 확연히 달라졌다. 부산 동아대는 한때 한강 이남 최고 사립대라는 수식어가 붙었으나 여러 복합적인 요인으로 경쟁력이 예전과 같지 않은 게 사실이다. 부침이야 어떻든 이들 대학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끈 동력이자 인재의 산실이다. 격변하는 시대 조류 속에서 다시 한번 저력을 발휘해 100주년 기념일도 당당하게 맞이하길 기대한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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