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대한 눈높이를 계속 높여 잡고 있습니다. 동시다발적으로 목표주가를 공격적으로 올리고 있어 정신이 없을 지경인데요. 5월 이후 국내 증권사들이 내놓은 삼전닉스의 리포트를 보면 목표주가를 삼성전자 27만~50만원, SK하이닉스 190만~300만원 수준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국내 증권사 중 삼전닉스의 목표가를 가장 높여잡은 곳은 SK증권입니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지난 7일 발간한 리포트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각각 50만원, 300만원으로 제시했는데요. 한 연구원은 지난해 국내 애널리스트 중 가장 먼저 100만닉스를 예상한 애널리스트이기도 합니다.
한 연구원은 어떤 근거로 삼전닉스의 목표 주가를 대폭 상향 조정했을까요. 이슈체크팀이 지난 12일 한 연구원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는데요. 이번 보고서의 핵심 내용과 그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최대한 쉽게 전달해드리겠습니다.
■ "메모리 위상이 바뀌었으면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증권사들은 기업의 목표주가를 산정할 때 다양한 평가 방식을 적용합니다. 업종과 개별기업의 특징에 적합한 방식으로 목표주가를 산출하죠. 한동희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SK하이닉스 목표주가를 100만원으로 높일 당시 평가 방식을 PBR(주가순자산비율)에서 PER(주가수익비율)로 변경했습니다.
PBR은 순자산을 기준으로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예상 순자산이 100억원에 5배수를 적용하면 회사의 기업가치는 500억원이 됩니다. 주식수가 100만주라면 목표주가는 5만원(500억원÷100만주)입니다.
PBR 방식은 금융업, 보험업 등처럼 순자산의 가치가 중요하거나 조선업, 건설업 등처럼 호·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 산업에 주로 적용됩니다. 반도체 산업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고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업종이어서 대다수 증권사들은 SK하이닉스의 목표주가를 PBR 방식으로 산출하고 있습니다.
한 연구원이 삼전닉스를 평가할 때 적용한 PER 방식은 회사의 예상 당기순이익(지배주주 순이익)에 배수를 적용해 기업가치를 산출하는 방식입니다. 예상 순이익이 1조원인 기업에 PER 10배를 적용하면 기업가치를 10조원으로 평가하는 것이죠.
PER 방식은 ①순이익을 꾸준히 내고 ②그 이익의 변동폭이 크지 않은 업종에 적절한 평가 방식입니다. 순손실이 나면 어닝(Earning)이 마이너스라는 이야기이므로 PER 목표주가 산출 자체가 불가능해집니다. 이익의 변동폭이 커서도 안됩니다. 예상 순이익이 크게 출렁거린다면 이에 따라 목표주가 또한 큰 폭으로 조정되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업종은 호·불황이 반복되는 사이클 산업으로 분류됩니다. 업황에 따라 영업이익의 변동폭이 크게 오르내리고요. 불황기에는 수조~수십조원의 적자도 감내해야 합니다. 증권사에서 삼전닉스를 평가할 때 PER 방식을 적용하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한 연구원이 삼전닉스의 평가 방식을 PBR에서 PER로 평가했다는 건 '반도체 산업을 더 이상 사이클 산업으로 봐선 안된다'는 뜻입니다. 이번에 쓴 리포트의 제목이 'PER의 시대'일 정도인데요. 이 보고서에서 '메모리의 위상이 바뀌었다면 평가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 300만 닉스, 50만 전자 예상하는 세가지 이유
그렇다면 평가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그 근거는 무엇일까요. 크게 세가지 정도로 핵심을 추려볼 텐데요. 우선 비교 대상 기업의 시야 폭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AI로 메모리의 위상이 바뀌었다면 비교도 AI 기업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동안 삼전닉스의 비교 대상은 마이크론, 인텔과 같은 전통 반도체 기업들로 국한돼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AI라는 새로운 산업 축이 생겨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삼전닉스가 AI 밸류체인의 한 축이 된 만큼 AI 사업을 하고 있는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등 AI과 비교해야 된다는 게 한 연구원의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AI 글로벌 기업과 비교했을 때 삼전닉스는 시가총액은 어느 수준일까요. 아래 표는 글로벌 AI기업들의 시가총액과 올해 예상 영업이익을 비교한 자료입니다. 점선 처리된 네모박스는 삼전닉스의 목표 시가총액입니다.
/그래픽=SK증권 참조
글로벌 AI 기업들과 비교해도 삼전닉스의 영업이익과 이익률은 결코 뒤처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앞서있는 수준이죠. 이에 반해 시가 총액은 낮습니다. 엔비디아, 구글, 아마존 등이 AI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영위해 단순 비교에 한계가 있을 순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해도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삼전닉스가 더 높은 몸값을 받는 게 무리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두번째는 이제 더이상 메모리 반도체를 사이클 산업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한 연구원은 "메모리 산업 전반의 사이클을 '소순환 주기'에서 '대순환 주기'로 바뀌고 있다"고 말하는데요. 여기서 소순환 주기와 대순환 주기는 무슨 의미일까요.
과거 메모리 업황은 스마트폰, PC 등의 수요에 따라 오르내렸습니다. 사람들이 스마트폰, PC를 많이 구매해야 메모리가 잘 팔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①경제가 좋아야 하고 ②제품 교체 주기가 맞아 떨어져야 호황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교체주기가 도래해도 경제가 좋지 않으면 지갑을 열지 않을 것이고요. 경제가 좋아도 교체 주기가 아니면 새 제품을 살 필요가 없을 겁니다.
이처럼 경기 상황과 교체 주기에 따라 수요가 민감하게 움직이는 시장은 '소순환 주기'입니다. 한 연구원은 "쉽게 말해 업황 사이클이 짧으면 소순환 주기"라며 "거시 경제가 어떤 상황인지도 중요하고 교체주기를 기반으로 업황이 움직이는 사이클이기 때문에 지속성이 낮다"고 설명합니다.
또 이러한 소순환 주기 시장은 불확실성이 큽니다. 경제 상황과 교체 주기라는 두 톱니바퀴가 잘 맞아 떨어져야 온전히 호황을 누릴 수 있는데 두 변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호황의 주기를 짧게 만듭니다.
한 연구원은 "소순환 주기 하에서는 언제, 어떻게 시장이 푹 가라앉을지 모르기 때문에 미래의 상황을 신뢰하기 어렵다"며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주식에 대한 평가의 척도를 이익 기반의 PER 방식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AI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대순환 주기 시장으로 바꿔놓았다는 게 한 연구원의 진단입니다. 우선 AI는 신사업이고 투자의 영역이어서 교체 주기를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기 상황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AI 인프라 확장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는 메모리 수요가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한 연구원은 "공급 부족에 초점을 맞추지만 현재 반도체 시장은 수요의 성격 자체가 완전히 바뀐 게 중요하다"며 "수요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면 반도체 산업을 옛날과 완전히 다른 산업으로 봐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는 안정성 측면입니다. 과거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고객사와 단기 위주로 공급 계약을 체결해왔습니다. 짧게는 1개월, 길게는 1년 짜리 계약이고요. 구속력도 그리 강한 계약이 아니었습니다. 소순환 주기 시장에서는 긴 기간 동안 가격을 묶어두는 것보다 시장 상황에 맞춰 주기적으로 협상하는 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AI로 공급 부족 시장이 된 상황에서 구매자의 우선 순위는 '안정적으로 메모리 반도체를 공급받느냐'로 바뀌었습니다. 고객사들이 3~5년 단위의 장기 공급 계약을 원하는 겁니다. 조만간 시장은 장기 공급 계약과 스팟 계약(단기 거래)으로 나뉘어진 이중 시장(Dual Market)이 될 것이라는 게 한 연구원의 예상입니다.
이중 시장의 형성은 공급자 우위 중심의 시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기 공급 계약이더라도 고객사마다 조건과 계약 구조는 모두 제각각일텐데요. 이 과정에서 삼전닉스는 고객사별 차등을 둘 수 있습니다.
현재 같은 공급 부족 상황에서 삼전닉스가 가장 먼저 장기 계약을 체결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정답은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곳'입니다. 삼전닉스는 장기 계약을 맺은 고객사에게 우선 공급을 약속할 겁니다.
이러한 장기계약은 스팟 시장의 공급 부족 현상을 발생시킵니다. 이는 스팟 시장의 메모리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요. 메모리 가격이 인상됐으니 그 다음 장기 계약을 맺은 곳은 첫번째 고객사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장기계약을 체결해야 할 겁니다. 결국 시간이 가면 듀얼마켓 현상은 뚜렷해집니다.
한 연구원은 "물론 고객사가 물량을 필요로 해야 가능한 현상이지만 듀얼마켓이 형성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며 "이 자체가 메모리 가격을 더 비싸게 만들 것이고 삼전닉스의 우위 시장을 형성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픽=SK증권 참조
장기 공급 계약 비중이 높아지면 메모리 산업의 사이클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정 물량과 가격이 장기 계약으로 묶이면 과거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라 업황이 급등락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실적의 변동성이 줄어든 시장으로 변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