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대구(17)국립신암선열공원 모신 독립유공자 48위

최미화 기자 2026. 5. 1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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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신암선열공원 독립지사 48위 출신지는 경북 25명, 대구(달성군 포함) 13명, 경남 2명으로 전체의 83.3%를 차지한다. 제미나이 제작.
한국독립운동사는 1894년 갑오의병에서 1945년 광복에 이르는 약 60년에 걸쳐 전개됐다. 국권회복운동과 독립운동이 포함됐다. 대구지역의 대한제국기 국권회복운동의 이념과 경험은 1910년대 독립운동으로 계승· 발전되었다. 개항 이후 대구지역이 정치행정의 중심지로 급격하게 성장했고, 인재배출과 물화가 집결된 교역의 중심지였기에 대구지역의 독립운동은 경북지역과 함께 1910년대 일제의 무단폭압정치 아래서 매우 치열하게 펼쳐졌다.
독립지사 단일묘역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국립신암선열공원에 대한 70년 이력에 대한 정확한 기록 생성과 이곳에 모셔진 독립지사들에 대한 현창사업 활성화가 절실하다. 김진홍 기자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저항했던 민족지사들을 폭도로 규정하여 처형하고, 투옥시키고, 고문을 가했지만 일본의 한국병합과 지배에 반대하는 단체와 개인의 투쟁은 불굴의 항전을 이어갔다. 국립신암선열공원에 모셔진 독립유공자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맞선 결기와 애국심이 이를 대변하고 있다.
국립묘지 신암선열공원는 비교적 덜 알려져서인지 신암공원과 혼동하는 이도 적지 않다. 선열에 대한 현창사업 활성화가 필요하다. 최미화 기자
독립지사 단일묘역으로 국내에서 가장 큰 국립신암선열공원에 모셔진 영령 48위(미서훈자 4위 외)를 출생지별로 분류해보면 대구경북 출신이 전체 48명 가운데 38명이다. 경북이 25명, 대구(달성군 포함)가 13명이다. 위기 때마다 나라를 구한 대구경북 선조들의 실천적 삶이 국립신암선열공원에서 또다시 증명되고 있다. 여기에 경남도 출신 지사 2위까지 합치면 경상도 독립유공자 비중이 83.3%(40명)에 달해 국립신암선열공원은 영남권 독립운동의 상징적인 장소임을 잘 보여준다. 이외에도 평북 출신 3위를 비롯, 황해도 2, 함북 1, 함남 1위 등 이북 5도 출신이 지사 7위가 서울시 출신 1위와 함께 신암선열공원에 영면하고 계신다.
국립신암선열공원 내 단충사는 누구든지 들어가서 지사들에 대한 추모의 예를 올릴 수 있다. 최미화 기자.
대구시 독립지사 중에는 중구 남산동 출신으로 서문장터에서 터진 대구 3.8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마구잡이 폭행을 당한 뒤 체포, 고문까지 더해 가출옥 상태에서 순국한 김용해(24세)와 그 아버지이면서 대구YMCA초대총무로 대구 3.8운동 당시 서문장터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다가 폭행당하고 체포 당해 2년6개월 옥살이를 한 김태련 지사가 제5묘역에 나란히 묻혀 5월 가정의달에 비장한 슬픔을 느끼게 하고 있다.
5월 가정의달에도 찾는 이들이 많지 않은 국립신암선열공원. 더 많이 알리고, 안장된 선열에 대한 조사와 현창 사업이 필요해보인다. 최미화 기자
국립신암선열공원 독립유공자 48위(미서훈자 백기만, 김성국, 허발, 김용규 제외) 중 가장 많은 선열을 배출한 기초지자체는 각각 5명의 지사를 배출한 경산시(박만선, 김홍준, 최동식, 최태만, 현영만)와 달성군(김점학, 박재헌, 이봉로, 정동석, 박태현)이다. 그 뒤를 의성군(4명, 김원휘, 김충한, 박낙현, 장성표)과 포항시(영일 포함 3명, 백영촌, 김헌술, 정상득)·고령군(3명, 박영진, 신길우, 김삼도 )·성주군(3명, 배학보, 강명호, 김두희) 등이 잇따르고 있다. 이북에서는 평북의 용천, 신의주, 운산 각 1위를 배출했고, 함북(회령), 함남(원산), 그리고 서울시가 각 1위의 독립지사를 신암선열공원에 모시고 있다.
3.8 대구독립운동 현장에서 왜경으로부터 무차별 폭력을 당한 뒤 체포돼 고문까지 더해지면서 초주검이 된 김용해 지사는 가출옥됐으나 이내 순국했다. 국립신암선열공원 제 5묘역에 아버지 김태련 지사 묘소 아래에 함께 영면해 있다. 최미화 기자.
운동계열별 분포를 보면 △광복군 11명(22.9%) △국내항일 11명(22.9%) △3.1운동(대구 3.8 독립운동 포함) 8명(16.7%) △학생운동 4명(8.3%) △일본 방면 4명(8.3%) △의병 3명(6.3%) △문화/계몽운동 등 기타 7명(14.6%)이다.
국립신암선열공원에 안장된 독립유공자 48명에 대해 운동계열별로 분석해보면 국내항일과 광복군 계열이 각 11영으로 가장 많고, 3.1운동(대구 3.8독립운동)이 8명으로 그 다음을 차지했다. AI 제작

◆국립신암선열공원 조성 시기 및 경위
국립신암선열공원은 1955년 3월17일에 처음 조성됐다. 당시 대구시 남구 대명동에 있던 시립공동묘지 일대에 흩어져 있던 애국선열의 묘소 5위를 대구대 대명동캠퍼스 부지) 일대에 흩어져 있던 애국선열의 묘소 5위를 현 위치인 동구 신암동으로 옮겨오면서 집단 묘역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1957년 3월11일에 경상북도가 '선열묘지'로 공식 지정하였고, 1974년에는 경상북도에서 대구시로 관리권이 이양됐다. 1981년에 직할시로 승격한 대구시가 이듬해인 1982년 2월13일에 선열묘지 설치 및 관리조례를 제정했고, 1987년 3월1일 '묘역 성역화 사업'을 준공하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011년 들어서 조형물 설치, 단충사 정비, 공적비 설치 등을 포함한 제정비 공사를 했고, 2018년 국내 유일의 독립유공자 전용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지금은 국가보훈부가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신암동으로 이장할 때 3.1동지회가 유족등과 함께 청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국립신암선열공원 관리소에서도, 대구광복회에서도, 과거 관리소장을 역임했던 이도 모르고 있어 제대로된 현창사업이 필요해보인다.

◆대구 신암동에 모셔진 애국지사 48위는?

애국지사별로 이름(한자 표기, 이명, 생년월일), 훈격(서훈 시기), 운동계열(출신지)를 통해 다시한번 고귀한 넋을 기린다.

△임용상(林龍相, 임병오, 1877.5.22~1958.1.5) / 독립장(1977)/ 의병(경북 청송)
△김명천(金明天, 1916.9.11~1999.7.22) / 애국장(1990 )/ 광복군(함북 회령)
△김세용(金世用, 1907.9.12~1966.7.12) / 애국장(1990) / 광복군(평북 용천)
△박만선(朴晩善, 1924.3.11~1999.2.28) / 애국장(1990) / 국내항일(경북 경산)
△박영진(朴永晋, 1921.3.27~1950.6.25) / 애국장(1993) / 광복군(경북 고령)
△방한상(方漢相, 1900.8.23~1970.1.8) / 애국장(1991) / 국내항일(경남 함양)
△배학보(裵鶴甫, 1920.8.19~1992.10.28) / 애국장(1991) / 학생운동(경북 성주)
△백영촌(白永村, 백남신) 1882.10.12~1964.10.12) / 애국장(1990) / 의병(경북 영일)
△송두환(宋斗煥, 1892.11.9~1969.5.28) / 애국장(1990) / 국내항일(대구 신암)
△신재모(申宰模, 1885.4.26~1958.6.15) / 애국장(1990) / 국내항일(경북 칠곡)
△안윤재(安允在, 1877.11.17~1944.2.27) / 애국장(1990) / 계몽운동(황해 송하)
△김태련(金兌鍊, 아버지, 1879.1.25~1943.8.19) / 애족장(1990) / 3.1운동(대구 남산)
△김용해(金湧海, 아들, 1897.7.26~1919.4.13) / 애국장(1991) / 3.1운동(대구 남산)
△강명호(姜明鎬, 1924.5.19~1992.5.15) / 애족장(1990) / 광복군(경북 성주)
△김교훈(金敎勳, 1896.12.2~1973.5.31) / 애족장(1990) / 문화운동(경북 김천)
△김두희(金斗熙, 1921.1.4~2000.2.29) / 애족장(1990) / 일본방면(경북 성주)
△김석용(金碩用, 1924.2.16~1990.7.24) / 애족장(1990) / 일본 방면(경남 통영)
△김세영(金世榮, 1889.5.21~1979.3.4) / 애족장(1990) / 3.1운동(경북 영덕)
△김원휘(金原輝, 1884.7.20~1950.4.15) / 애족장(1990) / 3.1운동(경북 의성)
△김점학(金點學, 김선기, 1906.10.6~1960.3.5) / 애족장(1908) / 국내항일(대구 달성)
△김충한(金忠漢, 1883.10.24~1965.12.30) / 애족장(1990) / 3.1운동(경북 의성)
△김헌술(金憲述, 1924.10.5~1988.3.6) / 애족장(1990) / 일본방면(경북 영일)
△김홍준(金洪俊, 1922.10.24~1993.3.22) / 애족장(1986) / 대왕산(경북 경산)
△박낙현(朴落鉉, 1887.8.27~1957.4.6) / 애족장(1990) / 3.1운동(경북 의성)
△박재헌(朴在憲, 1900.1.25~1986.2.28) / 애족장(1990) / 문화운동(경북 달성)
△서달수(徐達洙, 1920.4.17~1992.2.24) / 애족장(1990) / 일본방면(경북 월성)
△신길우(申吉雨, 1924.2.11~2003.12.5) / 애족장(1990) / 광복군(경북 고령)
△우해룡(禹海龍, 1906.7.16~1969.3.9) / 애족장(1990) / 국내항일(대구)
△이동하(李東廈, 1875.4.18~1959.3.18) / 애족장(1994) / 만주방면(경북 안동)
△이봉로(李鳳魯, 1902.7.20~1940.2.22) / 애족장(1990) / 제2경북(경북 달성)
△이승주(李承株, 1922.6.19~1990.4.1) / 애족장(1990) / 광복군(평북 신의주)
△이헌일(李憲一, 1917.3.25~1979.4.17) / 애족장(1990) / 광복군(대구)
△이혜경(李惠卿, 1889.2.22~1968.2.10) / 애족장(1990) / 국내항일(함남 원산)
△장성표(張星杓, 1924.8.27~1999.1.12) / 애족장(1990) / 광복군(경북 의성)
△장언조(張諺祚, 1924.9.5~1998.9.29) / 애족장(1990) / 광복군(대구)
△정동석(鄭東錫, 1885.8.4~1968.12.16) / 애족장(1992) / 임시정부(대구 달성)
△정명준(鄭命俊, 1900.7.26~1959.8.22) / 애족장(1990) / 국내항일(경북 칠곡)
△정상득(鄭尙得, 1886.7.1~1969.9.12) / 애족장(1969) / 의병(경북 영일)
△조기홍(趙氣虹, 1883.7.24~1945.8.2) / 애족장(1990) / 국내항일(대구)
△최 고(崔 皐, 1924.4.19~1988.8.23) / 애족장(1990) / 학생운동(서울)
△최동식(崔東植, 1926.1.27~2005.4.29) / 애족장(1990) / 국내항일(경북 경산)
△최태만(崔泰萬, 1918.5.10~1993.5.14) / 애족장(1986) / 국내항일(경북 경산)
△최태석(崔泰碩, 1920.1.1~1995.10.9) / 애족장(1990) / 학생운동(경북 청도)
△현영만(玄泳晩, 1921.5.2~1981.4.6) / 애족장(1977) / 문화운동(경북 경산)
△김삼도(金三道, 1900.9.3~1967.6.2) / 대통령표창(1992) / 3.1운동(경북 고령)
△박태현(朴泰鉉, 1899.7.14~1974.4.1) / 대통령표창(1992) / 3.1운동(대구 달성)
△방봉순(方鳳淳, 1918.9.3~1998.3.23) / 대통령표창(1963) / 광복군(황해 안악)
△송서룡(宋瑞龍, 1916.3.8~1979.9.9) / 대통령표창(1963) / 광복군(평북 운산)
그외 미서훈자로 상고예술학원을 통해 대구문화운동을 펼쳤던 백기만(白基萬, 『씨뿌린 사람들』 편저), 학생운동을 했던 김성국(金成國), 허발(許拔), 김용규(金容圭) 등 4위가 모셔져 있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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