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정원' 찾아보니...'적대적 디자인' 아닌가
참전 22개국에 전하는 감사의 마음을 상징
공교롭게도 경의 표하는 방향이 미국대사관
오 후보 "빈 자리를 세계시민의 연대로 채워"
광장을 많은 것들로 채워야 좋은 것인지 의문
텅 비어 있어야 시민들 주인 돼 놀고 쉬는데
조형물이 시민 밀어내는 오브제가 되면 안돼

전날 준공한 서울 광화문광장 '감사의 정원'을 13일 아침 둘러봤다. 출근길 바쁜 이들이 오세훈 시장이 200억 원 넘게 들여 정성껏 조성한 '감사의 빛 23' 조형물들 사이로 잰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세종문화회관 앞쪽에 6.25m 높이 '감사의 빛 23' 조형물들이 말갛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햇볕을 받아 하얗게 반짝였다. 언론에서는 이른바 '받들어 총'이라고 폄하하고 조롱하기도 하는데, 하필 그 경의를 받아야 하는 건너편에 주한미국대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 중앙에 내걸린 펼침막에 성조기와 검독수리 휘장이 눈에 들어왔다. 세종문화회관 앞의 예전에 소나무 숲이 있었던 곳에 받들어 총 모양의 조형물을 세우게 되면 미국대사관을 향해 예를 표하는 것처럼 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워 보였다. 야간에는 레이저 빛 연출로 서울의 밤하늘을 밝힌다고 한다.

서울시는 한국전쟁 때 소중한 인명을 바친 전투지원 16개국(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영국·프랑스·그리스·터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태국·필리핀·남아프리카공화국·에티오피아·콜롬비아), 의료지원 6개국(인도·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이탈리아·서독) 등에 '감사의 빛' 조형물에 덧붙일 돌이나 벽, 상징물들을 기증할 것을 요청했으나 독일 등 일곱 나라만 석재를 기증했고, 다섯 나라는 올해 안에 보내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머지 나라들은 아무런 응답조차 않은 모양이다.
오늘도 세종대왕님은 앉아서 자신의 오른쪽 뒤편에 총들이 일어선 모습을 아시는지 모르는지 도무지 말씀이 없으셨다. 우리 글이 없어 읽고 쓰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신 대왕님의 깊은 뜻과 21세기에 받들어총 조형물을 광장 한켠에 채우는 오세훈 시장의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을까 생각해 봤다.

'감사의 빛' 공간은 무엇을 의미하고 기리고자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은. 조형물이란 사실,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이라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직관적이어야 한다. 설명을 더하는 순간, 그 조형물은 의미와 가치를 잃는다. 해서 근처 세종대왕 좌상이 뒤에 광화문과 경복궁, 북한산과 북악산을 배경으로 넣을 수 있어 서울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더 사랑받는 것 같았다.
'감사의 빛' 조형물 옆으로 프리덤 홀로 내려가는 지하계단이 나온다. 계단을 내려가는 이의 왼쪽 벽에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건녀편 벽에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로 주어지지 않는다)란 영어 문구가 새겨져 있다. 검색해 보니 미국 워싱턴 DC의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 벽면에 똑같은 문구가 있다고 했다. 이른바 자유 우파 세력들 사이에서는 가슴을 울리는 명언이라고 받들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감사의 정원' 준공식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배포한 주체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후보 선거대책위원회'로 명기돼 있다. 오 후보는 "감사의 정원이 대한민국을 지켜낸 헌신을 오래 기억하는 장소, 자유와 평화의 의미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공간, 그리고 세계 시민이 함께 공감하는 연대의 상징으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길 바란다"면서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던 나라가 이제는 그 번영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의 어려운 나라를 돕고 국제사회와 책임을 나누는 국가가 됐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참전국의 희생에 보답하는 가장 품격 있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오 후보는 나아가 "광화문광장에는 나라를 지켜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호국 정신과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드신 세종대왕의 애민 정신이 살아있지만, 정작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번영, 그리고 그것을 위해 희생한 세계 시민들의 연대를 기억하는 공간은 없었다"라며 "감사의 정원은 바로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쟁하는 후보들이 애초에 세금 낭비였고 흉물스러운 조형물이라고 깎아 내렸고,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졸속으로 준공식을 서둘러 거행했다고 비난할 것이 자명한데 서울시가 아니라 선거대책위원회가 홍보에 나선 것을 솔직하다고 평가해야 할까? 용감하다고 평가해야 할까?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 더 근본적인 데 있다. 오 후보처럼 광장에 '빈자리'가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면 참으로 곤란하다. 광장은 근본적으로 텅 빈 곳이어야 한다. 시민들이 누구나 쉽게 접근해 제 마음대로 쉬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넓은 광화문 광장에 그만한 터를 빌려줄 수 없는가 타박해선 안된다. 광장은 텅 빈 곳이어야 한다.



이런 개념을 놓고 보면 '감사의 빛 23'은 대한민국의 민주시민이 참전 22개국과 참전용사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는 것을 오히려 저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래서 불편하다. 조형물의 석재 모서리들은 너무도 날카로워 보인다. 안전요원들이 배치된 것도 그만큼 사고가 일어날 여지를 의식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예전에는 광장을 찾은 부모들이 아이들 손을 놓으며 '여기는 차도 안 다니고 사고 위험도 없으니 마음껏 뛰어놀렴' 했는데 이제 이곳 주위에서는 애들에게 안전에 대해 신신당부를 하고 조형물의 모서리 쪽에는 가지 말도록 손을 붙들어야 하게 됐다. 그 부모들의 가슴에 감사의 마음이 담길 수 있을까? 그래서 불안하다.
물론 조형물이 꼭 친근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거부감이 들게 해선 안된다. 워싱턴 DC를 상징하는 워싱턴 기념탑은 일종의 오벨리스크로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23개의 조형물이 들어선 '감사의 빛 23'은 직관력에서 달린다. 응집돼야 할 감사의 마음이 흩어진다. 어울리고 연대해야 한다는 오 후보의 바람과 달리 나뉘고 흩어지게 만든다. 감사를 표하겠다고 만든 공간이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모으지 못하게 하고 정작 주인이어야 할 시민을 밀어내는 오브제로 여겨진다면 200억 원 넘게 들어간 조성 비용이 허투루 쓰였다는 비판을 듣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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