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구하는 방법이 가짜뉴스와 음모론?

“한국 정부는 쿠팡에 ‘범정부 차원의 공격(whole-of-government assault)’을 가하기 위해, 2025년 11월 발생한 ‘민감도 낮은 데이터 유출(low-sensitivity data leak)’을 탄압의 명분(pretext)으로 삼았다.”
4월20일 미국 공화당 의원(하원) 54명이 강경화 주미 대사에게 보낸 쿠팡 관련 ‘항의 서한’의 일부다. 한국에 대한 노골적인 적의가 이 문장뿐 아니라 서한 전체를 지배한다. 그들의 주장은 단지 ‘정보 유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과도한 대응’이 아니다. ‘한국 정부가 쿠팡을 표적으로 삼아오다가, 정보 유출 사건을 명분으로 본격적 공세에 나섰다’는 음모론이다.
공화당 의원들이 ‘민감도 낮은 데이터 유출’로 묘사한 지난해 11월 ‘쿠팡 사태’는 한국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중대 보안 사건이었다. 쿠팡의 내부 보안 키가 외부로 노출되었다. 아파트 마스터키를 통째로 잃어버린 경우와 같다. 해커 등 외부의 제3자가 이 키를 줍는다면 3370만명에 달하는 쿠팡 회원의 식별 정보와 계정 데이터 창고를 언제든 마음대로 열어볼 수 있는(무단 접근) 치명적인 보안 구멍이 뚫린 것이었다. 지난 3월 기준 한국의 총인구가 약 5110만명이다.
쿠팡에 가해진 ‘범정부 차원의 공격’으로, 공화당 의원들은 다음 사안들을 열거한다. ‘사업권 취소 위협’ ‘무차별 압수수색’ ‘신규 규제 부과’ ‘징벌적 벌금’ ‘세무조사’ ‘국민연금공단에 쿠팡 주식을 매각하라고 압박’. 이 주장은 조각난 사실들을 꿰어 맞춰 ‘한국 정부는 반미·친중’이란 음모론으로 포장하기 위한 수순일 뿐이다.
우선 사업권 취소 위협은 확인된 근거가 없는 가짜뉴스에 가깝다. 압수수색은 쿠팡의 정보통신망법 위반(정보 유출) 및 근로기준법 위반(노동자 블랙리스트 작성) 등의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법원 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한 사법절차다. 올해 초 국민연금공단이 쿠팡 그룹의 지주회사로 뉴욕 증시에 상장된 쿠팡Inc 주식을 거의 전량(2000억원 상당) 매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국민연금공단 등 글로벌 연기금들은 다음과 같은 ‘투자 가이드라인’을 갖고 있다. ‘단지 수익성뿐 아니라 해당 기업이 사회적 책임(환경·사회윤리·지배구조)을 지는지 엄격히 따져서 투자금을 넣고 빼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은 개인정보 유출, 잇따른 노동자 과로사, 블랙리스트 사태, CEO의 법적 책임 회피 등 쿠팡이 스스로 초래한 리스크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냉정히 평가하고 포트폴리오를 조정한 데 불과하다. 한국 정부가 압박했다는 어떤 정황도 없다.
또한 쿠팡에 대한 세무조사는 지난해 11월의 정보 유출 사고 훨씬 이전부터 시행되어왔다. 한국에서 발생한 쿠팡의 소득이 그룹 내부거래를 통해 미국 쪽으로 이전되고, 그 결과 쿠팡㈜의 납세가 줄어든다는 의혹(이전가격 조작) 때문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주권국가의 정당한 조세권 행사를 정보 유출 사고와 엮어 ‘기획된 탄압’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한국 정부에 대한 ‘반미·친중’ 몰이
미국이야말로 데이터 유출과 조세회피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무자비한 철퇴를 휘둘러왔다. 신용평가사 에퀴팩스는 2017년 1억4700만여 명의 개인정보를 털린 뒤 50개 주 검찰은 물론 연방거래위원회(FTC),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등의 엄중한 수사를 받고 7억 달러 규모의 벌금과 합의금을 토해냈다.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관리 문제로 50억 달러 규모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미국 국세청은 마이크로소프트, 코카콜라, 페이스북 등이 해외 자회사와 거래에서 이전가격 조작을 했다는 혐의로 각각 수십억~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세금을 추징하고 이에 따른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도 공화당 의원들은 한국 초유의 심각한 보안 사고를 ‘별것 아닌 사건’으로 폄훼하며 관련 사법 절차까지 ‘탄압’으로 몰아가는 이중 잣대를 노출하고 있다.
서한에 따르면, 공화당 의원 54명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한국이 중국 대기업들과의 밀착(integration)을 점점 더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미국 기업이 한국 온라인 유통 시장에서 밀려난다면, 그 공백은 테무, 알리바바, 쉬인 같은 중국 플랫폼들이 빠르게 채울 것이다. 중국 플랫폼들은 한국 기업들과 맺고 있는 수익성 높은 파트너십(lucrative partnerships) 덕분에 한국 정부의 특혜(preferential treatment)를 받고 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중국 업체의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쿠팡을 탄압한다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 ‘파트너십’은 알리가 신세계·CJ대한통운 등과 맺고 있는 전방위적 사업 제휴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다국적 기업들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B2B(기업 대 기업) 계약일 뿐이다. 알리와 ‘전략적 제휴’ 관계인 신세계그룹의 정용진 회장은 공개적 반중 발언 및 트럼프 일가와의 친분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한국 정부가 중국 플랫폼에 특혜(관세 인하, 보조금 지급 등)를 제공한다는 주장 역시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다. 오히려 공정거래위원회는 알리와 테무의 유해 상품 판매 등에 대해 전방위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다. 만약 알리나 테무가 한국에서 ‘차별적 우대(preferential treatment)’를 받는다면 이는 한·미 간 무역협정 위반 문제로 비화할 것이다. 공화당 의원들은 가짜뉴스까지 섞어 시장의 사적 계약을 통상 마찰로 프레임화하고 있다.
문제는 공화당 의원들이 이런 황당한 인식과 주장을 공적 문서로 내놓은 배경이다. 실제로 한·미 동맹과 안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4월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쿠팡 관련 사안들이 “한·미 간 안보 협의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11월 합의한 핵추진잠수함 건조, 원자력협정 개정 등에 대한 후속 합의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라서, 어떻게 보면 자연스럽게 쿠팡의 로비 능력에 의혹이 집중되고 있다. 쿠팡이 미국 의회에 제출한 2026년 1분기 로비 자료에 따르면, 쿠팡이야말로 ‘범정부 차원의 로비’를 하고 있다. 로비 대상은 상·하원과 상무부, 재무부, 무역대표부는 기본이고 외교 담당인 국무부 및 안보 컨트롤타워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까지 망라한다. 위성락 실장의 발언과 맞물려 의혹을 키우는 대목이다. 쿠팡의 워싱턴 로비 지출은 지난해 1분기 83만5000달러에서 올해 1분기엔 178만5000달러로 두 배 이상 폭증했다. 쿠팡은 로비 항목으로 ‘한국, 타이완, 일본 등 동맹국과의 경제 및 상업적 유대 강화’를 신고하고 있다. 그러나 로비 대상에 국무부와 NSC가 포함된 점을 보면 경제와 안보가 결합된 사안에서 로비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쿠팡은 4월24일 낸 보도자료에서 “(로비 보고서엔) 한국, 타이완, 일본 등 투자·무역 확대, 한국인 전문직 비자 확대 등 양국 간 경제협력에 관한 내용이 있지만 안보 관련 사안은 없다”라고 해명했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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