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대법원 양형위 중대재해법 벌금형 양형기준 제외 비판
다만 벌금형·중대시민재해 양형기준은 제외돼
“벌금형 빠진 기준은 반쪽” 사업주 면죄부 우려
평균 벌금 7000만 원대…“징벌적 벌금형 필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범죄에 대한 독립적인 양형기준 마련에 착수한 가운데, 노동계는 중대재해법 벌금형 양형기준을 제외한 것에 '반쪽 짜리' 기준이 될까 우려하고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지난 11일 제145차 전체회의를 통해 '중대재해 범죄' 양형기준 신설을 의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양형기준이란 법관이 피고인의 형량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판결 가이드라인'을 말한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형사 재판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고자 구체적인 기준을 설정한다.
2022년 1월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사업장 내에서 사람이 1명 이상 숨지면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는 내용이다.
이번에 양형위에서 신설하는 양형기준은 중대재해법 중 중대산업재해치사(6조 1항), 치상(6조 2항) 및 재범 시 가중처벌(6조 3항) 조항이다.
특히 재범 시 형량 상·하한을 모두 1.5배 가중하는 방안 등이 검토되고 있어, 향후 중대재해 발생 기업을 향한 사법적 잣대는 한층 매서워질 전망이다.
다만 법인을 함께 처벌하는 양벌 규정과 벌금형에 대한 양형 기준은 이번에 논의하지 않는다. 중대시민재해 관련 범죄도 아직 처벌 사례가 없어 아직 만들지 않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그간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에서 재판부마다 양형의 편차가 크고, 대다수 사건이 집행유예에 그치는 등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른 응답으로 보인다. 최근 아리셀 참사 2심 감형 등이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중대 재해사고 백서 2025'를 보면, 2025년 기준 중대재해법상 1심 이상 판결은 총 71건 있다. 이중 39건은 판결이 확정됐고, 32건은 재판 진행 중이다.
71건 중 유죄는 91.5%(65건), 무죄는 8.5%(6건)다. 유죄 판결 중 실형 7건, 징역형 집행유예 55건, 벌금 3건이 선고됐다.

2025년 기준 평균 벌금은 약 1억 1140만 원으로 집계됐으나, 고성군 소재 삼강에스앤씨 법인에 20억 원이 부과된 특정 사례를 제외하면 실제 평균은 7280만 원 수준에 그친다.
경남에서 사업주가 처벌받은 사업장은 엠텍·만덕건설·두성산업·한국제강·한화오션·삼강에스앤씨 등 소수다.
한국제강은 2023년 12월 대법원에서 대표이사 징역 1년 실형, 법인 벌금 1억 원을 확정받았다.
양산 소재 자동차 부품업체 엠텍 대표이사는 1심에서 징역 2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실형이 선고된 대표적 사례로 알려졌지만, 2025년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됐다.
그나마 가장 강한 처벌을 받은 사업장은 삼강에스앤씨다. 송무석 삼강에스앤씨 전 대표는 지난해 9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법인은 벌금 20억 원을 선고받았다.
노동계는 아리셀 참사 2심 감형을 들어 중대재해법 낮은 처벌 수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이어오고 있다.
아리셀 참사는 2024년 6월 24일 경기 화성시 리튬전지 제조업체에서 불이 나 노동자 23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1심 재판부는 박순관 아리셀 대표이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으나 지난 22일 항소심 재판부는 징역 4년으로 감형했다.
한국노총은 12일 성명을 내고 대법원 양형기준이 법 취지에 맞게 설정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노총은 "특히 최근 아리셀 공장 화재 사건 항소심에서 박순관 대표의 형량이 1심 징역 15년에서 징역 4년으로 대폭 감형되고, 주요 책임자들 역시 감형 또는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것은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번 양형기준 논의가 징역형 중심으로 추진되고, 벌금형 기준이 제외된 점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처벌법 본질은 기업이 사고 예방에 투자하는 비용보다 사고 발생 시 부담해야 할 경제적 손실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인데, 벌금형 기준이 없다면 기업들은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의 뒤에 숨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김병훈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노동안전보건국장도 "사실상 중대재해법 시행 취지인 징벌적 벌금형이 부과되지 않으면 기업체는 책임 회피에만 계속 몰두할 것"이라며 "또한 법 시행 4년이 지났음에도 오송 지하차도 참사, 창원NC파크 사고 등 중대시민재해 양형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양형위는 앞으로 각 범죄의 구체적인 권고 형량과 가중·감경 요소 등을 정한 뒤 공청회 등을 거쳐 최종 양형 기준을 확정할 예정이다.
/안지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