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동에서] 인공지능이라는 '만능 치트키', 전문성을 잊은 시대

인공지능(AI) 만능 시대이다. 생성형 AI 등장 이후, 우리는 손가락을 몇 번 움직여 방대한 정보를 요약하고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AI가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해 줄 것이라는 확신은 맹신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하지만 기술의 화려함 뒤에는 '전문성'의 본질을 위협하는 위험한 균열이 생기고 있다.
최근 법조계와 의료계에서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황당한 일들이 벌어진다. 변호사가 수십 년의 판례와 복잡한 법리를 검토해 작성한 서면을, 의뢰인이 AI에 돌려 "더 유리하게 다시 써달라"며 수정을 요구한다. 의료 현장 역시 AI가 제안한 처방 내용을 들고 와 의사에게 그대로 처방전을 작성해 달라고 요구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이는 해프닝을 넘어, 우리 사회가 기계적인 '데이터의 조합'과 전문가의 '실존적 진단'을 심각하게 혼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우리가 명확히 구분해야 할 점은 AI 결과물의 본질이다. AI는 과거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계산하여 확률적으로 제시하는 '데이터의 조합'이다. 반면, 변호사나 의사가 수행하는 작업은 숫자로 치환될 수 없는 한 사람의 현실을 읽어내는 '실존적 진단'이다. 전문가는 단순히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의뢰인의 눈물 뒤에 숨겨진 억울함이나 환자의 안색과 숨소리를 직접 보고 느끼며 판단을 내린다. 법률 서면이나 의사 처방은 단순히 글자를 나열하는 작업이 아니라, 해당 개인의 구체적인 정황과 복잡한 이해관계를 마주하고 도출해내는 '구체적 정의'와 '개별적 치유'의 결과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서면을 AI에게 다시 써달라고 요청하는 행위는 고도의 법률적 판단을 단순한 '그럴싸한 문장 만들기'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위험한 착각에서 비롯된다. 'AI에 입력되어 있는 법률 지식이, 변호사보다 내 입맛에 맞게 문장을 더 잘 다듬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치명적인 오해를 낳는다. AI는 의뢰인의 인생이 걸린 재판의 무게라는 실존적 가치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만약 의뢰인이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선별적으로 입력한다면, AI는 상대방의 반박 논리나 객관적인 증거 관계를 완전히 배제한 채 '편향된 소설'을 써 내려가게 된다. 법정이라는 팽팽한 공방의 공간에서 상대방의 전략을 간과한 채 작성된 이 보기 좋은 글은, 결국 아군을 위험에 빠뜨리는 자폭 행위이자 치명적인 독이 될 뿐이다.
이러한 위험은 의료계에서도 동일하다. 처방전은 환자의 기저질환과 컨디션 등 수많은 변수를 의사가 직접 관찰하고 판단한 끝에 나오는 최후의 보루다. AI가 추천하는 약물 리스트는 확률적 데이터의 산물일 뿐, 환자의 고유한 생물학적 특성을 실시간으로 반영하지 못한다. 문맥을 읽는 것이 아니라 단어의 확률을 계산하는 기계의 결과물에 매몰되어 직접 대면과 심층 분석 과정을 생략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당사자에게 돌아온다. 잘못된 법률 서면이 패소로 이어지듯, 잘못된 처방은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로 직결된다.
가장 본질적인 차이는 '책임'의 유무에 있다. 실존적 진단에는 언제나 엄중한 책임이 따른다. 전문직의 판단과 진단은 단순한 정보 출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짊어지는 숭고한 책임의 산물이다. 변호사와 의사는 이름과 면허를 걸고 결과에 책임을 지지만, 인공지능은 '확률대로 썼을 뿐'이라며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실존적 진단을 혼동하여 기계의 문장 생성 능력을 전문가의 판단과 동급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기술은 도구일 뿐 주체가 될 수 없으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통을 함께 고민하는 전문가의 직관을 대신할 수도 없다. 자신의 인생이 걸린 결정을 확률적 텍스트 생성기라는 도박에 맡기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도 소중하다.
/안귀옥 변호사·안귀옥법률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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