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이직 부르는 인력 부족 “환자수 기준 법제화해야”

5·12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보여주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다. 간호사 10명 중 7명이 병원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간호법 시행 등 처우개선 노력에도 인력 부족과 높은 노동강도 문제가 반복됐다. 의료단체들은 간호사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적정 환자수를 법으로 정하는 간호 인력기준 법제화를 요구했다.
간호사 10명 중 7명 "병원 떠나고 싶다"
보건의료노조(위원장 최희선)가 국제 간호사의 날을 맞아 12일 발표한 '보건의료노동자 정기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간호사 10명 중 7명(72.1%)은 최근 3개월 내 이직을 고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보건의료 노동자 평균(64.6%)보다 7.5%포인트 높은 수치다. 특히 3~5년차 간호사의 이직 고려율은 79.9%로 높았다. 이번 조사는 지난 1월12일부터 31일까지 조합원 4만5천6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보건의료노조는 매년 실태조사를 진행하는데, 간호사 노동환경 지표는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호사의 이직 고려율은 2022년 78.0%에서 2025년 70.9%로 소폭 감소했지만 올해 다시 1.2%포인트 상승했다. 간호사 10명 중 7명이 병원을 떠날 생각을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이 병원을 떠나고 싶은 이유는 인력 부족에서 비롯된 열악한 근무조건 때문이었다. 이직 사유는 근무조건(48.9%)이 가장 높았고, 임금(25.2%)과 직장문화(6.5%) 순으로 이어졌다. 간호라는 직무특성 자체 때문이라는 응답은 1.5%였다.
간호사의 70.3%는 부서 내 인력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인력수준 불만족도는 72.2%로 업무량·노동강도(60.7%)와 임금(58.4%) 불만족도보다 높았다. 인력이 부족하다고 응답한 간호사의 이직 고려율은 77.4%였지만, 인력이 적정하다고 응답한 간호사는 59.9%였다. 인력 부족이 체감될수록 병원을 떠나려는 의향도 높아진 것이다.
식사와 휴식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 간호사의 65.5%가 지난 한 달간 근무 중 식사를 거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0년이 지나도 그대로" 간호사들 호소
인력 부족 문제는 현장 증언에서도 드러났다. 이날 보건의료노조 주최로 국회 앞에서 열린 국제 간호사의 날 기자회견에서 한 사립대병원 10년차 간호사는 "여전히 화장실 못 가고 물 못 마시고 생리대 갈 시간도 없다. 이제 이 말이 지겹게 느껴지느냐"며 "환자수가 늘어도 간호사수는 줄어드는 기이한 구조 속에서 숙련된 간호사들조차 쫓기듯 업무를 수행하며 매 순간 사고의 위험성을 느낀다. 그러나 병원은 인건비를 이유로 연장근무수당을 신청하는 것조차 눈치를 준다"고 호소했다.
간호법 시행 후 인력난이 더 심해졌다는 주장도 나왔다. 개정 간호법은 전담간호사(PA) 업무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지만, 병원이 별도의 기준 없이 숙련간호사를 전담간호사로 배치하면서 숙련간호사는 더 부족해졌고 노동환경도 열악해졌다는 것이다. 한 수도권 대학병원 26년차 간호사는 "법적으로 해도 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안도감은 잠시였고, 병원은 전공의 이탈에도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전담간호사를 '상시대기 인력'으로 만들고 있다"며 "간호 인력이 부족하면 일반 간호업무까지 동시에 해야 하는 이중고에 놓였다"고 한숨 쉬었다.
의료단체 "간호 인력기준 법제화" 요구
의료단체들은 간호 인력기준 법제화를 한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간호사 대 환자 비율을 법제화해 병원이 이윤에 따라 간호 인력을 자의적으로 운용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병원 현장에서는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수가 적게는 8명에서 많게는 40명 이상까지 제각각이다.
김영희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수석부본부장은 12일 서울대병원 본관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간호사 대 환자수를 법제화한 호주 빅토리아주의 경우 간호사 1명당 환자수가 1 대 4로 정해져 있어 간호사가 5명 이상의 환자를 돌보지 않는다"며 "반면 한국의 경우 상급종합병원 기준 간호사 1명당 환자수가 16명이다. 간호 인력기준을 법으로 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의료연대본부는 2021년 간호사 1명당 담당 환자수를 법제화한 간호인력인권법 국회 국민동의청원을 진행해 10만명을 달성한 바 있다.
보호자나 개인 간병인 없이 병원의 전담 간호 인력이 환자를 직접 돌보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개선 요구도 이어졌다. 의료노련(위원장 신승일)은 같은날 성명을 내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가 현장의 중증도와 노동강도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간호사 1명당 실제 환자수 기준을 제도화하기 위해 노동계·간호계·병원계가 참여하는 실무협의체를 즉각 가동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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