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진이보다 독한 게 왔다”… ‘멋진 신세계’가 통하는 이유

황지민 2026. 5. 13.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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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새 드라마 ‘멋진 신세계’가 닐슨코리아 기준으로 1회 전국 시청률 4.1%로 출발해 2회에서 5.4%로 1.3%p 상승하며 흥행 청신호를 켰다. 단 2화만에 이루어낸 성공 비결에는 ‘뻔한 소재를 뻔하지 않게 풀어낸’ 제작진의 영리함이 숨어있다/SBS ‘멋진 신세계’ 공식 포스터
과거에서 현대로, 혹은 현대에서 과거로 시대를 뛰어넘는 ‘타임리프’ 장르는 예전부터 유구히 존재해 왔다. 자칫하면 늘어질 수 이쓴 이 장르를 ‘멋진 신세계’는 제목처럼 멋지게 비틀었다/(왼쪽)MBC ‘퐁당퐁당 LOVE’ 공식 포스터, (오른쪽) SBS ‘옥탑방 왕세자’ 공식 포스터
작품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주인공

[뉴스엔 황지민 기자]

박연진 아니고 강단심 … 전 세계 홀린 임지연 '맑은 눈의 광기'어리바리한 타임슬립 주인공은 끝났다, 홈쇼핑 완판 찍는 '생존형 빌런' 21세기 정복기

작품성이란, 뻔한 소재를 뻔하지 않게 전개할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를 구현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 2010년 초반부터 매해 쏟아지던 ‘타임루프’ 장르는, 이젠 새롭기보단 뻔한 코가 됐다. 그러나, 최근 방영을 시작한 SBS ‘멋진 신세계’가 ‘뻔함을 뻔하지 않게 만드는 연출’에 성공하며 호평을 받고 있다. 이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장르 문법을 영리하게 비트는 전략적 선택들이 자리하고 있다.

■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 유치한데 도파민 터지는 ‘시대 역전’ 법칙

이 드라마가 발 딛고 선 장르적 토대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조선과 현대를 오가는 ‘타임슬립’ 장르는 한국 드라마 역사에서 꾸준히 사랑받아 온 대표 포맷이다. '옥탑방 왕세자', '명불허전', '철인왕후', '폭군의 셰프'까지, 이 계보는 생각보다 길고 탄탄하다. 시대를 초월한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만들어지고, 또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극명한 가치관 충돌이 주는 재미다. 조선과 현대는 한국사에서 가장 대조적인 시스템을 가진 두 시대다. 엄격한 신분제와 민주주의, 아날로그와 디지털 충돌 속에서 발생하는 컬처 쇼크는 그 자체로 직관적인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타임리프물 주인공은 대개 한 시대 정보를 앞서 가진 '지식 우위자'가 된다는 점도 중요하다. 현대 의사가 조선에서 사람을 살려내거나, 역사를 아는 주인공이 미래를 예견하며 위기를 탈출하는 장면은 "내가 만약 과거로 간다면?"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상상을 가장 완벽하게 실현해주는 구조로 기능한다. MBC ‘퐁당퐁당 LOVE’에서 ‘수포자(수학 포기자)’였던 단비(김슬기 분)가 학교에서 배운 기초 수학 지식만으로 궁궐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장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에 수백 년 시간을 뛰어넘어 만난 두 사람이라는 '운명적 사랑' 설정이 더해지면, 로맨스 애절함은 몇 배로 증폭된다.

■ 민폐 여주인공은 사절, 현대 문명 ‘풀 패치’ 완료한 조선 요녀 하드캐리

다만 일반적인 타임슬립 드라마 방향은 대부분 현대에서 과거를 향했다. MBC ‘닥터 진’, SBS ‘신의’, MBC ‘퐁당퐁당 러브’, tvN ‘폭군의 셰프’ 등 이 공식을 따른 작품들은 조선시대를 중심 시대로 두는 것이 훨씬 극적으로 유리하다는 암묵적 논리를 공유해왔다.

이유는 명확하다. 현대인이 신분제 사회 장벽을 정면으로 부수고 자리를 차지해나가는 서사는 타임슬립물 특유의 통쾌함을 극대화한다. 상대역으로 '왕'이 배치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작품은 제멋대로 구는 여주인공에게 처음에는 날 선 반응을 보이다가 점점 호기심과 사랑을 느끼게 되는 군주 서사를 연출한다. 그리고 이는 시청자 환호를 이끌어내는 클리셰처럼 작동해왔다. '폭군의 셰프'에서는 연지영(임윤아 분)과 이헌(이채민 분), '퐁당퐁당 LOVE'에서는 단비와 이도(윤두준 분) 관계가 이 문법을 성공적으로 구현했다.

그러나 '멋진 신세계'는 설정 방향을 뒤집었다. 과거 인물이 현대로 나오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도 일반적 ‘타임리프물 공식’에 대항하는 전개를 택했다. ‘멋진 신세계’와 비슷한 포맷을 다룬 작품으로, SBS ‘옥탑방 왕세자’를 떠올릴 수 있다. 2012년 방영한 해당 작품 역시, 왕세자 이각(박유천 분)과 그 일행이 세자빈 익사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현대로 타임슬립하는 내용을 담았다. '옥탑방 왕세자'에서 이각은 여자 주인공 박하(한지민 분) 도움을 받으며 현대 사회에 적응해 나간다. 자동차를 보고 검을 휘두르다 경찰에 송치되는 등, 초반에 보이는 어리바리한 모습을 통한 웃음 코드는 전형적인 타임리프물 공식이다.

'멋진 신세계'는 이 구조를 비튼다. 조선에서 온 강단심(임지연 분)은 어리바리하지 않다. 이방인 처지가 된 현재 상황을 ‘두 번째 기회’로 삼는다. 그는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홈쇼핑 방송에서 먹방으로 완판 신화를 쓴다. 현대에 내던져진 주인공의 '적응 실패'를 웃음 포인트로 삼는 대신, 시대 격차를 맨몸으로 돌파하는 주체적 생존기를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 '혐관'으로 완성한 자극적인 매운맛 로맨스

'멋진 신세계'가 지닌 또 다른 차별점은 주인공과 파트너 모두 '악인'이라는 파격적 설정에 있다. 타임슬립물에서 캐릭터 반전 설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명불허전' 허임(김남길)도 존경받는 혜민서 의원이지만 뒤로는 양반들을 왕진하며 재물을 쌓는다는 반전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일탈'에 가까웠다.

강단심은 차원이 다르다. 드라마 시작은 강단심이 사약을 받고 죽는 장면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는 '완전한 악녀'로만 기록됐다. 뒷배 하나 없이 오직 자기 힘으로 정1품 희빈 자리까지 올랐지만 세상은 그를 '요녀'로 규정해버린 인물이다. 상대역 차세계(허남준) 역시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로 불리는 악질 재벌 3세다. 오해와 따귀로 시작된 두 사람 관계는 경계와 거래를 오가는 이른바 '혐관' 케미스트리로 전개된다.

여기에 빙의물 장르가 섞이며 캐릭터 입체성이 더해진다. 강단심이 신서리 일기장을 읽으며며 연민을 느끼는 장면은, 단순한 악녀 면모를 넘어 두 여성 서사를 입체적으로 비춘다. 강단심 캐릭터가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분명 악녀지만, 현대적 관점에선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 주체적 여성으로 읽힐 수 있다는 여지가 이 선택을 지탱하는 뼈대가 되는 것이다.

■ "박연진 그림자 완전히 지웠다" 호평… 임지연, 세 번째 인생캐릭터를 향해

이 모든 설계를 실현하는 것은 결국 배우 몫이다. 아무리 뛰어난 대본이더라도, 배우 연기력이 뒷받쳐 주지 못한다면 시청자에게 그 메시지가 닿지 못한다. ‘멋진 신세계’에서 주인공을 맡은 배우 임지연은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주며 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임지연은 넷플릭스 '더 글로리' 학폭 가해자 박연진으로 신드롬급 화제를 만들었다. 데뷔 이래 처음 도전한 악역이었지만, 악랄한 가해자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냈다는 평을 받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이후 ENA '마당이 있는 집'에서는 ‘짜장면 먹방’으로 SNS 트렌드를 장악했고, JTBC '옥씨부인전'에서는 "내 필모그래피에 한 획을 그었다"고 스스로 자평할 만큼 탄탄한 연기력을 보여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 임지연에게 가장 먼저 붙는 수식어는 박연진이다. 이 때문에 차기작 소식이 들릴 때마다 '더 글로리' 박연진을 넘을 수 있겠냐는 우려가 따라다녔다. 임지연 스스로도 인터뷰에서 "'더 글로리'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아직 인생작은 나오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며 작품 선택의 무게감을 드러낸 바 있다.

'멋진 신세계'는 그 우려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선택이다. 사극 말투로 21세기를 헤집고 다니며 거침없이 웃음을 유발하는 연기에 시청자들은 "임지연 캐릭터를 300% 소화한다", "연기가 개연성이다"라는 반응을 쏟아냈다. 박연진 그림자는 단 2회 만에 상당 부분 걷혔다.

상대 배우와 만들어내는 앙상블도 탄탄하다. 허남준은 제작발표회에서 임지연과의 호흡에 대해 "살면서 느껴본 것 중 손에 꼽을 정도"라며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실제로 방송 직후, 악질 재벌 캐릭터를 차갑고도 미묘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시청자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 고증은 챙기고 편견은 박살 낸 ‘힙’ 사극

장르적 특성상 '멋진 신세계'는 사극 고증에 다소 느슨한 태도를 취할 법도 하다. 그러나 제작진은 퓨전 사극이라는 외피 안에서도 꽤 섬세한 고증 디테일을 녹여냈다.

가장 두드러졌던 건 1화 오디션 장면에서였다. 극 중 강단심은 우연히 비오제이 신상 화장품 모델을 뽑은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다. 함께 참가한 톱스타 윤지효(이세희 분)가 “어렸을 때부터 꿈이 현모양처였다”고 말하자, 강단심은 이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임윤지당 선생도 말씀하지 않았소. 남정네와 여인네의 본성은 달리 태어나지 않다고."

이는 조선 후기 여성 성리학자 임윤지당(1721~1793) 유고 <윤지당유고>에 나오는 내용이다. 강단심은 또한 “강산이 이리 변하였는데 부엌데기를 자처하겠다? 허난설헌, 신사임당 같은 어르신들이 들으면 무덤에서 통곡을 하고 일어나겠구나”고 말한다. 신사임당을 단순한 현모양처 혹은 ‘율곡이이 어머니’가 아닌 주체적 여성으로 해석하는 시각을 담은 것이다. 실제로 신사임당은 당대에 ‘안견에 버금가는 화가’라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다. ‘못다 핀 1인자 자리를 현대에 와서 꿰차겠다’는 주인공의 당당한 태도와 맞물리며 시너지를 발휘한 순간이었다.

의상 고증에서도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작 중 조선시대 출신 강단심은 굽이 없는 전통 수혜를, 과거 드라마 속 장희빈 캐릭터들은 굽이 있는 현대적 꽃신을 착용했다. 이러한 세심한 부분에까지 차이를 두며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적 면죄부를 스스로 반납한 셈이다.

■ '순항', 그리고 풀어야 할 실타래들

'멋진 신세계'는 현재 초반 항해를 순조롭게 마쳤다. 닐슨코리아 기준으로 1회 전국 시청률 4.1%로 출발해 2회에서 5.4%로 1.3%p 상승하며 흥행 청신호를 켰다. 최고 시청률은 6.9%다. 동시간대 경쟁작인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 강세에 다소 가린 출발이었지만, 해당 작품과 방영 기간 겹침이 4회까지로 제한되는 만큼 이후 시청률 흡수를 기대하는 시선도 있다.

OTT 성과는 더욱 두드러진다. 2회 공개 직후 넷플릭스 대한민국 TOP10 시리즈 1위에 올랐고, 플릭스패트롤 기준 넷플릭스 TV쇼 부문 글로벌 2위를 달성했다. 브라질, 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24개국에서 1위를 기록했으며, 미국에서도 이틀 연속 TOP10에 진입했다. 전 세계 84개 국가 및 지역 TOP10에 드는 성과다. 허남준이 제작발표회에서 공언했던 "최고 시청률 20%"라는 목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글로벌 흥행 지표만큼은 그 자신감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앞으로 전개가 ‘두 시대 배경에서 드러난 떡밥을 얼마나 잘 회수하는가’이다. 간혹 작품 내용이 세계관의 방대함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주인공 강단심이 주체성을 내세운 인물인 만큼, 차세계와의 로맨스가 뻔한 클리셰로 이어질 경우 비판을 피하기 쉽지 않다. 아직까지, 임지연의 새로운 커리어 하이 타이틀이 '멋진 신세계'에 달릴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부디 이 이야기가 끝까지 ‘멋진 신세계’를 보여주길 바란다.

뉴스엔 황지민 saehay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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