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에 반하다'…마닐라에서 온 '우베' 스토리

김지은 기자 2026. 5. 1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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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은 물론 뉴욕, 런던, 도쿄 카페 메뉴판이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다. 그 주인공은 필리핀의 보라색 참마 ‘우베’다. 마닐라 현지 교민에게 우베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이맑음

[우먼센스] 우베 라떼, 우베 크림 케이크, 우베 마카롱…. SNS를 가득 채운 몽환적인 보라색의 정체는 바로 우베(Ube)다. 마닐라의 삶이 익숙해졌던 어느 날 아침, 갓 쪄낸 우베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를 기억한다. 보라색보다는 자줏빛에 가까운 단면,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향. 맛은 바닐라 같기도 했고 고소한 견과류 같기도 했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맛이 입안에 번졌다.

우베는 많은 이들이 고구마로 오해하지만 참마의 일종이다. 같은 보라색이지만 고구마보다 식감이 부드럽고, 맛은 더 심심하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우베 파우더나 시럽은 풍미를 흉내 낸 것인데, 필리핀에서 우베를 직접 맛보기 전까지는 그 매력을 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필리핀인의 오래된 단짝 친구

필리핀에서 우베는 한 번도 트렌드가 된 적이 없다. 유행은 오고 갔지만 우베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필리핀 친구들에게 우베를 물으면 크리스마스 전날 밤을 떠올린다. 할머니가 냄비 앞에 서서 우베 할라야(Ube Halaya, 잼이나 푸딩 같은 필리핀 전통 디저트)를 졸이는 동안 온 집 안에 달콤한 냄새가 퍼진다고.

필리핀의 어느 집을 가도 냉장고에서 볼 수 있는 소울푸드인 우베 할라야는 우베를 일일이 갈아 냄비에 넣고 끓이는 동안 계속 저어야 하는 정성이 핵심인 디저트다. 오랜 시간 천천히 저어야 완성되는 우베 할라야잼은 서두르면 안 되는, 기다림이 맛이 되는 음식이다. 한국에서는 명절에 손님을 맞이하기 전 큰 솥에 가득 끓이는 식혜나 수정과와 유사하다. 우베 할라야 또한 필리핀 사람들의 특별한 날을 완성하는 환대의 언어인 셈이다.

사진 이맑음, 우베 판데살

우베는 필리핀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동네 빵집 유리 너머로 보랏빛 판 데 살(pan de sal, 필리핀의 아침 식사용 빵), 어린 아이의 손에 들려 있는 우베 아이스크림까지. 필리핀에서는 생각보다 더 자주 우베를 목격할 수 있다. 20년 동안 빵집을 운영한 주인에게 우베가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웃으며 "우베는 우리 음식인데, 갑자기 유명해졌다고 하니 신기하네요. 근데 뭐… 당연한 거 아닌가요? 우베는 맛있으니까요"라고 답했다. 그녀의 빵집 진열대 맨 앞자리엔 언제나 우베 판데살이 자리 잡고 있다.

우베는 필리핀 가정집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찹쌀가루와 코코넛 밀크, 우베를 섞어 만든 우베 카라메(Ube Kalamay)는 한국의 인절미와 닮은 쫀득한 간식이다. 또 계란 노른자와 연유를 섞은 부드러운 커스터드 푸딩 위에 우베를 얹어 구운 우베 레체 플란(Ube Leche Flan)은 필리핀 파티 테이블의 오랜 단골 디저트다.

사진 이맑음

가장 대표적인 것은 푸토 붐봉(Puto Bumbong)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필리핀 곳곳에 찹쌀가루와 우베, 버터와 코코넛 설탕을 대나무 통에 넣고 찌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한국의 떡과 유사한 이 음식은 필리핀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의 냄새이자 맛이다. 필리핀의 우베 요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빠르게 만들 수 없다는 것. 천천히 졸이고, 천천히 찌고, 천천히 굳혀야 한다. 필리핀 사람들은 언제나 우베를 대할 때 서두르지 않는다.

'보라색 떡' 푸토 붐봉 만드는법

사진 이맑음

1 반죽 만들기
큰 볼에 쌀가루와 찹쌀가루, 물, 우베를 넣고 반죽 형태가 될 때까지 섞는다. 이후 강판을 사용해 반죽을 고운 가루 형태로 간다. 만약 반죽이 질어서 강판에 갈기 힘들다면, 쌀가루를 몇 큰술 더 추가한다.

사진 이맑음

2 찌기
알루미늄 호일과 바나나 잎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자른다. 호일 위에 바나나 잎을 올리고 버터를 살짝 바른다. 바나나잎은 생략 가능하다. 반죽을 2~3큰술 올리고 얇게 편다. 호일 양 끝을 집고 단단히 밀봉하되, 윗부분은 열어둔다. 반죽이 부드럽고 끈적해지며 진한 보라색으로 변할 때까지(약 10분) 찐다.

사진 이맑음

3 토핑하기
푸토 분봉을 접시로 옮기고 녹인 버터를 바른다. 그 위에 머스코바도 설탕(비정제 사탕수수당), 갓 갈아낸 코코넛, 치즈 가루 등 취향에 따라 토핑한다.

영양만점 슈퍼푸드ㆍ비주얼 깡패

우베는 색만 예쁜게 아니다. 건강식품으로서의 가치도 있다. 보랏빛 색소에는 안토시아닌이 풍부하게 들어있는데, 이는 세포 노화를 늦추고 염증을 줄이는 항산화 작용을 한다. 블루베리나 자색 고구마에도 같은 성분이 들어있다. 또 비타민 C와 A, 칼륨이 함유돼 면역력을 강화하고 체내 나트륨 배출을 돕는다.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건강에 좋고 혈당 수치를 급격히 올리지 않고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복합 탄수화물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우베 디저트는 맛을 내기 위해 설탕, 연유, 버터 등이 들어가니 참고할 것. 건강을 생각한다면 우베 파우더를 스무디나 요거트에 넣어 먹는 게 좋다. 바닐라와 코코넛이 섞인 부드러운 단맛은 특별한 첨가물이 없어도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또 우베의 강렬한 보라색은 SNS에서 시선을 끌기에 최적이니, 우베의 인기가 오래 지속될 거란 기대가 생긴다.

사진 이맑음

필리핀 통상산업부(DTI)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필리핀의 우베 수출액은 약 306만 달러(한화로 약 42억원)을 기록했다. 2024년 약 140만 달러였던 것에 비교하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중동 지역을 비롯해, 일본, 중국에서 우베를 활용한 다채로운 신제품이 개발되고 있다. 스타벅스는 올봄 미국 전 매장에 우베 코코넛 마키아토를 신메뉴로 내놨고, 영국의 커피 프랜차이즈 코스타 커피(costa coffee)도 우베 음료 '스위트 우베' 시리즈를 론칭했다. 스위트 우베 핫 초콜릿, 스위트 우베 프라페, 스위트 우베 아이스 휘핑라떼&아이스 마차 등으로 구성돼 종류도 다양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취둥위(Qu Dongyu) 사무총장은 "뉴욕의 우베 아이스크림, 런던의 우베 케이크, 도쿄의 우베 라떼. 놀라운 성공 스토리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베가 지역 특산물을 넘어 글로벌 트렌드가 된 점을 극찬한 것이다. 작은 섬나라 땅속에서 자라던 보라색 뿌리가, 어느새 전 세계 디저트의 중심에 섰다. 자연에서 나온 선명한 보라색, 바닐라처럼 친숙한 풍미, 영양 만점의 성분까지, 우베는 요즘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갖추고 있다.

서울에 가는 짐을 꾸리며 가방 한 켠에 우베 할라야 한 병을 넣는다. SM 마트나 공항 면세점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가격도 부담 없으니 선물로도 좋다. 수제 할라야를 원한다면 면세점보다는 현지 마트에서 미리 사둘 것. 기내 반입이 안되니 위탁 수화물로 챙겨야 한다. 서울로 돌아와 구운 식빵에 우베 할라야를 천천히 펴 바른다. 그 순간 마닐라의 습한 공기와 달콤한 냄새가 떠오른다.

현지 교민 추천, 필리핀 우베 드링크& 디저트

사진 이맑음

1 우베 라떼
마닐라에서는 바리스타가 만든 우베 라떼를 즐길 수 있다. 에스프레소와 우유 사이로 보라색이 번지는 그 순간 곳곳의 테이블에서 카메라 셔터음이 들린다. 우유 그라데이션이 예뻐서 사진부터 찍게 된다. 마카티BGC 같은 트렌디한 카페에서는 기본 메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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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베 할로할로
더운 오후에 생각나는 디저트다. 빙수 위에 우베 아이스크림과 우베 할라야를 듬뿍 얹어 만든다. 처음엔 눈으로 먹고, 다음엔 숟가락으로 천천히 섞으며 먹는다. 여름철 필리핀을 방문했다면 꼭 먹어야 하는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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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베 팬케이크
보라색 반죽으로 구운 팬케이크도 별비다. 버터와 우베 잼을 바르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브런치 메뉴가 된다.

사진 이맑음

4 우베 크림 도넛
도넛에 우베크림을 넣었다. 우베 크림이 듬뿍 들어간 도넛은 나른한 오후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달콤한 디저트다.

CREDIT INFO

글 이맑음(<우먼센스> 앰버서더 K-QUEEN 11기)

사진 이맑음

김지은 기자 a05190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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