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렉스는 외면 관객은 매진…6개월째 상영 중, ‘느린 시네마’의 반란

김은형 기자 2026. 5. 1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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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전하는 말’ ‘3학년 2학기’ ‘1980 사북’ 장기 상영 이유
영화 ‘바람이 전하는 말’. 판시네마 제공

영화가 개봉하고 몇달 뒤면 오티티(OTT)에서도 볼 수 있는 요즘, 아무리 기다려도 오티티에 안 올라오는 한국 영화들이 있다. 양희 감독의 음악 다큐멘터리 ‘바람이 전하는 말’이 대표적이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양희은의 ‘하얀 목련’,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등 숱한 히트곡을 남긴 작곡가 김희갑의 음악 인생을 다룬 이 영화는 지난해 11월5일 개봉한 지 6개월이 지났어도 여전히 극장 상영 중이다.

일반 멀티플렉스에는 표가 없다. 개봉 당시 50개가량 스크린을 열었던 멀티플렉스는 2주 만에 영화를 내렸다. 혼자 영화를 보고는 친구와 한번 더 보려던 강욱천 문화예술기획 시선 대표는 상영관이 없어진 걸 알고 양 감독 에스엔에스(SNS)로 메시지를 보냈다. “영화를 보고 싶은데 극장이 없네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양 감독은 “대관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고 답했다. 강 대표는 서울 메가박스 동대문의 60석 규모 상영관을 개인 카드로 결제해 빌렸다. 그리고 지인들과의 단톡방에서 관람료 내고 영화 볼 신청자를 받자 순식간에 전석 매진됐다.

지난 7일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열린 ‘바람이 전하는 말’ 상영회. 양희 감독 제공

그렇게 강 대표가 시작한 대관 상영은 10회를 넘겼다. 어떤 관객은 친구들이나 이웃들과 또 보고 싶다고 같은 방식으로 다른 극장을 대관하기 시작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확산된 대관 상영은 서울에서 제주까지 50회에 이르렀다. 양 감독은 “고마운 마음에 가능하면 현장에 가서 관객들과 대화하려고 하는데, 반드시 한두분은 추가 대관 상영에 대해 문의하고 그게 다음 상영으로 이어진다”며 “멀티플렉스에 가면 흥행작이라도 비어 있는 상영관이 많은데, 우리 영화 상영관은 모두 매진이다. 관객 수로 환산할 수 없는 값어치”라고 말했다. 작은 상영관에서 한달에 10여차례 상영으로 지금까지 모인 관객 수는 8000여명. 거북이걸음이지만 올해 말까지 뚜벅뚜벅 걸어 극장에서 관객을 만난다는 게 양 감독의 목표다.

영화 ‘3학년 2학기’. 작업장 봄 제공

지난해 9월 개봉한 ‘3학년 2학기’(이란희 감독)는 무려 상영 10개월차에 이르렀다. ‘3학년 2학기’는 50~70대 관객이 대부분인 ‘바람이 전하는 말’과 관객층도, 장기 상영의 성격도 조금 다르다. 영화 제작자이자 배우로도 출연한 신운섭 피디는 “대학 진학이 아닌, 다양한 새출발을 하는 청소년들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장기 상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는 특성화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현장 실습 과정을 따뜻하고 먹먹하게 그렸다.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상을 많이 받았지만, 멀티플렉스의 냉대는 피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입소문이 나면서 라이카시네마, 더숲아트시네마 등 예술영화관이 장기 상영을 시작했다. 신 피디는 영화 주인공과 비슷한 환경에 놓인 학생들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전국 교육청과 시민단체 문을 두드렸다. 그는 울산시교육청의 두차례 대관으로 지역 학생들과 함께 봤던 상영이 인상적이었다면서 “영화가 끝난 뒤 ‘창우(주인공)와 같은 어려움이 생기면 꼭 이야기해라. 선생님이 든든한 배경이 돼주겠다’고 말하는 선생님과 학생들의 대화를 보면서 ‘3학년 2학기’는 집에서 혼자가 아니라 극장에서 사람들과 같이 봐야 하는 영화라는 걸 새삼 느꼈다. 오티티에서 판매 제안이 왔지만, 올해까지는 극장 상영과 단체 관람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영화 ‘1980 사북’. 엣나인필름 제공

두 영화는 지난해 10월 말 개봉한 박봉남 감독의 ‘1980 사북’과 손잡고 ‘느린 시네마―당신이 볼때까지’라는 이름의 장기 상영 캠페인을 준비하고 있다. ‘1980 사북’은 1980년 강원 사북에서 벌어진 노동자 시위와 국가폭력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지난해 11월 말부터 시민상영회를 시작했다. 정지영 감독, 최낙용 한국예술영화관협회장 등 영화인들이 송경동 시인, 사북 지역 인사들과 손잡고 전국 순회 상영과 함께 이 사건에 대한 국가의 사과 이행을 촉구하고 나섰다. 40개관으로 개봉한 뒤 스크린 수가 일주일 만에 반 토막으로, 그다음주엔 한 자리로 떨어졌지만, 지난달까지 80여회 대관 상영으로 누적 관객 수 1만3000명을 돌파했다. 개봉 즈음 펀딩으로 조성한 쌈짓돈과 무료 관람 관객이 자발적으로 낸 후원금을 모아 릴레이 대관을 이어가고 있다.

세 영화를 하나로 묶어 ‘느린 시네마’ 캠페인을 추진 중인 최낙용 협회장은 “공동 펀딩을 통해 세 영화가 손잡고 올해 말까지 상영을 이어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며 “상영 구조의 왜곡으로 와이드 릴리스의 피해를 보는 영화들이 계속 관객을 만날 수 있도록 시도하면서, 스크린 집중 현상을 깨는 제도적 변화까지 끌어내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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