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로 죽고 맛으로 살아나… 막걸리에 한 점 씹으면 진한 정[자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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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는 몸속의 요소가 발효되면서 암모니아로 분해되는 과정에서 세균 증식이 억제되어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흑산도 홍어는 한 접시에 10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음식으로, 선뜻 접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가난한 달빛을 달래주던 홍어, 먼 옛날 영산포 오일장이 서면 냄새로 죽고 맛으로 살아나 왁자한 좌판의 정을 이어 준 것도 홍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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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는 몸속의 요소가 발효되면서 암모니아로 분해되는 과정에서 세균 증식이 억제되어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 이때 특유의 강한 냄새가 발생하고 독특한 맛이 형성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호불호가 뚜렷하게 갈리는 홍어는 전라도 지방에서 귀하게 대접받는 생선이다.
특히 흑산도 근해에서 잡힌 홍어는 서해산보다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는 흑산도 해역이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빨라 육질이 단단하고, 산소량이 풍부해 지방 분포가 적절하여 맛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반면 서해 홍어는 수심이 얕고 조류가 느려 근육이 부드럽고, ‘뻘’이 많고 풍부한 먹이 때문에 운동량이 적어 식감과 맛에서 차이가 난다. 이러한 이유로 뛰어난 맛을 자랑하는 흑산도 홍어는 한 접시에 10만 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음식으로, 선뜻 접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내 고향 영산포는 조선 후기부터 ‘홍어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굴비가 영광의 자랑이라면 홍어는 영산포의 자존심이다. 홍어는 싱싱한 상태보다 적당히 삭혔을 때 비로소 맛의 진가를 발휘하는데, 그 알싸한 매력에 한 번 빠지면 누구나 예외 없이 홍어 마니아가 되고 만다. 홍어는 처음부터 삭혀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냉장 시설도, 빠른 배편도 없던 시절,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목포를 거쳐 굽이굽이 영산강 물길을 따라 황포돛대에 실려 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발효되어 코를 찔렀다. 그렇게 ‘시간과 물길’이 빚어낸 홍어는 다시 송정리, 광주, 곡성 등 내륙으로 팔려나가며 남도의 맛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초겨울 김장철에 추자도 육젓 배와 흑산도 홍어 배가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면 영산포 선창은 민초들로 붐볐다. 그때 읍내 주막은 코를 찌르는 홍어 냄새와 민초들의 흙냄새가 한데 어우러져 남도의 소리 육자배기와 진도아리랑이 젓가락 휘어지도록 흘러나왔다.
“자네, 요즘 뭐 항가? 안 보이데.”
“쩌기 꽁바탕 대나무 싹 비어불고, 거기다 붓감자 심을라고 한 보름 바뻣어라우.”
“그랬능가. 그라믄 나한테 연락허재, 나는 자네랑 홍애 한 점 할라고 홍엇배 들어 올 때마다 뚤래뚤래 혔는디.”
“아따 행님, 고맙소. 근디 오늘 들어 온 흑산홍애는 더 맛있소. 뼈는 좀 뻣신디 그래도 행님이랑 한 점 허니께 더 맛있소.”
“그라제, 그라제, 음석은 정이 아닌가. 정이 있어야 더 맛있재. 그라고 오늘 홍애는 암치네. 많이 묵어불소. 오늘 막걸리 한 통, 저 작것을 자네랑 싹 비어불새.”
남도 사내들은 이름보다 ‘형님’, ‘아우’로 통한다. 처음 만나도 금세 형님이 되고 아우가 된다. 그만큼 정겹다. 거기에 홍어와 막걸리가 삼경으로 이어지면 서마지기 ‘논빼미’가 서럽게 울고 영산강 꼬막 잡아 장날 내다 판 얘기까지 이어지면 십오야 달빛은 먼저 잠든다. 가난한 달빛을 달래주던 홍어, 먼 옛날 영산포 오일장이 서면 냄새로 죽고 맛으로 살아나 왁자한 좌판의 정을 이어 준 것도 홍어였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그 흑산도 홍어가 없다. 칠레·아르헨티나산(産)이 어설픈 가면 속에 누워 있다. 코끝이 먼저 안다. 옛날 영산포 선창이 그립다.
김재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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