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 보는 5·18]③ 한강 '소년이 온다' "어떻게 분수대서 물이.."…80년 5월 실제로 시청에 민원전화 했다

이건상 기자 2026. 5. 12.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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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정지시켜 달라" 한밤중 민원
30일 밤 11시40분 당직자에게
한강 노벨문학상 ‘소년이 온다’에
세차례 걸쳐 도청 분수대 언급
진압군 27일 새벽 점령 후 첫 작업은 분수대
1980년 5월 27일 광주항쟁이 무참히 진압된 이후 전남도청(현 5·18민주광장) 앞 분수대에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 물줄기가 뿜어졌다. 1980년 5월 나경택 전남매일신문 기자 촬영·제공

"분수대에서 물이 나오고 있는 걸 봤는데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떨리던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어떻게 벌써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벌써 그럴 수 있습니까. (3장 일곱개의 뺨 69쪽)

노벨문학상 작품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이 소설에서 유독 옛 전남도청 앞 분수대가 3차례나 나온다. 작가는 왜 분수대를 그리 여러번 강조했을까.

"그녀는 숨을 몰아쉰다.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 "(80쪽)

작가는 다시 분수대에 다가선다.

"방학하는 날까지 그녀는 날마다 정류장 옆 공중전화 부스에서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걸었다. 분수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제발 물을 잠가 주세요" 그녀의 전화 민원에 나이든 여 사무원이 응대를 한다. "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 (97쪽)

광주시 동구 금남로1가 5·18민주광장 분수대는 1971년 제작됐다. 지름 19.3m, 높이 2.32m, 면적은 615㎡(186평) 규모다. 계단형 구조로 옛 전남도청 앞 회전교차로 역할을 수행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들어서면서 분수대 주변은 차 없는 광장으로 탈바꿈했다. 1980년 5·18 당시 분수대는 계엄군의 총칼로 숨진 시신들을 임시 안치했던 공간이었다. 전두환 신군부의 학살이 자행된 18~ 21일 사이에 발생한 시신들을 분수대 주변에 모아 놓았다. 시민과 유가족들이 신원을 확인하도록 한 것.

그러다 보니 분수대 주변은 자연스럽게 진압군의 만행을 규탄하는 장소이자, 유가족의 통곡이 흘렀던 곳이었다.
1980년 5월30일 야간 당직자에게 전화를 걸어 분수대를 정지시켜달라는 민원에 대한 보고 문건(19×27㎝). 국가기록원 제공

한강 작가가 소설에서 3차례나 언급한 '분수대'민원은 소설이 아닌 사실이었다. 1980년 5월 30일 23시 40분 35세 가량의 여자가 광주시청 야간 당직실로 전화를 걸었다.

"지금 우리 광주시민은 그 어느때 보다도 숙연한 자세로 영영들에 넋을 위로해 주어야 할 시점에 전국으로 방송되는 메스컴을 통하여 도청앞 분수대를 화면에 보이며 옛전으로 돌아왔다는 보도를 할적에 한 광주시민으로서 마음 아픈일이였읍니다. 당분간만이라도 도청 앞 분수대를 정지시켜 주시기 바랍니다"

이 민원 전화는 다음날인 31일 시청 공식 결재라인을 통해 보고됐다. 전화를 받았던 당직자는 '시민전화 1980. 5.30. 23:40 의견 : 도청 앞 분수대를 정지시켜달라'는 제목으로 A4용지 크기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기안자인 담당과 계장을 거쳐 과장의 전결서명도 들어 있다.

하지만, 민원인의 애타는 바람과 달리 도청 앞 분수대는 그 해 5월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뿜어냈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그날 광주시청에 전화한 이 여성은 누구일까.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

[보도 이후]
-1980년 5월 전국 지방신문 가운데 유일하게 광주에 4명의 취재팀을 파견했던 부산 국제신문의 취재팀장 김양우(전 국제신문 출판국장)기자는 1996년 광주 취재기를 책으로 남겼다.  '경산도 기자가 쓴 체험적 광주항쟁의 진실'이란 부제가 붙은 [시민군 계엄군](종로서적)으로 이 책  46쪽에 분수대 취재기인 사진설명이 있다. 그대로 옮긴다.

  '1980년 5월27일 오전 도청광주 분수대의 시계가 11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진압 작전이 끝난 직후 계엄군이 맨 처음 손댄 작업은 광장 분수대의 물이 하늘 높이 치솟도록 하는 것이었다. 도청 건물 옥상에서 찍은 이 사진을 보면 수백명이 죽고 다쳤던 광주시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