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앞 지리산 두고 20여년 갇혔던 곰들… 마침내 철창 밖으로

김지숙 기자 2026. 5. 13.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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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문수사’ 곰 구조 현장
지난달 30일 전남 구례군 토지면 사찰 ‘문수사’에서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직원들이 철창 안 곰을 구조하고 있다.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제공

“사육장을 막 이리저리 오가는 정형행동은 많이 봤지만, 곰이 철창에 머리를 ‘쿵쿵’ 들이받는 건 처음 봤어요. 충격이었죠.”

지난달 29일 오후 전남 구례군 토지면의 사찰 ‘문수사’에서 만난 윤주옥 ‘반달곰친구들’ 이사가 붉게 녹슨 철제 우리 안에 갇힌 세 마리 곰을 가리켰다. 대웅전 왼편에 자리 잡은 2층 구조의 철창 주변에는 ‘진입 금지, 곰 위험, 손가락 조심’이라 쓴 안내문과 사찰에서 써 붙인 ‘지리산 반달곰 내력서’가 붙어 있었다. ‘2001년 겨울 출생, 지리산에 방생을 목적으로 시주받아옴.’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는 이전과 달리, 이날 곰들은 철창 바닥에 무기력하게 누워있었다. “내일(30일) 마취·이동을 위해 금식을 한다더니, 밥을 못 먹어 그런가 봐요.”

이튿날 오전 9시, 조용한 사찰 마당이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이하 야생생물보전원) 직원 20여 명으로 북적였다. 지난 20여년간 절 마당을 지켰던 곰들은 이날 정부가 지난해 9월부터 운영 중인 사육곰보호시설 ‘구례곰마루쉼터’로 이동하게 됐다. 지난 3월 초 반달곰친구들은 문수사의 반달곰 전시 문제를 지적하는 성명을 내 곰들을 정부가 운영 중인 보호시설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찰에선 곰들을 누군가에게 ‘시주’받았다 적었지만, 언제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문수사는 사찰 내 붙인 안내문에 세 마리 곰들을 “20여년 전 방생을 위해 시주받았다”고 소개했다. 반달곰친구들 제공
지난달 29일 전남 구례 문수사에서 윤주옥 ‘반달곰친구들’ 이사가 곰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최근까지 곰 우리 앞에 놓인 커다란 먹이통에는 ‘바가지 하나에 2000원, 불전함에’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곰들을 사실상 전시동물로, 먹이주기 체험에 활용한 것이다. 지난 1월1일부터 전국 농가에서 반달곰의 사육과 웅담 채취가 금지됐고, 동물원 이외 시설에서 야생동물 전시도 금지(2027년 12월까지 법 적용이 유예)된 만큼 정부도 문수사 곰들의 구조를 신속히 결정했다.

“각자 장비와 보호장구 잘 챙기시고요. 준비 운동 간단히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정우진 사육곰보호센터(구례곰마루쉼터) 센터장을 중심으로 구조 인원과 야생생물의료센터 의료진이 몸을 풀기 시작했다. 철창 2층 탑에서 지리산 왕시루봉을 보며 잠들었던 곰들도 사람들의 기척에 1층으로 내려왔다. 센터 이동을 위한 마취는 맨 오른쪽 암컷 곰부터 시작됐다. 마취총을 맞은 곰은 당황한 듯 철창 안을 분주히 오갔지만, 10여 분만에 잠들었다.

20여년 만에 마침내 철창의 문이 열렸다. 들것에 실려 나온 곰에게 기본적인 건강검진이 이뤄졌다. 몸무게·체온·산소포화도 측정, 채혈이 이뤄지고, 왼쪽 귀에는 개체 관리번호를 적은 귀 표지가 부착됐다. 몸속에는 곰 이력 정보를 담은 마이크로칩도 삽입됐다. 마당에 누운 곰의 발은 건조하고 거칠어 보였다. 이사현 야생생물보전원 서식지보전부장은 “사육곰들의 발은 대부분 이렇게 바닥이 갈라져 있다”라면서 “야생 곰의 발바닥은 사육곰과 달리 부드럽다”고 말했다. 때문에 “곰 탈출 사고가 났을 때, 야생 곰인지 사육곰인지를 판단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발바닥”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사현 야생생물보전원 서식지보전부장은 “사육곰들의 발은 대부분 이렇게 바닥이 갈라져 있다”고 했다. 김지숙 기자
들것에 실려 나온 곰에게 기본적인 건강검진이 이뤄졌다. 왼쪽 귀에는 개체 관리번호를 적은 이표가 부착됐다. 몸속에는 곰 이력 정보를 담은 마이크로칩도 삽입됐다. 국립공원야생생물보전원 제공
두 번째 우리는 오래된 철문이 열리지 않아 결국 절단기가 동원됐다. 김지숙 기자

다소 수월했던 첫 번째 곰과 달리 두 번째 우리는 오래된 철문이 열리지 않아 결국 절단기까지 동원됐다. 마취 뒤 2층으로 올라가 잠든 곰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 의료진과 센터 직원들은 직접 철창 안으로 들어가 곰을 끄집어내려야 했다. 수로 위에 우리가 지어져 가장 좁고 열악한 사육 칸에서 지내야 했던 마지막 곰까지 철창에서 나오자 시간은 정오에 가까워져 있었다.

구례 토지면 문수사에서 마산면 곰마루쉼터까지는 차로 30분 거리로 그리 멀지 않지만, 구조인원의 손길은 여전히 분주하고 긴장돼 있었다. 구조 도중 마취에서 깨어나거나 건강상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양정진 야생생물의료센터 센터장(수의사)은 “사육곰들은 주로 개 사료·잔반을 급여 받기 때문에 영양 문제,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근골격질환, 피부 질환 등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문수사 곰들은 한 마리가 척추 질환으로 다리가 불편한 것 이외에는 건강상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진단됐다. 그러나 곰들이 사육장을 벗어나 햇볕을 쬐며 방사장을 거닐기까지는 두어 달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양두하 야생생물보전원 원장은 “거의 평생을 뜬장에서 생활한 곰들은 방사장 문이 열려도 쉽사리 밖에 나서지 못한다”면서 “지난 9월 구조한 곰들 또한 여전히 밖에 나가길 두려워한다”고 했다. “한 발 찍고 들어오고, 또 한 발 찍고 들어오고를 몇 주간 반복합니다. 방사장을 제 집처럼 쓰는 것은 거의 2~3달 이후나 가능해요.”

전남 구례 ‘문수사’ 경내에 설치되어 있는 곰 사육장 전경. 김지숙 기자
철창 2층 탑에서 지리산 왕시루봉을 보며 잠들었던 곰. 김지숙 기자

현재 곰마루쉼터에는 경기 연천·남양주·김포, 충남 보령, 전북 남원에서 구조된 반달가슴곰 38마리(문수사 3마리 포함)가 살고 있다. 농장에서 최소 10~15년 이상 갇혀 지냈던 곰들은 가까스로 철창에서 벗어났지만, 건강이 안 좋아 안락사하거나 구조 과정에서 사망하는 일도 벌어졌다. 정우진 센터장은 “곰이 보호시설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4마리가 폐사했다”며 “구조해보니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해 안락사해야 했던 곰부터 구조가 결정됐는데 일주일 사이에 죽은 개체도 있었다”고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신창근 서식지보전부 계장은 “구례곰마루쉼터는 늙은 곰들의 요양원”이라며 “시력을 아예 잃었거나 치아가 없는 곰들도 여럿인데, 이런 곰들은 과일과 돌을 제대로 구별 못 해 방사장 돌을 집어삼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여느 동물원보다 돌봄 노력이나 인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한다.

지난달 30일 전남 ‘구례곰마루쉼터’에 입소한 문수사 곰 가운데 한 마리가 마취에서 깨어나 먹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김지숙 기자
문수사 곰들이 지내게 될 전남 ‘구례곰마루쉼터’의 방사장 모습. 김지숙 기자

문수사의 곰 세 마리는 새 보금자리를 찾았지만, 전국 9개 농가에는 아직 갈 곳이 정해지지 않은 반달가슴곰 220마리가 남아있다. 오는 6월30일 ‘곰 사육 금지’ 유예 기간은 종료되지만, 곰들은 보호시설이 없어 한동안 농장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구례곰마루쉼터(45마리 수용 가능)는 이미 거의 자리가 찼고, 충남 서천에 새로 짓고 있는 보호시설도 수용 마릿수가 70여 마리 수준이기 때문이다. 김경석 생물다양성과 과장은 “서천 보호시설은 현재 공정률이 70% 수준”이라며 “올해 입식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또 “남아있는 곰들을 보호할 추가 보호시설 마련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구례/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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