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5·18 행불자, 이젠 가족 품으로"…암매장 추정지 광주 북구 효령동 일대 발굴 착수
북구 효령동 일대서 47일간 진행
유해 발견시 유족 DNA와 대조
안전 장비 없이 기억 의존 한계도

"5·18 행방불명자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 희생자들이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길 바랍니다."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닷새 앞둔 13일 오전 광주 북구 효령동의 야산 공동묘지.
안전 로프 하나 없이 45도 급경사 산비탈에 몸을 맡긴 작업자들은 투박한 호미와 삽으로 연신 흙을 긁어냈다. 작업자들의 이마에는 금세 땀방울이 맺혔고, 장갑은 전날 내린 비로 진흙 범벅이 됐다. 한 번 미끄러지면 수십 미터 아래로 곤두박질칠 아찔한 상황에서도 이들의 표정에는 비장함마저 묻어났다. 46년 전 오월의 진실을 캐기 위해서다.
이날 광주시와 5·18기념재단 등은 암매장 추정지에서 개토제를 열고 안전과 진실 규명을 기원한 뒤 시굴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는 암매장이 의심되는 1천㎡ 부지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유해 존재 여부를 우선 확인한 뒤 발견 시 정밀 발굴과 DNA 감식 절차로 이어지는 방식이다. 유해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 구역을 단계적으로 확장할 방침이다.
전체 조사 기간은 다음달 말까지 47일 간이다.
현장에선 오래된 고고학 발굴 현장처럼 작업이 진행됐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소속 조사원 10여 명은 중장비 대신 삽과 호미를 들었다. 한 번도 파인 흔적이 없는 토층이 나올 때까지 흙을 파낸다. 유해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유해를 찾기 위함이다. 한국선사문화연구원 관계자는 "구역 내에서 참호 형태로 길게 파내려가는 '트렌치(Trench)'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암매장 추정지 발굴은 20년 넘게 이어져 온 숙원사업이다. 진상 규명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인 '행방불명자(행불자)' 유해 수색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공식 인정된 행방불명자의 숫자는 73명이다. 공식 인정 사례 외까지 포함하면 200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광주시와 5·18 재단은 지난 1997년 5·18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뒤 지난 2002년부터 총 13곳을 발굴했지만 유해 확인은 번번이 실패했다.
그럼에도 재단이 이곳을 다시 특정한 이유는 '시신 재처리(이장)'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목격담 때문이다. 박강배 5·18 재단 상임이사는 이날 착수 보고에서 "지난해 당시 효령동 인근에서 살았던 주민들이 1980년 5월 항쟁 직후 군용 GMC 트럭이 야산 아래까지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고 증언했다"며 "군인들이 핏자국이 묻은 포대와 야전삽 등을 들고 산비탈로 올라갔다는 진술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남은 과제도 산적해 있다.
현재로선 결국 46년 전 기억과 제한된 정황에 기대야 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지난 2023년 활동을 종료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확보했던 암매장 조사 기록과 계엄군·피해자 진술서 등 60만 건 이상의 문헌이 국가기록물법에 따라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된 상태다. 특히 유가족들의 DNA 대조군 정보 역시 기록물과 함께 이관돼 있어, 현재로선 유해가 발견되더라도 곧바로 대조해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다.
수집한 기록물을 광주 지역 사회로 이관하기 위한 지난 2024년 발의된 특별법 개정안도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박 상임이사는 "정작 기록을 보고 연구해야 할 우리는 법적 권한이 없어 자료를 볼 수가 없다"며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을 찾는 일이니 만큼, 결국 국가가 책임지고 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윤목현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행불자들이 존엄을 되찾을 때까지 끝까지 찾고 밝히겠다"고 말했다.
/임지섭 기자 lj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