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웃기를” 음악에 그 진심 담아 위로 전하는 가수[주파수 36.5]
무대 만드는 일 좋아 직장 그만둬
행사업체 열었지만 ‘코로나’ 난관에
보컬 강사 되려 들어간 대학에서
교수 권유 받아 가수의 길로 들어서
무명 시절 생긴 팬클럽 든든해
“보답하려 더 최선 다하게 돼”

2019년 여름 어느 날, 김무진(38) 씨는 공장에서 자동차에 들어갈 철판을 쳐다보고 있다. 그의 귀에서는 김광석의 노래가 흐르고 있다. 직장 생활 8년 차를 맞은 그다. 안정적이지만 쳇바퀴처럼 도는 삶이 계속될 거로 생각하니, 자기와 맞지 않다고 여겨졌다. 결국 그해 말 행사업체를 창업할 생각으로 사표를 냈다. 7년이 지난 지금 그는 행사장을 꾸리는 사람이 아닌 행사장 무대 위에 서는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운명은 스스로 개척한다지만, 이토록 예상외로 삶이 흘러갈 수도 있을까. "이제는 웃으면서 돌아볼 수 있다"며 지난 일들을 말하는 그를 보며 그동안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2024년 4월 3일 발표한 데뷔곡 '웃자'에는 힘들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에 있는 작업실을 찾아 그의 지난 이야기와 앞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2019년 12월 말에 8년 동안 다니던 자동차 공장을 그만뒀다. 주변에서 말렸지만 퇴사하기 전 6개월 동안 그가 알아보고 생각한 결과, 퇴사가 맞는 방향이었다. 힘든 시간을 보낼 때는 후회도 했다. 그렇지만 그때 회사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무대에 설 수 없었을 것이라는 걸 지금은 안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건 2012년에 만든 보컬팀 '싱잉'에서 쌓은 경험 덕분이었다. 무진 씨는 "싱잉으로 무대에도 섰지만, 노래만큼 좋아하는 건 내가 생각한 대로 무대가 빛나게 하는 음향·조명 일이었다"고 말했다.
퇴사 후 2020년 1월 행사업체를 설립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코로나19가 덮쳤다. 학교 행사를 위주로 했던 그는 충남 부여에서 첫 행사를 치르고 나서 이 일을 더 이어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생계를 이어가야 했기에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에 배달 위주로 운영하는 카페를 차렸다. 직접 배달에 나서면서 1년 6개월 정도 영업을 운영했지만, 점포가 2층이었던 한계와 근처에 저가 커피 체인점이 들어선 영향으로 제정 상황이 나빠지기만 했다.
당장 뭐라도 해야 했다. 밤에 잠이 오지도 않았고, 부정적인 생각도 들었다.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저녁에는 마산 3.15해양누리공원, 진해루, 마산 오동동 불종거리 등 거리로 나가 노래를 했다. 싱잉 초창기 때부터 함께 노래해 왔고, 그의 카페에서 일하던 정희욱 씨도 같이했다. 어려운 시기였지만 계속 노래하다 보니 실력도 쌓였고, 귀한 이들을 만나는 기회도 생겼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당시는 선택한 일에 책임지고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그는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게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리 무대가 나를 살렸다
무대를 빛나게 해주던 그는, 무대에서 빛날 인물이었나보다. 막막했던 상황에서 밟은 무대는 그에게 희망을 줬다.

2023년,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부산예술대학으로 진학했다. 행사업체를 운영하면서 우연한 기회에 노래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에 강사로 참여했다가 어릴 때부터 음악 교사가 돼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었던 꿈이 떠올랐다. 보컬트레이너가 될 마음으로 대학 입학을 선택했다. 만학도 전형이 있지만, 신입생으로 들어가 성장하고 싶었다. 일단 시작하면 굉장히 집중하는 그이기에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다닐 수 있었다.
학교에 다니며 그의 삶이 또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교수들은 그에게 가수가 될 것을 권했고, 2024년 4월 자신의 데뷔곡 '웃자'를 발매했다. 같은 해 5월 작곡가 송시현에게서 '나의 그대님'을 받았다. 이후 작곡가 이영준 교수와 계속 호흡을 맞춰 싱글 곡을 냈다.
2023년 KBS <아침마당 - 도전 꿈의 무대>와 <노래가 좋아>에 출연하며 얼굴이 많이 알려졌고, 무대에 오를 기회도 많아졌다. 이후 2024년 열린 20회 현인가요제에 참가해 동상을, 부산 지역 대학가요제에서는 대상을 받으며 실력을 입증했다.


가수 김무진으로 무대에 서는 일은 3년 전 부산예술대학 입학 때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다. 가장 기쁜 점은 팬들 앞에 서는 무대가 늘었다는 점이다. '무진전파'였던 팬클럽은 이제 '무럭무진'으로 이름을 바꾸어 그를 응원하고 있다. 무엇보다 팬클럽이 객석을 채워주고 있어서 든든하다. 그는 "팬들에게 더 좋은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며 "이전보다 사명감이 더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트로트 가수로서 대중에게 어느 정도 알려지면 음악을 더 쌓아나가고자 한다. 현재 이 교수와 계속해서 곡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조만간 발표되는 보컬 팀 싱잉을 위한 곡 '싱잉투게더', 그와 노래 인생을 함께 걸어온 장희욱 씨의 데뷔곡 '어쩌라고'도 그가 작곡하고 있다.
데뷔 전부터 그를 알았던 팬들은 그를 '마산의 임영웅'이라 부른다. 절제됐지만 확실하게 전달하는 감정 표현 때문인 듯하다. 그의 소리는 저음에서 부드럽고 고음에선 깔끔하다. 훈련으로 다져진 탄탄한 발성이지만 부담스러운 기교 없이 담백하다.
무대에 서면 김 씨는 자신을 '진심을 노래하며 위로를 전하는 가수'라고 소개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듯한 데뷔곡 '웃자'에서 우리는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지난날 슬픔 모두 잊고서/ 시원하게 소리쳐봐요 하하 (중략) 미소는 자신감의 특효약이라 싱글벙글 달려갑시다/ 크게 웃으면 힘이 생겨요/ 웃음은 행복의 바이러스라/ 함께 나누며 외쳐봅시다/ 모두 함께 이겨냅시다/ 웃자 웃자 웃자 웃자 웃자 (후략)" (노래 '웃자' 중)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