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한미관계의 균열, 심상치 않다

천영우 前 청와대 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2026. 5. 1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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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견제 美에 맡기곤
사과 요구한 국방부
통일부도 거듭 신뢰 훼손
‘자중지란’ 빠진 외교안보
이러고 원자력 협력 바라나
대통령이 기강 바로잡아야
안규백(왼쪽)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이 11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인근 국방부 청사에서 회담에 앞서 양국 국가연주 등 의식에 참석하고 있다. 전작권 전환과 원자력 잠수함 건조 협력, 미국이 요청하는 호르무즈 해협 통항 재개 기여 등 민감한 현안이 회담 테이블에 오른 것으로 관측된다.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자중지란(自中之亂)에 빠져있고, 한미관계에는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출발은 좋았고 총론적 틀과 방향에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와 북한·러시아·중국 3자간 전략적 밀착이 대한민국의 안보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엄중한 도전으로 다가온 현실에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베팅한 것은 현명한 결단이었다. 이 대통령이 워싱턴을 방문하기 전에 도쿄부터 간 것도 한일관계 악화를 우려하는 미국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한미동맹의 토대를 다진 신의 한 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안보 팀 내에서 큰 틀의 정책 목표와 국익에 반하는 돌출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사건은 지난 2월 중순 주한 미군 전투기 10여대가 서해 상공에서 훈련 중 중국 전투기와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한 데 대해 한국 국방부가 주한미군에 항의한 일이다. 당시 워싱턴 현지에서 감지한 미 국방부의 격앙된 분위기로 보아 미국이 입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다. 미국 조야에는 한국 진보 진영 일각의 친중 성향에 대한 우려와 함께 미·중 전략적 경쟁에서 한국이 동맹의 편에 설 것인지에 대한 뿌리 깊은 의구심이 남아 있다. 이 사건은 미국의 의구심을 더욱 키우고 동맹으로서 한국에 대한 신뢰를 손상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중국은 그간 한중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이 겹치는 잠정조치수역(PMZ)에 금지된 구조물을 설치하고, 중국 군함이 우리 해군의 작전 해역을 수시로 침범하는 등 서해를 사실상 중국의 내해로 만들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는데도 우리 해·공군과 해경은 비례적 대응 없이 수수방관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서해 침탈을 견제하는 데 필요한 훈련을 미국이 대신해 주었다면 우리 정부가 응당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도리어 이에 항의하고 사과를 요구했다면 미국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것이다.

이 사건에 앞서 통일부가 민간인의 비무장지대 출입 승인권을 주장하고 여당 일각에서 이를 위한 ‘DMZ법’ 제정을 추진하면서 유엔군사령부와 정면 충돌한 촌극이 있었다. 정전협정 제1조 8항에 의하면 누구든 유엔군사령관의 승인 없이는 동 사령관의 군사적 통제(military control)하에 있는 남측 비무장지대에 들어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군사분계선(MDL) 남측 DMZ에 대한 주권은 당연히 한국이 갖고 있지만 정전협정으로 군사적 통제권을 유엔사령관에게 부여한 것이다. 지난 73년간 한반도 평화 유지에 근간이 되어 온 정전체제에 당장 고쳐야 할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치 유엔사가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원흉인 것처럼 적대시하고 멀쩡한 DMZ의 현상을 변경하여 무엇을 얻겠다는 것인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34회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통일부장관(정동영) 해임건의안 관련 5분 자유발언을 하고 있는 김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민의힘 간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3월 국회 외통위에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소재지로 ‘평안북도 구성’을 언급한 것도 한미관계에 새로운 갈등 요소를 추가한 경솔하고 무책임한 처사였다. 민간 연구소가 이미 공개한 것이라도 현직 장관이 추측에 불과한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초보적 자질의 문제다. 정 장관의 ‘정보 유출’에 대해 미국이 대북 정보 공유 제한 조치로 대응한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과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다.

두 차례의 한미 정상회담을 거쳐 작년 11월 타결된 경제·안보 패키지 딜에서 정부는 3500억달러의 대미 투자, 250억달러어치의 미국산 무기 구매, 330억달러의 주한 미군 주둔 비용 지원 등 약탈적 부담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한국의 원자력 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사용후 원전 연료 재처리에 대한 미국의 협조 약속을 받아냈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원자력 협력을 위한 실무 협의에도 불응하고 있다고 한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시인했듯이 이러한 한미관계는 정상이 아니다. 대미 투자 약속 이행이 지연되고 ‘쿠팡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일부 안보 부처 장관들의 언행이 정상 간 합의 정신을 훼손한 몫도 적지 않을 것이다.

동맹국 간에도 크고 작은 이견과 갈등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갈등을 막후에서 조용히 해결하지 못하고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문제다. 안보 관련 사안의 대외적 메시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통해 조율되어야 한다. 정치인 장관들이 더 큰 국익과 정책 목표를 해치는 일이 없도록 대통령이 나서서 안보팀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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