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전심] 원없이 실패할 기회를 달라

"중학생 때부터 준비했던 개발자의 꿈을 이뤘지만"
코딩 붐 시절 10대였던 지금의 2030세대들은 개발자를 꿈꿨고, 꿈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AI가 이렇게나 빨리 많은 것을 바꿔놓을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비단 기술 분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20·30대 청년이 171만 명이다. 실업자 44만 5천 명, 구직조차 포기한 '쉬었음' 청년 72만 명, 취업준비생 54만 명. 청년 고용률은 23개월째 하락해 올해 1분기에는 43.5%까지 떨어졌다. 단순히 일자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일을 시작할 기회조차 막혀 있는 것이다.
배경엔 구조적 변화가 있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작년 순수 신입만 뽑겠다는 기업은 2.6%에 불과했고, 경력직만 원하는 기업은 82%에 달했다. 신입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AI까지 가세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챗GPT 출시 이후 회계·경리, 상담원 등 AI 고노출 직무에서 청년 고용이 감소하는 흐름이 포착됐다고 분석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이를 "첫 경력조차 쌓기 어려운 구조"로 진단한다. AI가 일자리만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경력의 첫 단을 통째로 없애고 있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쉬었음'이라는 형태로 쌓이고 있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고등학교 2학년생 1만여 명을 2023년까지 추적한 결과, 청년 5명 중 1명이 노동시장 진입 과정에서 한 번 이상 '쉬었음'을 경험했다. 특히 고졸 청년의 쉬었음 경험률은 29.1%로 대졸 청년의 2.3배에 달했다. 연구진이 강조한 골든타임은 1년이다. 처음 쉬었음을 경험한 청년의 80.6%는 1년 이내 노동시장으로 복귀하지만, 2년이 지나면 복귀 확률은 절반으로 뚝 떨어지고, 3년이 지나면 4분의 1 이하, 4년을 넘기면 7%대로 사실상 공적 개입 없이는 복귀가 어렵다. 구조가 만든 문제는 청년 개인의 시간을 잠식해가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청년뉴딜은 AI·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좋은 일자리 감소, 경력직 선호 심화, 진입 경로 단절이라는 '삼중고'를 구조적 문제로 규정하고 10만 명에게 도약·경험·회복의 출발선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반갑다. 하지만 정책의 성패는 지난 정책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다. 청년에게 단순 행정보조나 단발성 일자리를 권유하면 오히려 반복적 쉬었음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새겨야 한다.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에게 배운다. "어쩌면 가장 두려운 것은 실패보다, 실패한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해 무너지는 내 마음." "원없이 도전하고 원없이 실패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심사위원 입맛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내가 해보고 싶은 걸 실패하더라도 할 거야." 이들이 원하는 것은 성공 보장이 아니다. 실패해도 괜찮은 경험의 기회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구직 청년 1천 명을 조사했더니 취업 준비의 최대 애로사항 1위가 '업무 경험 및 경력개발 기회 부족'(80.7%)이었고, 가장 필요한 지원 역시 '인턴 또는 일경험'이었다. 청년들은 도움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자기 방식으로 경험할 기회를 달라고 하는 것이다.
진짜 첫 발판은 청년이 스스로 올라서는 발판이어야 한다. 경기도 청년갭이어는 그 모델에 가장 근접한 사례다. 청년이 원하는 분야에서 직접 프로젝트를 기획하면 전문가 멘토링과 컨설팅이 연결되고, 4~6개월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실패해도 괜찮은 시간을 갖는다. 성과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방향을 찾는 자리다. 참여 청년들이 "미래 설계의 계기가 됐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국가가 설계해준 일자리에 청년을 끼워 맞추는 방식이 아니라, 청년이 상상하고 설계하면 국가가 뒷받침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골든타임은 길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도 청년들은 묻고 있다. 원없이 도전하고, 원없이 실패할 수 있는 기회, 그 첫 발판을 국가가 놓아줄 수 있겠냐고.
기현주 경기도미래세대재단 청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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