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삐걱대면 무조건 “쟤 나르시시스트야”, 맞을까?

임지영 기자 2026. 5. 13.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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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때보다 자기 돌봄이 강조되는 시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대는 정신 건강을 해치는 유해한 존재라 여겨 손쉽게 손절의 대상이 된다. 〈손절사회〉를 펴낸 이승연 연구자에게 물었다.
4월27일 <시사IN> 편집국 인근에서 <손절사회>의 저자 이승연 사회학자가 카메라 앞에 섰다. ⓒ김흥구

사회학 연구자 이승연은 20대 여성의 우울증 치료 경험에 관한 연구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22년, 우울증 치료 경험이 있는 당사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과정에서 인상적인 점을 발견했다. 이들에게 심리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는 단지 전문가가 아니었다. 스승이나 멘토, 심지어 부모 같은 존재라고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증상이 개선되어 더 이상 도움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뒤에도 계속해서 상담을 받거나 병원에 간다고 했다.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서였다.

연구에 도움을 주었는데도 되레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는 이들이 많았다. 공짜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공짜라는 단어가 연구자 이승연에게 깊이 남았다. “말을 들어주는 건 원래 공짜인데, 어쩌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유료인 사회가 되었을까?” 거기서 시작된 의문이 〈손절사회〉라는 단행본으로 이어졌다. ‘손절’이라는 키워드는 갈등을 조정하는 대신 손쉽게 관계를 종료하는, 우리 시대의 인간관계를 상징한다.

어느 때보다 자기 돌봄이 강조되는 시대, 사람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나 초민감자(HSP) 같은 정신의학 개념을 사용해 자신의 상태를 설명한다.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상대는 나의 정신 건강을 해치는 유해한 존재이며 심리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 관계는 과감히 끊어버리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으로 여겨진다. 타인과 고통을 나누는 일도 우정의 단면이라기보다 상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길이라 피해야 한다. 최근 〈손절사회〉를 펴낸 이승연 연구자에게 ‘연결 불가능성’의 시대에 관해 물었다.

20대 여성들의 인터뷰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라고 했는데.

연구 당시 단지 말할 사람이 필요해서 치료받는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대학원생이 심리상담 실습을 위해 사람을 모집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저렴하게 상담을 받기 위해 그런 프로그램을 전전한다는 이도 있었다. 또 연구를 마무리한 2024년 1월 ‘집사 카페(남성 종업원이 집사 복장을 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카페)’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메이드 카페’의 성별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유사 연애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모델이다. 남성이 친밀성을 구매하는 건 새로운 현상이 아닌데 여성들도 그렇다는 게 앞의 현상과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학계에서는 ‘캔슬 컬처(온라인 보이콧)’가 이슈였다. 현실의 사람에 대해 가혹한 문화가 있는 반면 뒤에서는 외로워하며 말 들어줄 사람을 찾아다니는 현상이 인상적이었다.

젊은 세대가 외로워하면서도 깊이 있는 관계에서 도피하려는 까닭은 뭘까?

인간은 외로울수록 타인을 경계하고 가혹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방어적 태도다. 손절이라는 말의 유행은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가 외롭다는 걸 보여주는 신호다. 또 의존이나 외로움을 병리화하는 문화와도 관련이 깊다. 신자유주의 자체가 의존을 병리화하는 문화 위에 세워져 있다. 실업급여를 ‘시럽(꿀)급여’라 말하고 ‘복지여왕(부정수급 받아 고급 자동차 모는 여성)’이라는 표현도 쓴다. 특히 치료 요법 문화(therapy culture, 감정 관리를 강조하는 문화)에서는 개인의 노력으로 행복이나 정신 건강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외롭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그걸 드러내면 정신 건강 관리에 실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쉽지 않다.

젊은 세대가 치료 요법 문화에 빠진 이유는 뭘까?

한 가지를 콕 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공동체적인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인 가구가 늘고 외로운 사람도 늘고 있지만 제도적 공백이 있기 때문에 청년 스스로 저속 노화 식단을 챙기고 요가를 하면서 자기 돌봄을 할 수밖에 없다. MBTI에 대한 관심도 유사하다고 본다. 특히 여성 청년들은 뭐가 됐든 ‘자가 진단’을 좋아한다. 가족이나 국가, 회사 등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갖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체성도 개인적인 방식으로 희구하는 것이다. 굉장히 사소한 특징마저도 ‘나는 ADHD구나’ ‘우울증 증상이었구나’ 하면서 자가 진단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무해함이 시대정신이 된 이유와 연결되는 것 같다.

치료 요법 문화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한데, 일상의 많은 것들을 정신 건강에 대한 위협이나 치유 측면에서 이해한다. 정신 건강 자체를 중요한 가치로 두는 것도 특징이다. 예를 들어 친구 사이에 갈등이 벌어졌을 때 ‘문제가 생겼다’고 할 수도 있는데 ‘스트레스 받아, 걔 나르시시스트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정신 건강이나 심리학적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많아졌다. 정신 건강을 잘 관리하는 게 개인의 과업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무해함에 집중하지 않았나 싶다. 또 점점 ‘마찰’ 없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음식점에서도 예전처럼 점원과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라 키오스크를 사용하고 배달을 시킨다. 그러다 보니 마찰 없는 상태 자체가 기본값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사소한 갈등을 경험할 일이 전혀 없고 클릭 한 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마찰은 단지 나의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마찰 없는 사회가 왜 나쁜가.

신체도 계속해서 쓰지 않으면 기능을 못한다. 마찰을 거치면서 단련되어야 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좋아하는 인플루언서하고만 관계를 맺고, AI와 대화하는 게 마찰 없는 관계의 형식들이다. 인간적 자질을 발달시켜야 하는 이유나 계기를 갖기 어렵다. 마찰 없는 사회로 간다는 건 인간적인 특성을 버리는 길로 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외로움은 돈이 된다고도 했다.

친밀성 자체가 판매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현대 문화의 특징 중 하나가 ‘덕질’이나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다. 내 학창 시절만 해도 오타쿠라고 하면 안 좋게 보는 시선이 있었는데, 이제는 30~40대가 회사에서 〈귀멸의 칼날〉 캐릭터 얘기를 해도 주책없다고 보지 않는다. 덕질의 대상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보통은 ‘누군가’를 덕질한다고 표현한다. 사회학 용어로 표현하면 준사회성이라 할 수 있다.

준사회성이 뭔가.

실제로 나와 관계 없는 사람에게 친근함이나 애정을 느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방송인 유재석씨가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고 그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식이다. 문제는 준사회성과 현실의 사회성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흔히 유튜브를 ‘밥 친구’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식사할 때는 정보 전달형 콘텐츠보다 누군가 계속 말을 하는 브이로그 등 대화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콘텐츠를 많이 본다. 채널 성격과 상관없이 꼭 고민 상담하는 내용을 다루기도 한다. 쉽게 요약하면 인스타그램에서 친구가 아니라 인플루언서에게 하트를 보내고, 친구 대신 유튜브와 밥을 먹고, 친구 말고 유튜버에게 고민을 상담하고, ‘인생 네 컷’ 사진도 아이돌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찍는다. ‘진짜’ 사회성이 없어도 친구와 할 걸 다 할 수 있다고 느끼는 시대가 된 것이다. 준사회성이 이 정도로 사회를 잠식하는 건 문제적일 수 있다. 어떤 시점에서는 결국 사회성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데, 준사회성이 너무 과해서 진짜 사회성을 개발할 필요가 없는 듯 보이는 시절인 것 같다.

청년 세대는 자신의 성향이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자가 진단을 즐겨한다. ⓒ시사IN 포토

무해한 관계의 요체가 AI이기도 하다.

AI와 인간은 극단적일 정도로 마찰이 제거된 관계다. ‘AI 아첨 현상’에 대해 말하는데 AI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다고 아첨이 아니다. AI가 내 생각을 ‘컨펌’해주는 방식으로 간다는 게 핵심이다. 내 견해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도 사람들은 AI가 더 객관적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다. 내 판단을 항상 긍정해주고 어떤 마찰도 없이 내 곁에 있고, 이런 관계에 익숙해지면 현실의 관계가 덜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어느 때보다 마음을 돌보는 시대인데 왜 우울한 사람은 늘어날까.

책의 주요 주제 중 하나는 건강이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사회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요거트볼을 먹고 비싼 PT 받는 게 아니라, 임금이 충분하고 문화시설이나 녹지가 갖춰져 있고 휴식 시간이 보장되는 사회의 특성이 바로 건강이라는 게 나의 기본적인 논지다. 연장선에서 우울증 치료가 보편화되었는데 왜 우울한 사람은 계속 늘어날까? 우울증 치료 자체가 우울증을 만성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치료를 시작한 계기를 물으면 열에 아홉은 ‘우울해서’라기보다, 학업이든 취업이든 해야 할 일을 해낼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였다고 답한다. 정신 건강이 성공적인 삶에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 하나의 자원으로 보는 시각이다. 그런데 이들이 건강할 수 없는 이유는 그대로다. 말하자면 암 환자에게 진통제만 주는 것이다. 당장 일을 할 수는 있지만 나을 순 없다. 건강을 공동체적 관점에서 보는 게 필요한 것 같다.

특히 여성 청년에게 주목했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사람들이 외로워진다는 얘기는 그동안 많이 나왔다. 그때 상상하는 얼굴은 공정성에 집착하는 소위 극우 청년 남성인 경우가 많다. 신자유주의의 무서운 점은 모두를 경쟁자로 보라는 냉혹함보다 이걸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면이라고 생각한다. 그 흐름을 주도하는 게 2030 여성들이다. 비난하려는 건 전혀 아니고 치료 문화가 ‘너의 고통은 정당하고 치유된다’라는 메시지 때문에 진보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여성들이 이 치료 문화로 인해 더 외로워지는 인구 집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남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게 너무 두렵다. 그래서 상담사를 만난다고 하는 이들도 많다. 타인을 감정적으로 유해하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징징대면 안 되지만 남을 돌봐주는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구세대적 돌봄 윤리의 지배도 받는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 하는 과업도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한국 여성이 많다고 한다. 유독 여성이 발리나 인도로 요가 여행을 가거나 순례길을 찾는다. 나의 삶, 진정한 나는 여기에 없다는 얘기다. 그게 과연 좋기만 할까. 사회에서 살아남고 투쟁해나가는 게 어려워서 ‘진정한 나’에게 빠지게 되지만, 진정한 나라는 건 사실 없고, 지금 여기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게 현실이다. 여성들 간 연대를 어렵게 하는 면도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고통을 경청하고 응답하는 괴로움을 기꺼이 마주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모든 걸 ‘가성비’의 관점에서 보는 시대다. 비용 대비 효율을 따지는 것에 세뇌되다시피 했는데 사람 관계는 그런 면에서 모호하다. 주는 걸 통해 많은 걸 받을 수도 있다. 경청하는 동안 내 얘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데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라는 의미를 넘어 사회적 동물로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람들과 이어져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기여하고 경청하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임지영 기자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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