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다, 바쁘다, 해외 있다… ‘노쇼’ 안 통한다

박수연 기자 2026. 5. 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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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지연 막는 개정 ‘소촉법’
민생 범죄 피해자 지원 기대
“실형 집행 가능할까” 의문도
어도비스톡.

5월 7일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소촉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앞으로 보이스피싱이나 사기 등 민생범죄 재판에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하며 재판을 고의로 지연시키는 행태를 볼 수 없게 됐다. 입법자는 제안 이유에서 "피해자가 매 기일 법정에 출석하여 피해를 호소하는데도 판결 선고를 받지 못하는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어떤 사례가 있었을까.

피해자 '고통 호소'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공판 기일에 불출석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통상 사기 사건에서다. 변론 종결일까지는 출석하여 혐의를 다투다가, 막상 선고 기일에는 출석하지 않아 법원이 선고를 미루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있었던 컴퓨터 구매 사기 재판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은 재판을 방청하러 갔다가 텅빈 피고인석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법정에서 배상명령이라도 해줄까 싶은 기대감에 찾았지만,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는 바람에 빈손으로 돌아서야 한 것이다. 

다른 사기 사건의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피해자 대리를 주로 하는 변호사는 "피해자가 증인신문을 하기로 한 날인데, 피고인이 안 나와 재판이 진행되지 않는 상황은 정말 비일비재하다"며 "대부분의 피해자는 자신의 사건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재판에 피고인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속상한 일은 없다"고 말했다.

이 밖에 해외에 거주하는 외국국적의 피고인이 기소된 사실을 알고도 나오지 않아, 선고까지 수년이 소요된 사건도 있다. 피해자로서는 수년간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다.

8년째 멈춰선 재판도…
피고인의 고의 불출석과 소재 불명으로 인해 재판이 8년간 진행된 사건도 있다. 2018년 기소된 A 씨는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하면서도 '소재불명' 판단을 반복적으로 받았다. 재판부는 소재탐지촉탁, 구인장 발부 등 필요한 조치를 마친 뒤 송달불능보고서를 접수해 6개월 동안 소재를 파악했지만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공시송달을 했고, A 씨는 1회 기일에 출석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재차 공시송달을 했다. 2회차 기일부터는 불출석 재판을 진행할 수 있지만, A 씨는 연락을 취해 2회 기일에는 출석하겠다고 알려 왔다. 벌써 앞선 절차로 8개월 가량이 소요됐으나, A 씨가 다시 나타나면서 재판 중단된 때로부터 다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A 씨가 또 잠적하면서 같은 절차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고 8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이 사건은 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피고인이 외국인인 사건도 많다. 외국인 피고인 B 씨는 선고 기일에 돌연 출석하지 않아 선고가 이뤄지지 못했다. 재판부는 검사에게 주소 보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검찰에서 돌아온 답변은 "중국으로 출국했다"는 것이었다. 피고인이 한국에 있으면 검거되는 경우도 있으나, 검찰에서 미리 출국금지를 해두지 않았다면 그대로 미제(未濟)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밖에 장기미제가 될 뻔 했으나 발부한 구속영장으로 검거돼 피고인이 출석하는 사례도 있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대법원이 공시송달 요건을 엄격하게 보기 때문에, 과거에 법원 출석 이력이 있거나 전화 통화가 가끔 되는 경우에는 소재탐지촉탁 및 불능보고서 접수 이후에도 공시송달을 할 수 없어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말했다. 

실질적 피해회복 될까… 
피고인이 불출석한 채 선고가 내려지는 상황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중견 변호사는 "선고 기일에 나오지 않은 피고인에게 실형이 선고됐을 때 집행이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실질적 피해구제이지 선고가 내려지느냐 여부가 아니라서 이런 경우 피해자의 고통은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중견 변호사도 "피고인의 고의적인 불출석으로 지연되었던 재판이 빨라질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피해자의 피해 구제로까지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변호사는 "피고인이 불출석한 상태에서 선고될 경우 항소 기간을 놓칠 수 있다"고도 했다. 다만, 이 경우 형사소송법에 따라 상소권회복을 청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상 상소 제기기간은 재판을 선고 또는 고지한 날부터 진행되지만(형소법 제343조 제2항), 상소할 수 있는 자는 자기 또는 대리인이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상소 제기기간 내에 상소하지 못한 경우에는 상소권회복을 청구할 수 있다(형소법 제345조).

개정 소촉법 시행되면…
개정법이 시행되면, 앞으로 피고인이 1회 이상 공판기일에 출석한 후 정당한 사유 없이 불출석할 경우, 피고인의 진술 없이 재판을 진행할 수 있게 된다. 또 피고인이 변론종결기일에 출석해 선고기일을 고지받은 후 정당한 사유 없이 선고기일에 불출석한 때에 판결을 선고할 수 있게 된다. 

사형, 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은 적용 대상 범죄에서 제외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사기죄와 보이스피싱 등 법원조직법 제32조 제1항 제3호 각 목의 죄에 해당하는 사건(예외적 단독재판부 관할) 및 위 각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범죄단체조직죄는 법정형과 무관하게 가능하다. 

개정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되며, 시행 당시 법원에서 진행 중인 사건에도 적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