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미국 단체 80년 ‘광주 보고서’ 첫 공개…“계엄군이 먼저 학살”

김용희 기자 2026. 5. 13.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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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년 전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학살 직후 책임 소재를 밝히고 참상을 담으면서 "결국 한국 민중이 승리할 것"이라며 독재정권의 몰락을 내다본 미국 인권단체 보고서가 처음 공개됐다.

한겨레는 최근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 연맹'(북미연맹)이 5·18민주화운동 직후인 1980년 9월에 작성한 '광주 보고서'(Reports From Kwangju) 내용을 최용주 전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을 통해 입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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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무장폭동설에 “왜곡”
“결국 한국 민중 승리할 것”
미국 인권단체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 연맹’이 1980년 9월 미국에서 펴낸 ‘광주 보고서’ 표지. 최용주 전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제공

46년 전 전두환 신군부의 광주 학살 직후 책임 소재를 밝히고 참상을 담으면서 “결국 한국 민중이 승리할 것”이라며 독재정권의 몰락을 내다본 미국 인권단체 보고서가 처음 공개됐다.

한겨레는 최근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 연맹’(북미연맹)이 5·18민주화운동 직후인 1980년 9월에 작성한 ‘광주 보고서’(Reports From Kwangju) 내용을 최용주 전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을 통해 입수했다. 23쪽 분량의 ‘광주 보고서’는 서문, ‘한국 기자의 기록’, 증언록 ‘찢기고 누더기가 된 깃발’, 다양한 광주 보고서 발췌록, 조선대 학생 성명, 사건 연표, 희생자 사진을 통해 항쟁 과정과 계엄군의 만행을 기록했다.

총 맞은 윤상원 셔츠에 외국기자 명함 수두룩

1980년 5월14∼27일 상황을 담은 ‘한국 기자의 기록’은 당시 광주에 있었던 익명의 한국 기자의 목격담이다. 이 기자는 5월21일에 군인들이 총을 쏘자 시민들은 광주 인근 화순에서 총을 구해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시민이 먼저 무장했다는 것은) 서울 지역 신문들에 의해 왜곡된 사실 중 하나”라며 “학생들이 총을 든 것은 계엄군이 먼저 시작한 학살에 대한 대응이었음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도미야마 다에코의 판화 ‘광주의 피에타’를 삽화로 실은 ‘광주 보고서’ 목차. 최용주 전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제공

옛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싸우다 삶을 마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을 면담한 내용도 담겼다. 이 기자는 도청 진압 하루 전인 5월26일 외신 기자회견을 한 윤상원을 만나 “한국 기자는 정부가 허락하지 않아 사실을 보도하지 못했다”는 불평을 털어놨다고 했다. 그는 이튿날 계엄군 총탄에 쓰러진 윤상원의 셔츠 주머니에 여러 외국 기자들의 명함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기분이 매우 묘했다고 했다.

광주시민 호소에도 미 국무부 중재 거부

‘찢기고 누더기가 된 깃발’과 다양한 보고서 발췌록은 시민이나 광주에 머물던 외국인들의 증언, 일기 등을 수집해 정리한 것이다. 부상자들을 위한 헌혈 행렬과 음식 나눔 등을 소개하며 폭도로 몰린 시민들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는 연표에서 학살을 방관한 미국의 책임도 묻고 있다. 5월26일 광주 시민들이 중재를 호소했지만 이튿날 미국 국무부가 “대도시의 완전한 무질서와 혼란 상태를 무기한 방치할 수 없다”며 중재를 거부한 사실을 기록했다.

페기 빌링스 북미연맹 의장은 서문에서 “1980년 5월의 학살 이후 광주는 1890년대 동학농민운동, 1919년 3·1독립운동, 1960년 4·19혁명과 더불어 한국 역사의 정치적 어휘로 자리 잡았다”며 “한국 민중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위해 계속해서 투쟁하는 한 광주에서 희생된 이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광주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야만적인 군부는 증오와 불신을 남겼고, 이는 조만간 폭발할 것”이라며 “결국 한국 민중이 승리할 것이며, 광주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법과 민중의 자주적 참여에 의한 통치를 되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5·18민주화운동 때 미국의 책임을 묻는 등 1970∼80년대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힘썼던 고 패리스 하비 목사. 최용주 전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201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동아시아도서관의 ‘한국 민주화운동 컬렉션’에서 이 자료를 발견한 최 전 연구원은 5·18의 진실을 알리려고 힘쓴 북미연맹의 패리스 하비 목사가 지난달 별세한 것을 계기로 보고서를 공개했다. 그는 “하비 목사는 인혁당 사건을 폭로한 조지 오글 목사, 제임스 시노트 신부와 함께 1970~80년대 한국 민주화에 기여한 외국인 3명 중 1명”이라며 “이 보고서는 미국 의회 등에 보내져 미국의 책임을 따졌다. 당시 급박하게 작성돼 사망자 숫자 등은 최근 조사 결과와 다르지만 광주를 알리려는 외국 의인들의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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