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산유국인데…이란戰에 美휘발유값 왜 오를까 [Deep Spot]

정목희 2026. 5. 1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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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휘발유값 4弗 돌파…4년만에 최고
 미국 유가도 국제가격 시스템이 결정
 원유 수출보다 수입 많은 구조도 영향
美유가, 낮은 유류세에 타국대비 저렴
비중 15%…유럽 60%·韓 48% 대조
다급한 트럼프 유류세 한시중단 검토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시민이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평균 가격이 갤런당 5.01달러까지 치솟았던 2022년 이후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AFP]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미국 휘발유 가격이 4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원유 순수출국인 미국조차 ‘고유가 쇼크’를 피하지 못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결국 연방 휘발유세를 한시 중단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미국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11일(현지시간) 기준 갤런(약 3.78ℓ)당 평균 4.52달러로 집계됐다. 미·이란 전쟁 발발 직전인 지난 2월 말 3달러를 밑돌았던 것과 비교하면 50% 이상 급등한 수준이다. 이는 2022년 6월 이후 약 4년 만의 최고치다.

휘발유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휘발유세를 일시 중단하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연방 휘발유세 중단에 대해 “훌륭한 생각이라고 본다”면서 “우리는 일정 기간 연방 휘발유세를 없앴다가 유가가 하락하면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방 유류세는 현재 휘발유는 18센트, 디젤은 24센트가 붙는다. 휘발유세가 중단되면 평균 4.34달러로 일부 낮아질 수 있지만 이란전쟁 발발 이전에 휘발유 가격은 평균 2.98달러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 행정부는 미국의 에너지 자립도를 강조하며 중동 리스크의 경제적 영향을 축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미국은 소비량보다 더 많은 석유를 생산한다”며 미국을 ‘원유 순수출국’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미국 역시 국제 원유 가격 체계 안에 있는 만큼 중동발 공급 불안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하면 국제유가 자체가 급등하고, 미국 소비자 역시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는 구조라는 설명이다.

美, 산유국이어도 유가상승 못 피하는 이유

일부 지표상 미국은 ‘원유 및 석유제품’ 기준 순수출국이 맞지만, 휘발유의 원료가 되는 원유만 놓고 보면 미국은 여전히 순수입국이다. 또한 순수출국 지위 자체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미국 소비자의 휘발유 가격을 낮추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분석이 많다.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IEEFA)의 클라크 윌리엄스-데리는 “순수출국 여부는 미국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지불하는 가격에 사실상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휘발유 가격은 국제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해외 가격이 오르면 미국 소비자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2020년 이후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원유 및 석유제품’을 합친 기준에서 순수출국이 됐으며, 현재까지 이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원유만 놓고 보면 상황은 다르다. 2025년 기준 미국은 하루 약 620만배럴의 원유를 수입하고 약 400만배럴을 수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유전 [AFP]

이 같은 구조는 미국 정유 설비 구조 때문이다. 원유는 밀도와 황 함량에 따라 ‘경질·저유황’과 ‘중질·고유황’ 등으로 나뉘는데, 미국에서 생산되는 원유는 대부분 경질·저유황인 반면 상당수 미국 정유시설은 중동산 중질·고유황 원유를 처리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자국산 원유만으로는 정유 수요를 모두 충당하기 어렵고, 중동산 원유를 계속 수입해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를 ‘정유 불일치(refinery mismatch)’ 문제로 부른다. 정유시설 구조를 전면 개편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해 단기간 해결도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원유를 자급하더라도 국제 원유 가격 체계에 깊이 연결돼 있는 만큼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같은 공급 충격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글로벌 원유 시장 가격 자체가 연동돼 있기 때문이다.

윌리엄스-데리는 “미국 에너지 정책은 생산과 가격 결정을 시장에 맡겨왔다”며 “결국 석유·가스 기업이 소비자 가격을 결정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가격 안정을 위해 연료를 별도로 확보하는 정책도 없다”며 “‘순수출국’이라는 논리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의미 없는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다른 나라보다 기름값 낮은 이유는 ‘유류세’

그럼에도 미국 소비자들은 유럽과 아시아 주요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에 휘발유를 구매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는 ‘낮은 유류세’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란 전쟁 여파로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달러를 넘어 4년 만에 최고 수준까지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독일·한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으로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보다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공급 충격 영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원유는 국제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산유국이라고 해서 소비자 가격이 자동으로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 가격 차이를 좌우하는 핵심 요인은 세금 구조라는 설명이다.

미국인들은 자동차 의존도가 높아 휘발유 가격 변화에 민감하다. 미 연방정부에 따르면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연간 약 1만3000마일(약 2만900㎞)을 운전한다.

S&P 글로벌 에너지에 따르면 미국 연방 및 주정부의 유류세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 유럽 대부분 국가는 휘발유 가격의 50~60%가 세금이다. S&P 에너지의 글로벌 연료 유통 담당 로브 스미스에 따르면 독일의 3월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8.75달러였으며, 절반 이상이 부가가치세와 유류세였다.

멕시코 역시 3월 평균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5.07달러였고, 이 중 약 2달러가 세금이었다.

세금의 사용처도 차이를 보인다. 미국은 유류세를 주로 도로 및 고속도로 유지에 사용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대중교통 재원이나 정부 일반 재정 등에도 폭넓게 활용한다.

한국 역시 세금 비중이 높은 편이다. 지난달 기준 휘발유 소비자 가격의 약 48.5%가 세금으로, 교통에너지환경세와 교육세, 주행세, 부가가치세, 수입부과금 등이 포함된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상승하자 한국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을 기존 7%에서 15%로 확대했지만, 여전히 미국보다 세금 부담이 큰 구조다.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등을 중심으로 탄소 배출과 환경 규제를 반영한 추가 비용이 도입되고 있지만, 이러한 정책은 아직 제한적이며 유럽에 비해 범위도 좁은 편이다.

결국 미국의 상대적으로 낮은 휘발유 가격은 높은 원유 생산 능력과 함께 낮은 유류세, 비교적 완화된 규제 구조가 결합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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