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초호황 반도체’ 초과세수 바탕 ‘미래 재투자’ 의지

이재명 대통령이 12일 예산당국에 적극적 재정정책을 주문한 것은 인공지능(AI) 투자 수요 흐름에 올라탄 반도체 업계 슈퍼사이클(초호황)에 기반한 막대한 초과세수를 바탕으로‘미래 재투자’에 나서겠단 의지 표명으로 읽힌다. 확장적인 재정정책에 늘 돌아오던 재정 건전성 악화라는 기존 비판의 틀을 벗어나, 재정 투자가 더 큰 성장을 이끌고 다시 부채 비율도 낮출 수 있다는 선순환 구조를 재설계하겠다는 의미다. 다음달 정부가 발표할 하반기 경제성장전략과 8월 말 나올 내년도 예산안에 이런 국정 기조가 담길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확장 재정=퍼주기’ 등식을 뒤집으며, 긴축재정을 두고 ‘포퓰리즘의 함정’이라고 직격했다. 이 대통령의 작심 발언엔 경제 기초체력에 해당하는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국면에서 재정 건전성만을 강조할 경우, 미래 성장 동력에 투자하는 적기를 잃을 수 있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반도체 호황으로 올해 성장률은 2%를 웃돌 것으로 전망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고령화 인구 구조 등을 근거로 한국의 잠재성장률에 대해 올해 1.7%, 내년 1.5% 등 하향 추세를 전망하고 있다.
최근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효과 연구 결과도 이 같은 자신감을 뒷받침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해 ‘전 국민 민생회복 소비쿠폰’의 정책 효과 연구 결과, 10만원당 약 4만3천원씩 소상공인의 추가 매출 증대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분석했다. 통상 이전지출 정책은 내수 진작에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통념에 따라 퍼주기 등의 딱지가 따라붙는데, 사용 기한과 사용처를 제한하고 한계소비성향이 큰 저소득층 차등 지급이라는 정책 설계가 이뤄졌을 때 상당 폭의 소비 진작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재정·예산당국도 달라진 거시경제 환경에 발맞춘 적극적 재정 운용 계획을 밝혔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국가 대전환을 가속화하기 위해 적극 재정 운용이 필요한 시기”라며 “성장 패러다임 대전환을 위한 충분한 소요를 적극적으로 (예산요구서에) 반영해달라”고 각 부처에 당부했다. 전날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도 기자간담회에서 “재정의 생산성 제고 노력을 하면서 현명한 투자자의 역할을 강화해 잠재성장률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는 “메모리 반도체를 넘어 제2, 제3의 성장 동력을 발굴해야 할 시점”이라며 “대전환 과정에서 소외되는 산업이나 계층이 없도록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기존 산업도 인공지능을 활용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추진 중인 한국형 국부펀드에 출자해 국가 전략 사업을 키우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기업의 막대한 영업이익으로 인한 초과세수라는 ‘실탄’은 이런 논의의 전제 조건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8일 페이스북에 “골드만삭스가 추정한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단독 합산 이익만 해도 과거 한국 증시의 감각으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라며 “2027년까지 반도체 호황이 이어진다면 2026~2027년의 세수는 역사적 규모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장에서는 이미 새로운 숫자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오래된 감각과 기준으로 그것을 이해하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며 재정 운용의 프레임 전환을 촉구하고 나선 바 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출을 많이 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 효과가 좋은 지출과 그렇지 않은 지출, 중장기적으로 필요한 지출 등에 대한 구체적인 논쟁이 필요하다”며 “현재 지출 중 성장 잠재력을 제어하는 정책은 없을지 냉정한 평가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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