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멀리, 더 높이… 발자국을 남긴 여성들[에프워드]

페미니즘(Feminism)이 새로운 에프워드(F-word: 성적인 욕설을 우회적으로 의미)가 된 시대, 여성(F)의 관점으로 금기에 반기를 드는 칼럼 [에프워드]입니다.
“인생은 ‘8부 능선’부터 재미있다.”
- (다베이 준코. 전 세계 여성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7대륙 최고봉 등정)
“전투처럼 치러진 첫 원정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보란 듯이 승리하였다. 내가 비록 산 정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지만 그것은 산 정상에 올랐다기보다는 나 자신의 가슴 속에 존재하는 산에 올랐고, 하얀 산은 그 전투의 장을 마련해 주었을 뿐이다.”
- (지현옥. 한국 여성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
언젠가부터 여행은 너무 흔하다. TV, 유튜브, 블로그, 소셜미디어에 어딘가를 다녀왔다는 인증이 넘쳐난다. 옛날 같았으면 수개월이 걸렸을 이동 시간이 단 몇 시간 내로 압축됐고, 낯선 여행지에서의 안전성도 웬만큼 표준화됐다. 평범한 여행은 ‘비행기·버스·기차·배를 타고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간다 → 도착지에서 필요한 절차를 밟고 숙소에 짐을 놓는다 → 명소와 맛집을 방문한다 → 쇼핑 후 숙소로 돌아온다’의 루틴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겁이 많은 사람에게도, 현지어 실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도 여행의 문턱은 낮아진 것은 표준화 덕택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 루틴 바깥엔 무엇이 있을까? 여행자센터에서 나눠주는 지도와 휴대폰 속 구글맵 바깥의 세상은 어떨까? 멀리 갈 것 없이 저 언덕 너머에는, 저 산 정상에는 무엇이 나를 기다릴까?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호기심을 가졌을 것이다. 미지를 향한 그 호기심에 목숨까지도 거는 것, 어쩌면 그것이 다른 동물과 인간의 가장 중요한 차이일지도 모른다.
봄바람이 불면서 ‘탐험’, ‘모험’, ‘여정’ 같은 단어가 다시 마음을 울린다. 고통과 고독, 신체적 위험과 어쩌면 죽음까지 감당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모험을 동경하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 이들을 존경한다. 이번 [에프워드]는 프런티어, 즉 경계와 한계를 넓혀가기 위해 걸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길을 찾아 극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더 나아가 동료 여성들의 가능성을 넓혔던 이들의 이야기다.
야생은 성평등하지 않다
몇 주 전쯤 ‘여자 혼자 등산 가지 말라’는 이야기가 소셜미디어 등에서 화제가 됐다. 여성들은 ‘산에서 모르는 남성이 나 혼자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쫓아왔다’, ‘다른 아주머니가 일행인 척하고 구해줬다’는 등의 경험담을 공유했다. 생각해 보면 역사적으로 산이란 공간은 범법자나 도망자가 숨어들던 공간이기도 했다. 비단 산뿐일까? 사막과 정글, 초원 등 인적이 드물고 감시와 추적이 쉽지 않은 곳은 다 마찬가지다. 그러한 곳에서 남성과 여성 중 어느 쪽이 더 취약했을지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야생은 결코 성평등하지 않다.

그렇기에 여성으로서 더 높이, 더 멀리 나아간 이들은 특히 험난한 길을 거쳐야만 했다. 자연 그 자체가 가하는 혹독한 제약을 극복하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생물학적 성별이 공격자의 표식이 되지 않도록 방어하기까지 해야 했다. 2014년 내셔널 지오그래픽 선정 ‘올해의 모험가’ 로 선정된 스위스 출신 사라 마르키(54)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시베리아에서 고비사막, 중국, 라오스, 태국을 거쳐 호주까지 2만㎞를 혼자 걸었다. 호주 대륙(약 1만4500㎞)과 안데스산맥(약 7900㎞)을 이미 도보로 완주한 후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걷는 동안 자신이 겪었던 위협을 생생히 전했다.
“수년간 혼자 걷는 여자라는 사실은 늘 문제였다. 나는 여자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애썼다. 옷과 텐트 색깔을 주변 지형과 맞춰 아무도 내가 거기에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불을 피우지 않으려 노력했고 발자국도 남기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밤은 내 친구다. 항상 밤에 걸었다. 현지인들은 늑대나 귀신 탓에 밤에는 잘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숨는 것이 해결책이었다.”
- 사라 마르키, <사이드트랙트>와의 인터뷰 중에서
인간의 접근을 허락지 않는 히말라야쯤으로 가면 성차가 좁혀지리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곳엔 탐험대 동료들과 셰르파를 제외하면 다른 인간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극한 환경에 직접 발 디딜 기회 역시 도전자의 성별을 따졌다. 여성 산악인이 흔치 않던 시절, 여성에겐 기회를 잡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등정에 성공한 지현옥(당시 34세)은 꽤 풍부한 등반일기를 남겼다. 그가 남긴 기록을 서원대 산악부 동료들이 엮은 <안나푸르나의 꿈>(아웃도어글로벌컴퍼니)에는 지현옥이 히말라야 원정을 둘러싸고 성별 고정관념을 절감했던 대목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지현옥은 1989년 안나푸르나·1990년 칸첸중가 원정대에 대원으로 선발됐으나 원정대는 악천후 끝에 등정을 포기했다. 이 원정에서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식량을 담당하며 동등한 대원으로 취급당하지 못한 경험과 남성 동료를 향한 복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이후 그는 1993년 전원 여성으로 구성된 ‘한국 여성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장을 맡아 등정에 성공한다.
“나는 외롭다. 주위에 온통 남성뿐이고 나홀로 여자의 몸으로 남성들과 경쟁하는 데 있어서 너무 힘겹다. 나는 남성들보다 월등하고 싶다. 등반에 있어서나 등반 외적인 것에 있어서나. (중략) 나는 왜 남자들이 동료라기보다는 벽으로 느껴지나. 그것이 슬플 뿐이다.” (1990년 10월22일)
“여성 등반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앞에서 좌절의 고통과 서러움을 이겨내고서야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은 열렸다. 그런 사회적 냉소와 질시에 비하면 시체가 나뒹구는 에베레스트 사우스콜의 죽음의 공기도 견딜 만 했다. 여자끼리만의 오기로 뭉쳐진 팀을 이끌었고, 나는 그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견뎌내게 하는 데 성공했다.” (1999년 1월)

1975년 일본의 다베이 준코가 여성으로선 처음으로 에베레스트에 올랐다(당시 36세). 그는 <높은 곳을 경배하며>를 비롯한 자신의 저서와 여러 인터뷰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추가적인’ 질문에 관해 여러 차례 밝혔다. 다베이 준코는 키가 150㎝ 미만으로 알려져 있다. 스스로 밝히듯 학창 시절 체육에는 재능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한 이미지가 ‘영웅적·남성적 신체’와 사뭇 대조됐던 것에 그는 의문을 표했다. 또한 그는 에베레스트 도전을 준비하면서 어머니가 됐고, ‘주부는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일본의 전통적인 관념과도 싸워야 했다. 여성 산악인에게 투자하려는 후원사를 찾기 어려워 피아노 레슨을 하며 자금을 모았다.
“사람들은 나를 처음 보면 내 체격에 놀랐다. 크고 우람하며 마치 레슬러 같은 사람이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왜 사람들이 산악인의 외모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늘 궁금했다.”
“산악계 남성 대부분은 여성만으로 구성된 원정대가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우리의 계획에 반대했다.”
- 다베이 준코, <높은 곳을 경배하며> 외
중국 산악계의 전설로 꼽히는 판둬는 다베이 준코에 이어 에베레스트를 오른 두 번째 여성이 됐다. 불과 11일 차이였다. 그는 1960년대부터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에베레스트 원정에 참여했으나 “그보다 높은 곳은 남자들의 세계”라는 이유로 해발 6400m 이하에 머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여성 산악인의 가능성을 좀 더 크게 봤더라면 ‘여성 최초’ 타이틀은 중국이 가져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극 역시 마찬가지다. 남극에 여성이 갈 수 있느냐에 관한 논쟁은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됐고, 1956년 소련의 해양지질학자 마리 클레노바가 임무 차 남극을 방문하면서 남극을 여행한 최초의 여성이 됐다. 미국은 1969년까지 여성 과학자를 남극에 허용하지 않았다. 2001년 리브 아르네센(노르웨이)과 앤 밴크로프트(미국)는 여성 최초로 남극 대륙 횡단에 성공했다(당시 각각 48·46세). 리브 아르네센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탐험이 가로막혔던 경험을 “극지 탐험만은 몇 안 되는 남성들만의 영역 중 하나가 되었다. 남성들은 그 영역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고 돌아봤다(<우리는 얼음 사막을 걷는다> 중에서).
왔노라, 보았노라, 넘었노라

산악인을 비롯해 여성 탐험가들의 일생을 살피며 한 가지 놀랐던 점이 있다. 꽤 많은 경우 30대 중후반~40대 이상의 나이로 모험에 나섰다는 것이다. 운동선수를 기준으로 ‘팔팔 날아다니는’ 육체적 전성기(통상 20대)를 상정한 탓에, 어느 정도 원숙한 시기에 위대한 도전이 가능했으리란 점을 간과했다.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황금 반도>로 잘 알려진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조선에 왔던 나이도 63세였고,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이 히말라야를 따라 서양 여성 최초로 티베트에 들어간 것도 그의 나이 56세 때였다. 엠마 게이트우드는 자녀 11명을 낳고 키운 몸으로 67세에 홀연히 집을 나서, 여성 최초로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내 몸은 더욱더 날렵해진다”고 했다.
이는 체력에 관한 기존의 관념을 비튼다. 극한 환경에서 인간의 몸을 움직이는 힘은 단지 근력만은 아닐 것이다. 체구도 작고 육체적 전성기를 넘긴 여성들이 극한 여정을 견뎌낸 비결은 말 그대로 ‘생존력’으로만 설명할 수 있다. 일찍이 다베이 준코는 “기술과 능력만으로는 정상에 오를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란 말을 남겼다. 낙타와 함께 서호주 사막 2700㎞를 횡단한 로빈 데이비슨은 이렇게 밝혔다.
“서로 다른 장소에서는 환경에 따라 생존에 필요한 것도 달라진다. 생존력이란 환경에 의해 변화될 수 있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현실관을 이렇게 바꾸는 건 힘겨운 투쟁이었다. 나는 그것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거의 무너질 뻔했다. 이전까지 생존을 위해 의지해왔던 내 안의 인간은, 여기 이 다른 상황 속에서는 적이 돼버렸다.”
- 로빈 데이비슨, <길>에서
그렇다면 이렇게 힘든 길을 구태여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행기를 타고 쓱 지나가면 그만일 곳을 애써 걷는 이에겐 무엇이 남을까? 이에 대한 답은 오로지 그 모험을 직접 해 본 이들만이 들려줄 수 있다. 이들의 소감은, 치열한 사투 한복판에서 남긴 것 치고는 영적이며 고요한 느낌을 자아낸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한 걸음만 더, 한 걸음만 더’를 수만 번 반복하다 보면 끝내 도달하게 되는 어떠한 경지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산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본질적인 삶의 가치와 궁극적인 삶의 목표를 산에서 찾으려 했던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산을 통한 또 다른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등반은 나에게 그저 삶을 사는 수단이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해탈일까, 구원일까, 나로부터의 자유일까.”
- 지현옥, <안나푸르나의 꿈> 중에서
“오직 깊은 침묵만이 있어서 피가 혈관 속을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을 좇다 보면 너무나 아름다운 백지상태의 풍경에 내가 품은 비밀과 생각과 꿈들을 온통 쏟아내고 싶었다. 단순하게 존재한다는 자유로움에 나는 흠뻑 빠져들었다.”
- 앤 밴크로프트, <우리는 얼음 사막을 걷는다> 중에서

다른 시기 다른 극한을 경험했지만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유’를 언급한다. 존재할 자유든 존재로부터의 자유든, 여성 탐험가들은 인간이 없는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혹독하게 파고들었다. 나를 쳐다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내 시선이 향하는 종착점은 나의 정신인 것이다. 그러면서 극한 자연과 도리어 하나가 되는 듯한 일체감을 경험했다. 어쩌면 그것이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해방과 해탈이었을지 모른다. ‘자기 자신을 넘어선다’는 의미가 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성의 육체를 가진 이들에게 그러한 ‘무(無) 시선’의 의미는 더 각별하다. 사람들 틈에 섞여 낱낱이 해부돼 평가당하곤 하던 일이 홀로 자연을 거닐 때면 완전히 사라진다. 가장 금기시되는 생리적 현상까지도 손가락질당할 일이 없다. 로빈 데이비슨은 사막에서 생애 처음으로 생리대에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방귀를 뀐 경험을 전한다. 사소한 것 같아도 오로지 사막이란 공간에서만 누릴 수 있었던 자유다.
“생리혈은 또 어떤가? 그것이 중력 법칙을 따라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다고 해서 조금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중략) 사회적 관습의 중요성에 대한 감각이 얼마나 빠르고 완전히 내게서 떨어져 나갔는지 지금도 놀랍다. 나는 천천히 사회적 예절 감각을 되찾아왔지만, 사회적 품위와 여성적 얌전함에 대한 집착이 실제로는 왜곡되고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광기라는 사실만큼은 앞으로도 계속 보게 될 것이다.”
- 로빈 데이비슨, <길> 중에서
각자의 모험을 위하여

앞서 여행이 흔해지고 루틴화됐다고 언급했는데, 탐험과 모험도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일부 부자들은 심해, 우주, 극지방, 고산지대 등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는다. 현재까지 기록되고 알려진 탐험가들도 글로벌 노스(북반구 선진국) 국가에서 주로 배출됐다. 탐험에는 돈이 필요하고, 위험을 자처하는 일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극도로 사치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이다. 기술과 도구가 발전하면서 일명 ‘깃발꽂기’ 경쟁은 사실상 끝났고, ‘이 지구에 전인미답의 길이 과연 남았는가’라는 오만함도 한편으로 새어 나온다.
그럼에도 이 여성들의 모험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여성에게도 미지를 향한 호기심이 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기에 충분한 육체와 정신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남성이 먼저 걸었던 길이라 하더라도 여성이 그 길을 직접 걷는다는 건 그러한 의미가 있다. 반드시 남들이 간 적 없는 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내가 가고 싶은 길이기 때문에 간다는 데에서 오는 순수한 희열이 모험의 본질이다.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이 “이방의 땅을 향한 향수병”이라 일컬은 것처럼, 가보지 못한 곳을 향한 그리움은 각자의 마음에 심겨 있다. 그 씨앗이 우리를 각종 순례길로, 국토종주로, 세계일주로 이끈다. 극한으로 가지 않을지라도 다음 여행은 좀 다르게, 약간은 더 대담하게 지도 밖을 상상한다. 모험하는 여성의 서사는 지금도 그렇게 쌓이고 있다.
여성 탐험가들이 헤쳐나간 건 산맥과 빙하, 사막과 정글만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넘었고 사회가 부과한 한계를 깼다. 누구나 인생에서 자기만의 모험기를 써 내려간다. 그 길에 어떠한 발자국을 남길 것인가? 앞서간 여성들의 삶이 묻는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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