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조 벌 때도 81조 투자한 삼성… ’15% 성과급‘ 주면 이런 투자 어렵다

삼성전자 노사(勞使) 갈등의 핵심은 매년 직원들에게 나눠주는 성과급 재원(財源)을 제도화할지 여부다. 전례 없는 반도체 호황에 삼성전자 영업이익의 94%(1분기 기준)가 반도체 사업부에서 나온 만큼, 통상 수준을 뛰어넘는 성과급 지급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노사 간 이견은 없다. 하지만 회사는 예견된 불황에 대비해 현재 성과의 일정 부분을 쌓아두는 유연한 성과급 제도를 주장한다. 반면 노조는 미래의 일정 부분을 희생하더라도 ‘현금 잔치’의 고정화를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인공지능(AI) 수혜 기업의 초과 이윤 일부를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국민 배당금’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AI·반도체 호황이 만든 기업의 초과 이익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만큼 나눌 것인지에 대해 또 하나의 논란거리를 던진 셈이다.
◇미래 투자 대비 vs 현금 잔치
노조 요구대로라면 올해 300조원 영업이익 달성이 예상되는 삼성전자는 45조원을 성과급 재원으로 떼어내야 한다. 삼성전자 임직원 평균 연봉과 반도체 부문(DS) 초과 이익 성과급(OPI) 비율(연봉의 47%) 등을 고려하면 지난해 전체 성과급 규모는 4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성과급 재원이 1년 만에 11배 증가하는 것이다.
사측이 ‘영업이익의 ○○%’ 성과급 제도화라는 노조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불황과 호황을 오가는 메모리 사업의 특성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올해 연구·개발(R&D)과 시설 투자(CAPEX)에 100조원 넘게 투자할 계획이다. 노조가 요구하는 45조원 성과급을 빼더라도 255조원이 남으니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반도체 업계는 현재 메모리 호황 사이클이 2029년부터 하락세로 전환하고, 전례 없는 호황이었던 만큼 불황의 골도 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3년 뒤 닥칠 메모리 겨울을 대비하려면 곳간에 식량(현금)을 쌓아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영업이익 규모와 무관하게 꾸준한 투자를 이어왔다. 현재 삼성전자를 있게 한 생존 전략이다. 본지가 메모리 초호황을 기록했던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9년간 삼성전자 투자를 분석해보니 누적 영업이익은 354조1800억원, 누적 투자액(연구개발 및 시설 투자)은 622조8800억원이었다. 투자액 중 시설 투자(CAPEX)만 놓고 보면 398조9000억원으로 영업이익보다 많았다. 연도별로 벌어들인 돈보다 투자를 적게 한 해는 반도체 경기가 초호황이었던 2018년이 유일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절 반도체 업황이 극심한 침체를 보였던 2023년엔 영업이익(6조5700억원)의 12배가 넘는 81조4400억원을 투자했다. 호황기에 벌어들인 현금을 비축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불황 때 과감한 투자가 지금의 삼성 반도체 호황을 만들었다”고 했다.
첨단 반도체 기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장비는 비싸지고, 팹(공장) 건설비는 수 배씩 증가하는 게 현실이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회사 ASML의 최신형 EUV 장비인 ‘하이 뉴메리컬어퍼처(High-NA)’는 개당 4억달러(약 5965억원) 수준인데, 전 세대보다 2배 오른 가격이다. 이마저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 부르는 게 값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SK하이닉스가 용인에 짓는 반도체 클러스터와 관련해 최태원 SK회장은 지난해 말 “애초 128조원 투자를 계획했지만 600조원 정도가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투자비가 예상보다 5배 급등한 배경에는 클린룸 면적을 1.5배 늘린 점도 있지만, 건설비의 가파른 상승 탓이 크다.

◇성과급 차별에 인재 엑소더스도
성과급 갈등은 투자·재무 리스크를 키우는 동시에 종합반도체 기업으로서 삼성전자의 경영 전략과 글로벌 경쟁력을 흔들고, 인재 엑소더스(대탈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DS) 내부에선 ‘비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LSI) 차별론’이 커지고 있다. 비메모리 부문은 메모리 업황이 나쁠 때도 안정적인 매출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회사가 적극적으로 키우는 분야다. 현재는 적자 사업이지만 AI 시대에 맞춤형 반도체, 첨단 패키징 등 고부가가치 사업 수주를 통한 든든한 캐시카우(현금 창출)가 될 거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하지만 노조 요구대로라면 메모리 소속 직원은 1인당 약 7억원, 비메모리 소속 직원은 1인당 4억원 수준으로 성과급 차이가 3억원 정도 날 수 있다. 사측은 비메모리 부문이 아직은 분기당 1조원 규모의 대형 적자를 내는 만큼, 최대 연봉의 75%(약 7500만원) 상한으로 성과급을 지급하는 안을 제시하고 있다. 두 부서의 실제 성과급 격차는 훨씬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 비메모리 사업부 직원 A씨는 “직원 사기 진작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에 박탈감 때문에 다들 일이 손에 안 잡힌다는 반응”이라며 “회사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메모리에서 팀을 옮겼는데 성과급 차별이 너무 억울해서 이직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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