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운동회와 교회 종소리

광주일보 2026. 5. 13.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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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어릴 적의 가을운동회는 그야말로 한바탕 동네 잔치였다. 그러니 이 운동회가 시끄럽다거나 거슬린다고 대놓고 푸념할 이웃들이 없었다.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야 운동회와 수학여행만 한 게 어디 있겠나 싶다. 그런데 요즘은 이게 아닌 모양이다.

필자도 얼마 전까지 십수 년 동안 ‘초품아’, 즉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단지에서 살았었다. 학교에서 운동회나 동창회 체육대회가 있으면, 창문 바깥으로 운동장을 내려다보면서 옛 추억을 떠올리곤 했는데, 이게 시끄러운 소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뿐인 일이니 말이다. 게다가 아이 하나를 제대로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지 않나.

그런데 최근에 보도된 서울시내 초등학교의 운동회 소음 관련 민원이 몇 년 사이에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는 교육청 자료를 접하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심지어 주민 신고로 운동회에 경찰이 출동하기도 한다. ‘초품아’라면서 아파트 가격에는 득이 되지만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는 싫다는 것인가. 급기야 어느 학교에서는 운동회 날을 앞두고서 아이들이 인근 주민들께 “죄송합니다. 조금만 놀게요”라는 사과 벽보를 붙여서 미리 양해를 구한다는 뉴스 꼭지에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말에 아파트단지 앞 공원에서 연중 딱 한 번 주민센터와 주민자치회가 주관하는 동네 축제가 벌어지는데, 어느 주민이 나와서는 시끄럽다며 주최 측에 격하게 항의하는 모습을 목도하기도 했다. 참으로 각박한 세태다.

이와 비슷한 일이 독일에서는 ‘교회 종소리 사건’으로 자주 불거진다. 독일 대부분의 성당(교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종(鐘)을 울린다. 게다가 짧은 간격을 두고서 타종시간이 몇 분씩이나 걸린다. 이 종소리가 자신의 안온권(安穩權)을 침해한다며 주민들이 제기하는 행정소송사건이 매년 수십 건씩 접수된다. 이른바 ‘국가교회체제’인 독일에서 대부분의 성당과 교회는 공법 영역에 속하기에, 행정소송으로 다퉈진다. 대다수의 관련 소송을 기각하면서 행정법원 측은 이렇게 밝힌다. “종소리는 교회가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유일한 목소리다. 그러니 다소 불편해도 이를 수인함이 마땅하다.” 또는 “교회 타종은 오랜 관행이고, 사회적으로 적정하고, 일반적으로 수인되며, 타종시간도 문제 될 것이 없다.”

위 표현이 언뜻 쉽게 이해되지 않겠다 싶은데, 저간의 사정은 이렇다. 신자로서 일요일뿐만 아니라 평일의 미사나 예배 참석에도 열심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독일의 동네 성당에는 일요일에도 신자들이 그리 많이 찾지 않는다. 주로 노인분들만이 제단 앞의 한두 줄 정도를 채우기 일쑤다. 신자들이 따로 매달 교회세(종교세)를 내기 때문에 굳이 성당이나 교회의 미사나 예배에 참석할 별도의 의무감을 느끼지 않아서다. 그래서 교회와 관련해서는 과장이 있지만 이런 농담이 회자된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평생 딱 세 번 교회를 찾는데, 즉 태어나서 영세를 받을 적에, 결혼할 적에 그리고 죽어서 자신의 장례미사 때에”라고 말이다. 이렇듯 독일의 성당과 교회는 지극히 외로운 존재다. 그러니 교회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지역사회에 알리는 유일한 목소리가 종소리이니, 잠시 참아달라는 말에 한편 수긍이 간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동네 성당이나 교회에서 종을 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성가신 민원을 고려한 까닭으로 짐작된다. 그 대신에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지붕 꼭대기에 어김없이 붉은 네온사인의 십자가를 높이 걸어둔다. 혹자에게는 일종의 시각 공해일 수도 있겠는데, 캄캄한 밤하늘을 붉게 밝히는 십자가 또한 지역사회에서 교회가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소리 없는 아우성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깊은 산속의 사찰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낭랑한 풍경(風磬)소리, 웅대한 법고(法鼓)와 범종(梵鐘)소리가 울려 퍼진다. 번뇌를 씻어내고, 축생(畜生)들의 해탈을 기원하고, 중생(衆生)들의 고통을 멈추려는 의미인데, 설령 종교를 달리하더라도 그 소리가 그저 시끄럽고 성가신 소음이겠나 싶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주변으로 인한 일상의 소소한 불편쯤은 감수해야 한다. 동네 놀이터와 학교 운동장이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와 웃음으로 가득해야, 그래야 사람 사는 세상 같지 않겠는가.

/이종수 bodenle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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