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반도체 심장으로 한국이 뛴다
IT수출 규모, 에너지 가격 압도
골드만삭스 “사상최강 사이클”
삼전닉스 영업이익 57조·38조
노조 리스크發 연쇄 타격 우려
공급신뢰 하락, 비가역적 손실

한국이 인공지능(AI)발 반도체 초호황에 힘입어 사실상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세계 1위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 1분기 이후 16년 만에 처음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앞세운 역대급 반도체 수출이 무역·경상수지 흑자로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를 견인한 덕분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반도체가 없었다면 한국 경제가 지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남긴다.
12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1분기 GDP 성장률은 1.694%로, 전날까지 속보치를 발표한 22개국 중 단연 1위다.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이어온 인도네시아(1.367%)와 중국(1.3%)을 큰 폭으로 제쳤다. 1분기 경제가 1% 이상 성장한 것은 3개국뿐이었다.
핀란드(0.861%), 헝가리(0.805%), 스페인(0.614%), 에스토니아(0.581%), 미국(0.494%), 캐나다(0.4%), 독일(0.334%) 등이 뒤를 이었고, 프랑스(-0.005%), 스웨덴(-0.21%), 리투아니아(-0.444%), 멕시코(-0.8%) 등은 역성장했다. 아일랜드는 -2.014%로 2% 넘는 감소세를 보였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4분기만 해도 -0.161% 역성장을 기록하며 주요 41개국 중 38위까지 밀렸지만, 불과 한 분기 만에 순위가 급반등했다.
특이한 변수가 없는 한 주요국 가운데 1분기 경제성장률 1위 달성은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직전 1위를 했던 2010년 초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이 되살아나면서 반도체,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수출이 빠르게 반등하던 시기였다.
성장의 핵심은 수출 회복, 특히 반도체였다. 1분기 전체 수출은 정보기술(IT) 품목을 중심으로 5.1% 증가했으며, 순수출(수출-수입)의 성장 기여도는 1.1%포인트(p)에 달했다.
반도체 업황 개선 속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57조2000억원, 37조6000억원 규모의 실적을 기록하며 성장률을 끌어올렸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도 한국이 AI 호황에 힘입은 반도체 수출 급증으로 대만과 함께 사상 최대 경상수지 흑자를 거둘 것으로 내다봤다.
앤드루 틸턴이 이끄는 골드만삭스 이코노미스트들은 기술 수출 급증으로 이른바 ‘AI 주도 초대형 흑자(AI-driven super surplus)’가 올해 한국 GDP의 10%, 대만 GDP의 20%를 각각 웃돌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비(非)기술 수출은 역내 공급 과잉과 에너지 충격으로 부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양국의 높은 중동산 에너지 수입 의존도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흑자 기조는 지속될 것으로 봤다.
이들은 “이번 AI 붐은 한국과 대만에 있어 사상 최강의 기술 사이클”이라며 “다양한 유가 하락 시나리오에서도 반도체 수출 규모와 성장세가 에너지 가격 경로를 완전히 압도하기 때문에 반도체·에너지 수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밝혔다.
골드만삭스는 한국 경제성장률이 2025년 1.0%에서 올해 2.5%로 반등하고, 대만도 지난해 8.7%에서 올해 10%에 육박하는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기술 붐이 성장 변동성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골드만삭스는 이 같은 성장으로 인해 양국 중앙은행이 올해 금리를 올릴 압력도 커지고 있다고 전망했다.
이 밖에도 모건 스탠리의 홍콩 담당 수석 아시아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히야는 최근 AI 붐 등에 힘입어 아시아가 산업 슈퍼사이클에 진입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주요 기관들도 성장률 전망을 잇달아 상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 제시한 1분기 성장 전망치 0.9%를 크게 웃돈 결과가 나오면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2.8%로 0.7%포인트 높였다.
다만 2분기 이후 흐름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 통상 전 분기 성장률이 높을 경우 기저효과로 인해 다음 분기 성장률이 둔화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달 23일 “2분기에는 1분기 큰 폭 성장에 따른 기저효과와 중동 전쟁 영향 본격화 등이 중첩되며 전기 대비로는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2024년 1분기에도 1.174%로 당시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성장률이 나왔다가 2분기 -0.028%로 고꾸라진 적이 있다.
여기에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노사 구조 변화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노사 합의를 통해 성과급 상한제를 폐지하고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체계를 확정했다.
기존에는 성과급이 연간 기본급의 최대 1000% 수준으로 제한됐으나, 상한을 없애고 성과와 연동되는 구조로 개편한 것이다.
또 일부 성과급을 이연 지급하는 방식으로 장기 성과와 보상을 연결하며 제도 안정성을 높였다. 해당 합의는 10년간 유지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성과급 논란을 제도적으로 정리한 사례로 평가된다.
SK하이닉스 노사가 전례없는 파격적인 합의안을 도출하면서 삼성전자 노조 역시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송헌재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파업이 발생하면 생산 라인 중단에 따른 단기 손실이 먼저 나타나지만, 이후 고객사의 공급 안정성 의심, 대체 공급처 검토, 주문 이탈, 선제 투자 지연, 기술 격차 확대, 협력사 연쇄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단기 손실은 협상으로 복구 가능하지만, 신뢰와 시장 구조의 변화는 비가역적 비용으로 남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상현 기자 ishs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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