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경영 데스크] 초고령사회 대한민국, ‘임종 난민’은 왜 늘어나는가

[한국독서교육신문 장선영 기자]
가정의 달 5월, 생명의 요람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풍경
꽃들이 만개하고 산들바람이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5월은 명실상부한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의 환호성으로 시작해 어버이날의 감사와 부부의날의 신뢰로 이어지는 이 계절은, 생명의 탄생과 부모의 헌신, 그리고 인간이 맺는 가장 원초적인 관계인 '가정'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흔히 가정을 생명이 시작되는 가장 따뜻한 공간으로 기억한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축복처럼 울려 퍼지고,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 아래 돌봄이 자라나는 곳. 그러나 그 성스러운 요람의 이면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가정은 삶의 마지막 순간인 '임종' 앞에서 점점 더 무력해지고 있다.
인간은 가정에서 태어나 돌봄 속에서 성장하며, 생의 마지막 순간 역시 대부분 사랑하는 이들의 품 안에서 맞이하기를 소망한다. 결국 생과 죽음은 '돌봄'이라는 하나의 연속된 울타리 안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일련의 과정이다. 하지만 저출산과 초고령화라는 거대한 인구 구조의 파고 속에서 대한민국은 지금 '돌봄의 공백'이라는 낯설고도 위험한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명실상부한 초고령사회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24년 12월 23일 기준 대한민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1024만4550명으로 전체 주민등록 인구의 20%를 넘어섰다. 이는 UN이 규정한 초고령사회 기준인 '65세 이상 인구 비중 20% 이상'에 공식적으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의료 기술의 발전은 평균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렸고, 사람들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오래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얼마나 오래 사는가"보다 더 본질적인 질문,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초고령사회는 단순히 노인의 숫자가 많아졌다는 의미가 아니다. 노동 구조와 복지 시스템, 가족 형태와 의료 체계, 돌봄의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특히 저출산으로 인해 돌봄을 제공할 자녀 세대는 줄어드는 반면, 돌봄이 필요한 노인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거처럼 가족의 희생만으로 임종과 노후 돌봄을 감당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준비가 부족하다. 우리는 그동안 출산율과 육아, 교육과 청년 세대의 미래를 이야기해왔다. 하지만 정작 삶의 마지막 단계인 '죽음'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침묵해왔다. 죽음은 병원으로 밀려났고, 임종은 의료기계 뒤로 숨겨졌으며, 가족들은 준비되지 않은 이별 앞에서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 흔들려왔다.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임종 난민'이라는 슬픈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

'임종 난민' 24만 명, 통계가 보여주는 죽음의 양극화
최근 5년간 대한민국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한 사람은 34만 3433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호스피스 서비스를 이용하며 삶의 마지막을 준비한 사람은 약 10만 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약 24만 명은 충분한 완화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연명의료를 중단했음에도 인간다운 마지막은 보장받지 못한 것이다.
최근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임종 난민' 규모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1년 약 4만 명 수준이던 임종 난민은 2025년 5만7000명을 넘어섰다. 이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그 안에는 통증 속에서 거실 바닥에 누워 신음하다 겨우 마지막 며칠만 재택의료의 도움을 받은 노인의 절규가 담겨 있고, 호스피스 병상을 찾지 못해 응급실을 전전하다 기계음 속에서 쓸쓸히 눈을 감은 수많은 가족의 이야기가 녹아 있다.
대한민국의 입원형 호스피스 병상은 전국적으로 약 1910개 수준이다. 인구 100만 명당 37개에 불과해 유럽완화의료협회 권고 기준인 50개에도 크게 미치지 못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역 격차다. 수도권에는 그나마 일부 시설이 존재하지만 지방은 상황이 처참하다. 충북 음성군처럼 가정형 호스피스 기관 자체가 없는 지역도 적지 않다. 결국 많은 노인들이 평생 살아온 지역과 집을 떠나 '원정 임종'을 떠나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삶의 지역 격차가 이제는 죽음의 격차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환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병원이 아니라 '집'이다. 익숙한 공간에서 가족의 손을 잡고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 속 가정형 호스피스 기관은 전국에 40여 곳 남짓이다. 가족이 모든 돌봄을 감당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많은 이들이 결국 요양병원과 응급실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문제의 근본에는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돌봄을 제공할 자녀 세대는 줄어들고, 돌봄이 필요한 노인은 급증하고 있다. 과거처럼 가족의 희생만으로 임종 돌봄을 감당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끝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의 돌봄 체계는 여전히 가족의 헌신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종이 위에 갇힌 존엄사,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음에도 현실은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84.1%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서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 사망자 가운데 연명의료를 중단한 비율은 16.7%에 그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미한 연명을 원하지 않지만, 정작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 부모를 포기하는 것은 불효라는 정서, 그리고 가족들의 죄책감이 얽혀 있다. 실제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의 절반 이상은 환자 본인이 아닌 가족이나 친권자에 의해 내려진다. 환자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더라도 임종 순간 가족이 강하게 반대하면 의료진은 법적 책임을 우려해 연명의료를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결국 환자가 원했던 '평온한 마무리'는 가족의 불안과 사회적 시선 속에서 '고통의 연장'으로 변질되고 만다.
특히 치매 환자처럼 의사 표현이 어려운 경우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환자의 뜻을 명확히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결국 모든 선택은 가족의 몫이 된다. 이는 대한민국에서 자기결정권이 아직 충분히 뿌리내리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우리는 여전히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병원으로 숨기고, 의료기계 뒤로 감추며, 마지막 순간까지 "살려야 한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나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누구나 지나가야 하는 삶의 마지막 과정이다. 그렇기에 더욱 존엄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는 단순히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넘어, 어떻게 인간답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전 돌봄 계획(ACP·Advance Care Planning)'의 필요성이 커지는 이유다.
국가 책임 돌봄과 '사전 돌봄 계획'이 만드는 존엄한 미래
다행히 최근 정부 역시 돌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버이날 메시지를 통해 "부모의 일방적 희생에 기대는 사회가 아니라 국가와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는 나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지역사회 통합돌봄과 치매 안심 서비스 확대, 노인 일자리와 연금 개혁 등은 단순한 복지 정책이 아니다. 초고령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선언에 가깝다.
하지만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단순한 생존 지원을 넘어 '존엄한 마무리'를 지원하는 구체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미국과 영국은 이미 '사전 돌봄 계획(ACP)' 제도를 적극 운영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연명의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기록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환자가 원하는 임종 장소, 통증 관리 방식, 정서적 요구, 가족과의 마지막 시간, 심지어 장례 방식까지 미리 설계하는 제도다. 다시 말해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인간답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를 의료진과 가족이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역시 이제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호스피스 예산을 확대하고 건강보험 수가를 현실화해 민간 의료기관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 특히 재택의료와 가정형 호스피스를 통합한 지역 기반 돌봄 체계를 구축해 많은 어르신들이 정든 집에서 가족의 손을 잡고 평온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정의 달 5월은 단지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계절로 끝나서는 안 된다.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쏟는 관심만큼, 부모의 마지막 시간을 어떻게 돌볼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출산 초고령화 시대의 핵심 과제는 결국 '돌봄의 품격'이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품격은 가장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그 마지막 시험대는 어쩌면 삶의 끝자락인 임종의 현장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이제 오래 사는 나라를 넘어, 모두가 존엄하게 떠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돌봄의 손길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삶도 죽음도 모두 외로워지기 마련이다. 생과 죽음이 맞닿은 자리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의 마지막을 지켜주는 따뜻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정의 달 5월에 우리가 다시 새겨야 할 진정한 사랑의 의미일 것이다.
삶의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을 지켜주는 사회가
진정한 선진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