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사진 매일 올려주는 유치원, 과연 좋은 유치원일까요?
과열 경쟁…정작 교육 활동 시간은 빼앗겨

"지난주도 어버이날 준비한다고 카네이션 접기, 효도 쿠폰 만들기 프로그램 하면서 하루 종일 애들 사진을 찍었어요. 소풍같이 행사 많은 날엔 하루에 100장도 찍어요. 반 아이가 10명이라고 사진을 10번만 찍는 게 아니잖아요. 잘 나온 사진으로 올려야 되니까. 안 그러면 '표정이 안 좋다' '우리 애만 눈을 감았다' 민원이 있어서요."(서울 어린이집 교사 A씨)
어린이집, 유치원이 '키즈노트' '학교종이' 같은 알림장 앱으로 학부모에게 아이 사진을 보내는 일은 10여 년 전부터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의사소통이 서툰 미취학 아동의 기관 생활을 보호자에게 보여주자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사진촬영·업로드가 교사의 필수 업무로 굳어지고 기관 간 경쟁이 과열되면서 당초 취지가 퇴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업무 부담이 커지며 정작 교육활동에 쏟아야 할 시간을 뺏기거나 학부모 민원의 온상이 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아서다.
활짝 웃고 있는 아이, 프레임 밖 현실은...

교사들은 '사진 속 활짝 웃는 아이'의 프레임 밖 현실은 전쟁터에 가깝다고 말한다. 학부모 민원 탓에 잘 나온 사진을 올려야 하고 개인 사진은 한 아이도 빠짐없이, 단체 사진은 특정 아이에게 치우치지 않도록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그러나 아이들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법. 충북의 한 병설유치원에서 근무하는 경력 8년 차 교사 B씨는 초임 교사 시절 '애들 사진이 별로다'라는 민원을 몇 번 받고서는 아예 영상을 찍은 뒤 캡처를 해 보낸다.
업무 여건이 상대적으로 낫다고 알려진 국공립유치원도 예외는 없다. 그는 "어린이집에서 매일 사진을 받아 보던 학부모들이 유치원에서도 비슷한 수준을 기대하기 때문에 사진을 안 올리기 어려운 분위기"라며 "빈도의 차이가 있을 뿐 99%의 유치원은 사립과 국공립을 가리지 않고 사진을 보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반 아이들 사진을 올린다.
사진 업무의 결정판은 수료, 졸업 시즌에 만드는 성장 앨범이다. 개인별로 1년간 기관 생활을 담은 앨범인데 일일이 사진을 선택해 앨범을 구성하는 건 오롯이 교사 몫이다.
교사들은 사진 서비스가 학부모 사이에서 '좋은 유치원'의 기준처럼 인식되면서 관련 업무 부담이 커졌다고 토로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원아모집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기관에서 학부모 입소문을 의식해 사진을 더 자주, 더 많이 올리는 계기가 됐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2020년 3~5세 유치원 학령인구는 125만7,000명에서 2025년 82만3,000명으로 5년 만에 34.5% 줄었다.
"사진 잘 나오는 화려한 활동 치중... 비교육적"

사진 찍기가 유아 보육·교육기관의 핵심 업무가 되면서 정작 내실 있는 교육활동이 위축된다는 점은 가장 큰 부작용이다. 돌봄과 교육보다 사진이 잘 나오는 보여주기식 활동을 우선하는 주객전도가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수도권에서 10년 넘게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두루 거친 교사 A씨는 "만들기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는데 부모에게 그 아이만 사진이 없다고 하면 부모가 어떻게 받아들이겠냐"며 "억지로 시키거나 다른 아이 작품 사진을 들고 찍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흥미를 존중해 참여를 안 하게 해도 되고 활동 뒤 자유롭게 놀 시간도 줘야 하는데 한 명도 빠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완성을 재촉하거나 줄 세워 사진을 찍게 된다"며 "사진 찍을 시간에 아이와 말 한마디 더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교육적으로 훨씬 의미 있지만 그렇게 못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교사 B씨도 "동요 수업이나 독서처럼 정적인 활동은 사진으로 보여주기 어렵다"며 "사진 때문에 결과물이 남는 만들기 활동이나 화려한 프로그램 위주로 구성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학부모들부터 유아 보육·교육기관을 '서비스 기관'처럼 바라보는 인식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유치원 교사인 김원배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정책연구국장은 "교사와 아이 모두 안전하고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단체 사진 정도를 공유하는 수준이면 충분하다"며 "지금은 교사에게 사진을 찍지 않을 선택권이 사실상 없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사가 사진 촬영에 몰두할수록 아이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은 줄어든다는 점을 인식해야 이런 문화가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창현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교사의 사진 업무가 교육활동을 증명하기 위한 노동으로 변질된 측면이 있다"며 "교사, 기관장, 학부모가 함께 논의해 관련 업무를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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