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초보 감독’ 전주원 “위 감독님께 누끼치지 않게, 그동안 시간 헛되지 않게”[스경X21th]

비시즌의 체육관은 조용하다. 선수단 휴가 기간, 공 튀는 소리가 사라진 체육관은 적막했다. 새 시즌을 준비하는 코칭스태프의 시간은 늘 그렇게 시작된다. 그러나 전주원 우리은행 신임 감독(54)에게 이번 봄은 이전의 비시즌과 전혀 다르다.
코치 시절에도 회의를 했고, 선수단 구성을 살폈고, 감독을 도와 모든 준비를 함께했다. 하루의 쓰임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마음이다. 이제는 감독이다. 전주원 감독은 “시간적으로 바쁜 것도 있지만 마음은 100배 더 바쁘다”고 했다.
감독 선임 한 달. 그는 벌써 잠을 설친다고 했다. “부담감이 있으니까 잠이 좀 잘 안 와요. 벌써부터요.”
전 감독은 12일 스포츠경향 창간 기념 인터뷰에서 감독 선임 이후 한 달간 달라진 일상과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농구 인생에 대한 준비 과정을 담담히 털어놨다.
■ “난 초보 감독 전주원”
전주원은 한국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이름이다. 선수 시절 최고의 포인트가드였고 대표팀에서도 늘 중심에 섰다. 은퇴 뒤에는 지도자로 20년 가까이 코트를 지켰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에서 코치로 활동했고, 대표팀 감독으로도 많은 경험을 쌓았다.
밖에서는 그를 ‘준비된 감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준비는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한 것 같아요. 준비가 다 됐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실전은 또 다르니까요.”
그래서 그는 자신을 조금 낮춰 표현했다. 스타 출신 지도자가 아니라 ‘초보 감독 전주원’으로 봐달라고 했다.
“선수 때를 생각하면 안 되고요. 저는 물론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제 모든 걸 쏟아부을 겁니다. 다만 너무 많은 기대보다는 초보 감독 전주원으로 봐주시면 좋겠어요. 저도 감독으로서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독의 첫 한 달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자유계약선수(FA) 최대어 강이슬 영입이 있었고, 코칭스태프 구성도 새롭게 해야 했다. 아시아쿼터 선수 문제도 다시 살펴야 했다.
전 감독은 “이번 달 안에는 모든 세팅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 코칭스태프 구성은 80% 정도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아시아쿼터 시장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했다.
“리스트 자체가 많지 않았고, 나온 선수들도 다른 일본 팀으로 가는 경우가 있어요. 모든 팀이 다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그는 결정하는 사람이다. 감독은 누군가에게 보고하고 조언을 구하던 자리가 아니다. 같은 비시즌이라도 코치 시절과 마음의 무게가 다른 이유다.
■ 위성우 총감독과 20년 “그 밑에서 배울 수 있어 감사했다”
물론 곁에는 여전히 위성우 총감독이 있다. 전 감독은 중요한 순간마다 위 총감독에게 조언을 구한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대개 비슷하다.
“네가 알아서 하는 게 맞다. 네가 감독이기 때문에 네가 생각하고 직접 결정하는 게 맞다.”
위 총감독은 누구를 쓰라거나 쓰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 감독은 그 말에서 부담과 배려를 동시에 느낀다.
“제 결정이 가장 중요한 거고, 제가 팀을 꾸려야 하니까 제 선택을 존중해주시는 거죠.”
두 사람이 함께한 시간은 길고도 특별했다. 선수와 코치 시절까지 합치면 20년이다. 신한은행에서 6년, 우리은행에서 14년을 함께했다.
전 감독은 위 총감독과 함께한 숱한 기억 가운데 두 장면을 꺼냈다. 첫 번째는 우리은행으로 함께 옮긴 첫해의 우승이다. 2012년 당시 우리은행은 만년 꼴찌 팀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팀을 맡은 직후 곧바로 정상에 올려놓았다. 첫 출발의 어려움과 결국 성과를 만들어냈던 짜릿한 기억은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고 했다.

두 번째 기억은 2년 전이다. 선수 9명이 팀을 떠났고 우리은행 출신 선수도 거의 남지 않았다. 뒤늦게 남은 선수들을 모아 다시 시즌을 치러야 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우승을 일궈냈다. 전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위성우 감독님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렵고 힘들게 일군 우승일수록 더 선명하게 남는 법이다.
위 총감독이 처음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했을 때 전 감독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계속 ‘감독님 그냥 하세요. 왜 그만두시려고 하세요’라고 했어요.”
위 총감독은 이제는 물러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간 데다 부상까지 이어지면서 힘든 시간이 길었다. 전 감독은 그 마음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다.
그래도 막상 감독 자리가 자신에게 왔을 때 느껴지는 무게는 또 달랐다.
“부담감이 확 느껴졌어요. 책임감도 많이 느꼈고요. 워낙 잘하셨던 감독님이잖아요. 그 후임은 누가 와도 부담일 거예요.”
그는 부담을 숨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전 감독은 위 총감독이 쌓아온 시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여자농구에서 전무후무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그런 분이 또 나올 수 있을까 싶어요. 감독님이 그동안 쌓아놓은 것들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제가 모든 걸 다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위성우 총감독에게 마지막 인사도 남겼다. 20년을 함께한 동반자에게 건네는 진심이었다.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독이 되신 뒤 14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셨으니까 이제는 조금 편안하게, 천천히 걸어오셔도 될 것 같아요. 대신 걸음은 멈추지 마시고요. 그 밑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 강이슬과 김단비, 새 농구의 출발점
감독 전주원의 색깔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 역시 자신이 어떤 감독이 될지 궁금하다고 했다. 덕장, 지장, 용장 같은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지는 않았다.
“다 섞였으면 좋겠어요. 제가 어떤 스타일일지는 저도 아직 해보지 않아서 몰라요.”
그러면서 웃었다. 오래 함께한 사람은 닮기 마련이다.
그는 “화내는 포인트가 점점 총감독님과 같아졌다”며 “제가 함께 오래 있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농구적으로 가장 큰 변화는 강이슬의 합류다. 김단비와 강이슬의 조합만으로도 팬들의 기대는 커지고 있다. 전 감독 역시 그 기대를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섣불리 팀 색깔을 단정해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은행은 높이가 좋은 팀은 아니다. 센터 자원 수급도 쉽지 않다. 그래서 외곽과 스피드의 조화가 더욱 중요하다. 강이슬과 김단비는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다. 전 감독은 두 선수의 시너지, 그리고 그 영향력이 팀 전체로 번져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둘의 시너지도 좋아야 하고, 그 영향으로 팀 전체 시너지도 좋아져야 합니다. 그걸 잘 구상하는 게 제 몫이죠.”

그는 자신의 농구를 선수들에게 억지로 입히려 하지 않는다.
“제가 하고 싶은 색깔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상황과 선수 구성을 고려해 가장 잘 맞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훈련을 하며 찾고, 시즌을 치르면서 또 찾아가야 한다. 강이슬에게는 대표팀 일정도 있다. 시즌 초반부터 완벽한 호흡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도 전 감독은 “잘하는 선수들”이라고 했다. 짧은 말이었지만 두 선수에 대한 믿음이 담겨 있었다.
■ 두려움을 안고 다시 초심으로
여자프로농구는 전 감독의 합류로 여성 감독 절반 시대를 맞게 됐다. 그에게도 그 의미는 작지 않았다. 선수 시절만 해도 여성 감독에게 배운다는 것 자체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전 감독은 자신과 동료 여성 감독들이 잘해야 다음 세대에게도 길이 열린다고 말했다.
“저희가 잘해야 후배들도 나설 자리가 생깁니다. 저희가 길을 잘 닦아야 후배들도 좋은 길로 따라올 수 있어요. 그런 책임감도 굉장히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새 출발을 앞두고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고 했다. 전 감독은 자신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웃었다. 어렵고 힘든 감정을 애써 밀어내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한다.
“새롭게 출발하는 만큼 선수들도, 저도 마음가짐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수들도 저도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걸 새롭게 시작했으면 합니다.”
감독 선임 이후 비시즌 휴식기라 아직 선수단 전체를 감독 자격으로 만난 적은 없다. 곧 선수들을 모으면 특별한 말을 길게 하지는 않을 생각이라고 했다.
“농구는 열심히 하면 됩니다. 훈련에서는 감독을 잘 따라와야 하고요. 크게 바뀌는 것은 없겠지만 마음가짐은 달라져야 해요. 지난해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다면 올해는 더 잘할 수 있도록 준비하자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화려한 스타 출신이었던 전주원은 비교적 늦게 감독이 됐다. 오랜 코치 생활을 거쳐 이제야 자신의 팀을 맡게 됐다. 그는 스스로에게 건네고 싶은 말도 거창하지 않았다고 했다. 멋있게 “즐기자”는 말은 쉽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 성격이 아니라고 웃었다.
대신 조용히 자신을 응원했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헛되지 않게, 자신감을 갖고 앞을 보며 걸어 나가기를 바랍니다.”
체육관은 아직 조용하다. 선수들이 돌아오고 공 소리가 다시 채워지면 전주원 감독의 첫 시즌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는 아직 자신이 어떤 감독이 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더 솔직했다. 두렵지만 피하지 않고, 부담스럽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최고의 선수였던 전주원과 오랜 시간 코트 옆을 지킨 코치 전주원을 지나, 이제 ‘초보 감독 전주원’이 코트 한가운데에 선다.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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