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베 대표 "듀퐁 정체성에 현대적 감각 입힐 것…韓 소비자 안목 높아"

안혜원 2026. 5. 13.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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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알랑 크레베 에스.티.듀퐁 CEO
오감 만족시키는 '예술적 오브제' 된 라이터
캔들·인센스 점화로 용도 확장…제품군도 늘려
매년 기술력·스토리텔링 바탕으로 한정품 기획
150년 유산에 트렌드 접목한 컬렉션 선보여
한국 소비자는 제품 재해석하는 감각 뛰어나
에스.티.듀퐁 CEO 알랑 크레베(Alain Crevet). 에스.티.듀퐁 제공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스.티.듀퐁(듀퐁)’의 라이터는 소리만 들어도 ‘듀퐁’임을 금세 인지할 수 있다. 뚜껑을 열면 나는 ‘클링 사운드(Cling Sound)’ 때문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도 듀퐁 라이터 특유의 ‘퐁’ 소리는 안다. 이 사운드는 제품의 크기와 무게, 재질이 균형을 이뤄야 나올 수 있다. 듀퐁의 오랜 장인 정신이 축적된 소리다.

누아르와 액션 영화에선 여전히 중요 장면마다 듀퐁 라이터를 배치하곤 한다. 등장 인물의 취향과 지위를 한눈에 설명하기에 이만한 소품이 없다. 라이터를 열면서 나는 특유의 소리가 관객의 주의를 환기 시킬 수 있다.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가 고뇌의 순간마다 라이터를 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타짜’ 조승우, ‘신세계’ 이정재, ‘야당’ 강하늘까지. 어김없이 손에 쥐고 있던 건 듀퐁 라이터다. 듀퐁 라이터는 단지 불을 붙이는 도구가 아닌 오감을 만족시키는 ‘럭셔리 오브제’인 셈이다.

흡연 인구가 줄고, 흡연자 마저 전자담배로 넘어가는 시대에 듀퐁 라이터가 여전히 수집되는 이유다. 알랑 크레베 에스.티.듀퐁 최고경영자(CEO)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제품의 본질을 바꾸기보다 사용 방식과 의미를 확장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명한 클링 사운드가 매력적인 푸엔테 라이터. 에스.티.듀퐁 제공

 ◇ “단순한 점화 장치 아닌 오브제”

크레베 대표는 듀퐁 라이터의 인기 비결에 대해 기능보다는 상징성에 초점을 맞춰 설명했다. 크레베 대표는 “제 어머니도 흡연을 하지 않지만 듀퐁 라이터를 여러 개 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레베 대표는 이 사례가 현재의 듀퐁 라이터가 지향해야 할 위치를 잘 보여준다고 짚었다.

그는 “초나 인센스를 켤 때 등 일상 속 다양한 순간에 활용한다”며 “어머니는 라이터를 단순한 점화 도구가 아닌 일상을 특별하게 가꿔 주는 감성적인 제품으로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흡연 문화가 바뀌었다고 해서 라이터 수요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그 용도가 넓혀지는 추세라는 게 크레베 대표의 시각이다. 그는 “캔들을 켜는 일, 인센스에 불을 붙이는 일, 시가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 야외에서 토치 라이터를 쓰는 일까지 이 모든 장면을 ‘불을 다루는 기술’의 확장으로 보고 있다”며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과 사용 방식에 맞춰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듀퐁의 역사는 1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72년 시몽 티소 듀퐁이 창립한 회사로 사업 초기에는 여행용 캐리어와 가죽가방을 주로 만들었다. 1941년 들어서 석유 라이터를 최초로 발명하면서 럭셔리 브랜드계에 입성했다. 이후 필기구, 액세서리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당시 럭셔리 액세서리의 전당이던 루브르 상점에 공식적으로 납품했다. 기능적 역할에 머물던 제품을 예술적 오브제로 확장해온 것이 브랜드의 핵심 정체성이다. 수집가들이 여전히 듀퐁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크레베 대표는 “컬렉터들은 단순히 제품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간과 기술, 브랜드의 헤리티지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다”며 “듀퐁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부아페르(savoir-faire)’가 이같은 가치와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사부아페르는 오랜 시간 축적된 장인의 기술력과 세대를 거쳐 이어지는 노하우를 뜻한다. 제품의 가격보다 중요한 것이 제작 과정에 담긴 시간, 손 끝의 기술, 브랜드가 쌓아온 역사라는 의미다.

 ◇ “진정한 럭셔리는 희소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럭셔리에 대한 갈망은 ‘희소성’에서 온다.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한정판을 내놓는 이유인데, 모든 브랜드가 매 시즌 ‘리미티드 에디션’을 내놓는 통에 한정 제품 간 경쟁이 심화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한정 수량만 나오는 ‘희소한’ 제품일 지라도 스토리가 뒷받침되지 않는 제품은 더 이상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기가 어렵다. 크레베 대표는 “진정한 희소성은 적은 수량에서 오는 게 아니라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 있다”며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시대일수록 오랜 시간과 기술이 축적된 제품의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뜨 크리에이션 DC 코믹스 조커. 에스.티.듀퐁 제공


한정품에 이 같은 철학을 집약적으로 담았다는 게 듀퐁 측의 소개다. 크레베 대표는 “듀퐁은 매년 헤리티지와 기술력,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한정품을 기획한다”며 “문학, 예술, 팝,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한 영역에서 영감을 받아 완성도 높은 오브제를 선보이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스위스의 명품 시계 제조업체인 프랭크 뮬러와의 협업이다. 라이터에 프랭크 뮬러의 섬세한 스켈레톤 무브먼트를 결합한 제품으로 독특한 외양뿐만 아니라 기술력으로 인정받은 제품이다. 라이터나 필기구 등에 문학적 서사를 입힌 ‘해저 2만리’, ‘DC 코믹스’ 컬렉션도 호평을 받았다. 크레베 대표는 “향후 조각가 리차드 올린스키와의 협업을 선보일 예정으로 현대 예술과 전통적인 장인정신의 결합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27년까지 진행하는 ‘아트 오브 라커(Art of Lacquer)’ 프로젝트도 있다”며 “장인들의 전문 지식을 활용해 금은 세공 기술, ‘마키에 기법’ ‘기요셰 패턴’ 등 고유의 기술과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컬렉션으로, 주문 제작 기반의 극소량 생산 방식으로 선보이는 라인”이라고 설명했다.

 ◇ “유행 수명 짧은 한국서 오래된 브랜드가 세운 전략은”

크레베 대표는 한국을 주목하는 이유로 ‘안목’을 언급했다. 그는 “한국 수집가들은 품질, 디자인, 브랜드 진정성에 대해 매우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며 “브랜드가 가진 헤리티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했을 때 이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시장 중 하나가 한국”이라고 했다. 이어 “한국 소비자들은 제품을 자신만의 스타일과 취향으로 재해석하는 감각이 뛰어나다”고 덧붙였다.

듀퐁은 최근 미니 펜 네크리스와 라이터 네크리스 등을 선보이며 클래식한 오브제를 착용 가능한 제품으로 바꾸고 있다. 기존에 라이터와 필기구가 재킷 안주머니나 책상 위에 머무는 물건이었다면, 이제는 목에 걸고 스타일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클래식 제품을 현대적으로 다시 해석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대표 제품은 ‘라인 1’이다. 라인 1은 듀퐁 최초의 럭셔리 라이터로 재클린 케네디와 마릴린 먼로, 오드리 헵번 등 당대의 아이콘들에게 사랑받았던 제품이다. 새롭게 선보인 뉴 라인 1은 기존의 우아한 실루엣과 컴팩트한 크기를 유지하면서도 오늘날의 감성에 맞게 다시 디자인됐다.

크레베 대표는 “아이코닉한 오브제를 착용 가능한 형태로 재해석해 패션과 스트리트 문화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를 단순히 한국 젊은층 공략으로만 보지 않는다고 했다. 크레베 대표는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브랜드의 방향과 일관성”이라며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유행을 좇기보다 듀퐁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래된 브랜드일수록 변화를 외면해서도 안 되지만, 변화 자체를 목적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죽 제품 라인을 강화하는 것도 동일한 맥락에서 설정한 전략이다. 크레베 대표는 “듀퐁은 라이터와 필기구로 널리 알려졌지만, 출발점은 트렁크와 가죽 제품”이라며 “‘리비에라’, ‘빅토리아’, ‘아이코닉’ 등 가죽 컬렉션은 구조적인 아름다움과 우아함, 실용성을 균형 있게 담아낸 제품으로, 트렁크 메이커로서 헤리티지를 강화할 수 있는 컬렉션”이라고 내세웠다.

향후 브랜드의 핵심 전략은 매출 규모 같은 양적 목표에만 있지 않다. 듀퐁은 브랜드를 알리는 소통 방식 자체를 바꾸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크레베 대표는 “듀퐁의 목표는 헤리티지를 기반으로 현대적인 감각을 갖춘 글로벌 라이프스타일 럭셔리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테일 전략 역시 외형 확장보다 경험에 방점을 찍었다. 소비자가 제품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의 감각을 직접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크레베 대표는 “리테일은 단순히 매장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전개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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