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오스크 앞에서 마음 졸였는데…이제 남들에게 조작법 알려줘”[희망이음 함께하는 내일]

김세훈 기자 2026. 5. 12.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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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삼성 공동 캠페인
삼성 시니어 디지털 아카데미
체험존 운영하는 에스원
기차표 구매는 이렇게 정해린 에스원 사장이 지난 11일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 동대문센터의 ‘삼성 시니어 디지털 아카데미(SSDA) 상설체험존’을 방문한 어르신들에게 기차표 구매 때 무인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에스원 제공

음식 주문·ATM·기차표 예매 등
동행플라자에서 맞춤·반복학습
‘코치 교육’ 받은 뒤 도움의 손길
접근성 높고 언제나 열려있어
디지털 범죄 피해 예방 교육도

지난 11일 오후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 동대문센터. 햄버거 주문 키오스크 앞에 선 김주석씨(81)가 버튼을 하나씩 눌렀다. 치킨버거와 오렌지주스, 감자튀김이 금세 장바구니에 담겼다. 하지만 포장·할인·결제 방식이 한 화면에 나타나자 거침없던 김씨의 손놀림이 멈칫했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디지털 코치’(디지털 전문강사) 조분숙씨(72)가 손가락으로 버튼을 하나씩 가리키며 설명했다. 김씨는 도움을 받아 결제를 마친 후 옆에 있는 코레일 예매 키오스크와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차례로 이용했다.

김씨는 “과정마다 헷갈리는 부분이 한 군데씩 있었는데 옆에서 도와주니 바로바로 진행할 수 있었다”며 “조만간 논산에 갈 때 KTX 예매는 내 힘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은 삼성 계열사 에스원이 서울시와 민관협력으로 조성한 ‘희망이음-삼성 시니어 디지털 아카데미(SSDA) 상설체험존’이다. 패스트푸드점 주문·은행 ATM·기차표 예매·지하철 물품보관함 등을 실제처럼 체험해볼 수 있는 무인기기가 놓여 있다.

에스원은 동행플라자를 방문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이곳에서 무상 실습을 제공한다. 스마트폰 과의존 및 딥페이크 예방 관련 동영상 교육도 함께 받을 수 있다. 체험존 한쪽에는 인공지능(AI) 스피커를 탑재한 스마트 로봇 체험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교육은 기본과정과 심화과정으로 나뉜다. 기본과정은 스마트폰 사용법·모바일 쇼핑·모바일 금융거래·예약 방법 등을 알려준다. 보이스피싱과 스미싱 등 디지털 범죄 피해 예방교육도 함께 이뤄진다. 디지털 코치의 일대일 맞춤교육과 체험존을 활용한 반복학습이 핵심이다.

심화과정은 단순히 디지털 기기 이용을 넘어 다른 사람에게 사용법을 가르칠 코치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이날 ‘디지털 코치’로 일한 조씨도 지난 2월부터 두 달간 일주일에 3번씩 코치교육을 받고 코치 역할을 하게 됐다. 어르신들의 이해 속도에 맞춰 화면 구성을 설명하고, 단계별 조작 방법을 안내하는 것이 조씨의 주 업무다.

조씨도 한때 ‘디지털 소외층’이었다. 혼자 영화관을 방문해 키오스크로 팝콘을 사 먹으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 이후로 키오스크 앞에 설 때는 뒤에 사람이 있는지 의식하곤 했다. 누구도 조씨에게 핀잔을 주진 않았지만 괜히 심장이 쿵쾅거렸다. SSDA 교육을 받고 난 뒤로 조씨는 능숙하게 키오스크를 다룬다고 했다.

조씨는 “얼마 전에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볼 때는 혼자 키오스크로 팝콘을 사 먹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마음 졸이던 내가 이제는 남들에게 조작법을 알려주고 있다”면서 “한 번 배우고는 모르겠다며 2~3번씩 오는 사람도 많다. 여러 번 하다 보면 90대 어르신들도 나중에는 혼자서 척척 해낸다”고 말했다.

센터에서 배운 지식으로 새로운 일을 찾아나서는 사람들도 있다. 일주일에 2~3번씩 센터를 찾는다는 이강대씨(65)는 수업을 받은 후 서울 남부터미널에 ‘디지털 동행파트너’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자신처럼 키오스크 예매를 어려워하는 이들을 돕는 일이다.

이씨는 “이전에는 키오스크나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를 보면 ‘나는 나이가 들었으니 조작이 어렵겠지’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교육을 받고 자신감이 생기니 요즘은 카카오톡도 자주 쓰고, 디지털 안내 자원봉사도 여러 개 신청했다. 앞으로 이런 공간이 더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에스원 관계자는 “지하철 사물함 기기 사용법을 익힌 후 인천공항과 도심 간 택배를 나르는 ‘실버택배’ 일을 하러 가시는 분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사회로 전환이 빨라지면서 고령층과 일반인 간 ‘디지털 격차’도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71.8%였다. 최근 음식 주문·병원 접수·약국 처방 등이 모두 디지털 기반으로 바뀌면서 디지털 기기 활용 격차가 생활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스원은 SSDA 교육을 통해 디지털 격차를 해소, 어르신들의 일상 접근성을 높이려고 한다.

정해린 에스원 사장은 “어르신마다 디지털 기기 활용 수준이 다른 만큼 개인 눈높이에 맞춘 교육과 반복체험이 중요하다”며 “체험센터가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어르신들이 직접 배우고 자신감을 얻는 공간으로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SSDA 상설체험존도 어르신들의 접근성을 고려해 마련됐다. 체험존이 자리 잡은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는 지난 3월 문을 연 신설기관이다.

지하철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고, 깔끔한 내부 환경과 스마트 운동기구 등 다른 체험존이 함께 있어 어르신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에스원은 전했다. 덕분에 다른 시설을 이용하다가 키오스크 사용법을 연습하러 오는 어르신들도 있다.

기존 팝업형 체험센터는 기간을 정해 운영되는 한계가 있었지만 이곳은 어르신이 필요할 때마다 찾아와 학습할 수 있는 거점으로 역할이 확장된 모습이다. 교육을 마친 뒤에도 서로 스마트폰 사용법을 묻거나 키오스크 이용 경험을 공유하는 등 ‘만남의 장’으로도 활용된다는 것이 센터 측 설명이다.

이준연 서울디지털동행플라자 동대문센터장은 “상설체험존은 경로당이나 사회단체 쪽에서 20~30명 단위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자녀분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찾아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에스원은 서울·인천·경기·호남을 중심으로 운영해온 시니어 디지털 아카데미를 올해 부산 지역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3월 부산에서 기본 교육과정을 진행한 데 이어 이달 말에는 팝업 체험센터도 연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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