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일주일 만에 2,000억…피츠버그의 파격 베팅이 KBO에 던진 질문은

최근 미국 메이저리그(MLB)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이하 피츠버그)는 최고 유망주에게 파격적인 베팅을 했다. MLB 데뷔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신인 선수에게 구단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장기 계약을 안긴 것이다. 주인공은 2024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9순위로 지명됐고, 2026년 베이스볼 아메리카(BA)와 ESPN이 선정한 MLB 유망주 랭킹 1위에 오른 코너 그리핀이다.
피츠버그는 지난 4월 3일 그리핀을 빅리그에 콜업했다. 그리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8일, 9년 최대 1억5,000만 달러(약 2,243억 원) 규모의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보장 금액만 1억4,000만 달러에 달한다. 옵트아웃(계약 파기 권한)이나 디퍼럴(지급 유예) 조항 없이 장기적으로 팀에 묶는 사실상의 ‘프랜차이즈 계약’이다.
빅리그 갓 데뷔한 그리핀과 1억5,000만달러 장기 계약한 MLB 피츠버그
MLB에서 대표적인 스몰마켓 구단으로 꼽히는 피츠버그가 이런 과감한 베팅에 나섰다는 점이 놀랍다. 피츠버그 같은 스몰마켓 구단들은 재정 규모의 한계 때문에 스타 선수들을 장기적으로 붙잡기 어렵다. 결국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기 전에 트레이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피츠버그가 빅리그 경험이 일천한 신인 선수에게 9년 계약을 안긴 것이다.
필자는 2004년 피츠버그 구단에서 프런트 연수를 받은 적이 있다. 그 해 2월 MLB 스프링캠프 시작과 함께 구단에 합류해 마이너리그 더블A 팀 '알투나 커브스'와 피츠버그 구단에서 연수를 진행했는데, 당시 피츠버그 최고 스타는 제이슨 베이(외야수)였다. 그는 그해 피츠버그 역사상 최초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그러나 베이 역시 2008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 직전 보스턴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됐다.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는 베이를 피츠버그가 거액을 들여 붙잡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오랫 동안 피츠버그 팬들은 정든 스타 선수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아픔을 반복해서 겪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그리핀과의 ‘프랜차이즈 계약’은 개인적으로도 더욱 놀랍게 다가온다.

MLB에서는 그리핀 사례처럼 빅리그 데뷔 1년 이하 선수와 체결한 연장 계약이 지금까지 총 27차례 있었다. 피츠버그는 이번이 첫 사례다. 이 가운데 9명은 MLB에 데뷔하기도 전에 구단과 장기 계약을 맺었다.
조기 연장 계약의 시발점은 탬파베이 레전드 에반 롱고리아
이 같은 조기 연장 계약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사례가 바로 탬파베이 레이스와 에반 롱고리아의 계약이다. 탬파베이 역시 피츠버그 못지않은 대표적인 스몰마켓 구단이다. 롱고리아는 2008년 MLB 데뷔 후 불과 6경기 만에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계약은 기본 6년 보장에 옵션을 포함해 최대 9년 규모였다. 당시에는 지나치게 성급한 계약이라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는 MLB 역사상 구단 입장에서 가장 성공적인 계약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롱고리아는 곧바로 리그 정상급 3루수로 성장했고, 탬파베이는 전성기의 프랜차이즈 스타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장기간 보유할 수 있었다. 탬파베이는 2012시즌 종료 후, 2016시즌까지 4년 계약이 남아 있던 롱고리아와 다시 2022시즌까지 이어지는 6년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탬파베이는 2017시즌 종료 후 리빌딩에 돌입하면서, 5년의 잔여 계약이 남아 있던 롱고리아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트레이드했다. 이후 탬파베이는 2025년 5월 롱고리아와 하루짜리 계약을 맺어 은퇴식을 열어줬고, 2026년에는 그의 등번호 3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탬파베이는 전 구단 공통 영구결번인 42번(재키 로빈슨)을 제외하면, 그동안 웨이드 보그스(12번)와 돈 짐머(66번)만 영구 결번 처리한 바 있다. 그러나 보그스는 커리어 말년에 잠시 몸담았던 선수였고, 짐머는 코치였다. 순수하게 탬파베이 선수로서의 공로만으로 영구 결번이 된 사례는 롱고리아가 처음이었다.
롱고리아 이후에도 MLB 데뷔 1년 이하 선수와 체결한 조기 연장 계약은 26차례나 더 나왔다. 특히 탬파베이는 롱고리아 계약을 포함해 다섯 차례나 조기 연장 계약을 성사시켰다. MLB 3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사례다. 롱고리아 계약의 성공 경험이 이후 구단 운영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가장 성공한 '조기 연장 계약'은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
총 27차례의 조기 연장 계약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단연 로널드 아쿠냐 주니어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2019년 4월 2일 아쿠냐와 계약 기간 8년, 총액 1억 달러 규모의 연장 계약에 합의했다. 2027년부터 적용되는 2년의 구단 옵션까지 포함하면 최대 10년 계약이었다.
아쿠냐는 연장 계약이 시작된 2019년부터 2025년까지 미국 야구 통계 사이트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WAR 24.6을 기록했다. 이 기간 중 5차례 올스타에 선정됐고, 2023년에는 내셔널리그 MVP까지 수상하며 기대에 걸맞은 활약을 펼쳤다. MVP급 선수로 성장한 아쿠냐를 감안하면 애틀랜타 입장에서는 대표적인 조기 연장 계약 성공 사례로 평가받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최근 3년 동안에만 10건의 조기 연장 계약이 체결될 정도로 그 빈도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유망주 선수의 장기 계약을 통해 미래 가치를 선점하려는 구단들의 전략이 이제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27차례의 조기 연장 계약 사례를 되짚어 보면 상당수가 스몰마켓 구단들이었다. 스몰마켓 구단 입장에서는 전성기의 선수를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동시에, 향후 FA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조기 연장 계약이 매력적인 선택지로 떠오른 것이다.
비FA 다년계약으로 전력 유지해 2022년 우승한 SSG 랜더스
MLB에서는 이런 계약을 주로 ‘연장 계약(extension)’이라고 부르지만, KBO리그에서는 일반적으로 ‘비FA 다년계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KBO리그에서는 2021시즌 종료 후 문승원, 한유섬, 박종훈과 SSG 랜더스가 체결한 비FA 다년계약이 사실상 출발점이었다. 당시 KBO리그는 2023년부터 샐러리캡 도입을 앞두고 있었고, 계약 시점은 그 직전이었다.
필자는 당시 SSG 단장으로서 이 계약을 주도했다. 세 선수가 FA 자격을 얻어 시장에 나오게 될 경우, 샐러리캡 영향으로 최악의 경우 한명만 잔류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핵심 선수 2명이 동시에 이탈할 경우 ‘지속 가능한 강팀’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있었다.

결국 SSG는 세 선수를 모두 잔류시키는 데 성공했고, 2022년 3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2년 계약이 종료된 김광현과도 다시 비FA 다년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들의 힘을 바탕으로 SSG는 그해 통합 우승을 차지했다.
사실 필자는 비FA 다년계약을 추진하면서 2008년 탬파베이와 에반 롱고리아의 조기 연장 계약 사례를 하나의 모티브로 삼았다. 물론 롱고리아처럼 신인 선수 단계에서 조기 연장 계약을 추진할 엄두까지는 나지 않았다. 대신 FA를 1년 앞둔 핵심 선수들과 시즌 개막 전에 미리 다년계약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접근했다.
이후 비FA 다년계약은 KBO리그에서도 빠르게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총 20차례의 비FA 다년계약이 성사됐다. 그리고 2025시즌 종료 후에는 여러 구단이 핵심 선수들과 비FA 다년계약을 추진했다. 그러나 2026년 2월 23일 한화 이글스가 노시환과 11년 총액 307억 원 규모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하면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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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선규 전 SSG 랜더스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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