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앞 닉슨·‘독주 원샷’ 레이건···미 대통령 방중 역사 54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번째 방중은 역사에 어떤 기록을 남길까. 54년 전 냉전 시대에 시작된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단순한 정치 행사를 넘어 양국 관계의 전환점으로 기능해왔다.
포문을 연 것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 이뤄진 방중에서 양국은 적대 관계를 청산한다는 내용의 ‘상하이 코뮈니케’를 발표했다. 미국은 이 합의를 통해 ‘하나의 중국’ 원칙도 인정했다. 두 정상은 20년 넘게 끊겼던 양국 관계 회복에도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미·중 관계 정상화의 출발점이라 평가받는 만남으로부터 7년 후인 1979년 양국은 국교를 수립했다.
1984년에는 ‘강경 반공주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중국을 찾았다. 취임 이후 처음 공산 국가 땅을 밟은 그는 ‘흑묘백묘론’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실용주의 노선을 인정하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다.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에 손을 내민 것이다. 레이건 대통령이 환영 만찬에서 리셴년 국가주석이 권한 독주 마오타이주를 ‘원샷’하고 눈물을 글썽인 장면은 양국 간 긴장 완화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8년 역대 미국 지도자 중 최장기간인 8박 9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베이징은 물론 시안·상하이·홍콩 등 총 6개 도시를 직접 찾았다. 베이징대에서 이뤄진 연설에서는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비롯한 중국 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 대학생들과 열띤 질의응답을 벌이기도 했다. 탈냉전 이후 처음 이뤄진 미 대통령의 방문으로 양국 관계가 재정립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8년 재임 기간 총 두 차례 중국을 찾았다. ‘주요 2개국(G2) 시대’를 맞아 양국의 새로운 협력 관계를 다지려는 노력이었다. 2009년 첫 방중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의 부상을 인정하고, 기후 위기와 관련한 협력을 끌어냈다. 하지만 위안화 환율이나 무역 불균형 등 주요 의제에서 중국의 양보를 얻지 못하면서 실질적 성과가 없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2014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이뤄진 두 번째 방중에선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명시한 공동 선언을 발표, 파리협정 체결의 기반을 마련했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17년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재임 기간 시진핑 국가주석과 여러 차례 회담했지만 중국 땅을 밟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머무는 2박 3일간 자금성(고궁박물원) 출입 제한 구역에서 만찬을 즐기는 등 이른바 ‘황제 의전’을 받았다. 90억달러(약 13조원) 규모의 경제 협력 선물도 챙겼다.
하지만 평화 무드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6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25% 관세 부과를 발표하면서 무역전쟁이 촉발됐고 양국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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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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