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장애인’ 김만리 감독이 도망치지 않고 ‘직시한 신체’ [플랫]


나는 신체장애인이란 것에서 도망가지 않기로 선택했다. 여러 감정이 내 안으로 들어올 때 도망가서 쉴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내 주관으로 흡수해 계속해서 생각해나갈 수 있었던 것이 중증장애인으로서의 이점이다. 그 결과로 ‘타이헨(TAIHEN)’의 신체표현이 나왔다.
재일조선인 2세이자 중증장애인 당사자인 김만리 예술감독(73·사진)이 풀어놓은 자신의 성장 과정이다. 12일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과 만난 김 감독은 신체극 <브레인> 공연을 앞둔 소감과 그가 재구성하려 하는 ‘몸의 미학’, 그리고 경계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감독은 1953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의 외할아버지와 어머니, 이모는 모두 조선의 ‘예인’이었다. 김 감독도 ‘저절로 춤을 추었다’고 할 정도로 태생부터 예술에 익숙했으나,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으며 중증장애를 갖게 됐다. 유년기를 장애인 시설에서 보낸 그는 21세 때부터 활동보조를 받으며 자립생활을 시작했고 장애인권운동에도 뛰어들었다.
그는 1983년부터 지금까지 43년 동안 전원 중증장애인으로 구성된 극단 ‘타이헨’을 이끌고 있다. 타이헨의 공연에서 퍼포머들은 장애를 역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관객을 구경거리 삼기도 한다. 퍼포머들의 신체 표현은 단지 낯선 것을 넘어 몸의 의미와 가능성을 묻는다.

김만리 감독은 “<브레인>은 타이헨의 표현적인 방법을 집대성한 작품이다. 그동안 타이헨을 봐온 분들도 매우 놀랄 만큼 신체 표현에 가까워졌다”고 설명했다. <브레인>은 뇌가 신체를 통제하는 중심이 아닌, 다양한 요소와 관계를 맺고 작동하는 존재인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타이헨이 작업해온 ‘신체가 먼저이고 뇌는 그 뒤를 따른다’라는 명제의 확장이다. 많은 신체 기관 중 뇌에 착안한 이유로 그는 “뇌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부정해왔지만, 신체를 말하는 한 뇌를 포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체표현자로서 뇌를 직면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번 공연에서도 김 감독은 뇌를 형상화한 대목에 가장 집중했다. 퍼포머들이 밀착해 하나가 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층을 이뤄가며 뇌를 형상화하고, 하나가 된 상태로 아주 조금씩 움직인 다음 다시 각자의 개체로 흩어져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장애인의 몸과는 다른 신체 장애인의 몸이 모여서 하나가 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신체 장애인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에 온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 장면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 장면에선 몸을 겹쳐야 하기 때문에 퍼포머들 간에 절대적인 신뢰가 필요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몸’이란 무엇일까. 김 감독은 거꾸로 “추함을 확실하게 직시”하면서 발견한 것을 말했다. “왜곡되고, 좌우 비대칭이고, 비틀리고 구부러진, 올곧지 않은 신체가 생명의 역동감을 나타내며 아름답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김 감독은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신체는 훨씬 더 자유롭다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며 장애인·비장애인 할 것 없이 신체를 억압하고 있는데, 사람을 우주의 존재로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체의 근본적 의미와 가치를 바꿔나가는 일을 그는 “인류 역사에 남을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그 자신이 앞으로 계속해서 추구해가야 할 과업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지면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장애인의 신체 표현을 통해 각자가 가진 태아 때의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타이헨의 공연이 신체 표현을 원점으로 되돌리고, 그것을 통해 더 넓은 의미로 신체 감각이 확대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최근 인간의 뇌, 신체의 존재와 관련해 가장 심오한 화두는 인공지능(AI)이다. <브레인>에도 AI에 관한 메시지가 담겼다. 김 감독은 “현대인들은 AI에게 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인간이 AI를 만들어낸 존재라는 사실과 영혼을 잊어버리지 않는 한 AI에게 패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무대 위 가장 큰 희열로 “자아가 없어지는 순간”을 꼽았다. 말 그대로 ‘무아지경’인 몰입과 해방의 상태다. 그는 “정신세계 측면에서 나와 주변의 존재가 없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짧게 지나가며, 무대 위 모두가 느끼는 것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자아라는 것 자체가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아와 존재가 사라지는 순간이 내겐 가장 큰 보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재일조선인이자 중증장애인인 동시에 여성으로서 ‘경계성’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왔다. 그는 타이헨 안팎에서 만나는 젊은이들을 지켜본 결과 “다양성에 대해 더 알려는 욕구를 가진 청년이 많다”고 했다. 그는 “청년들이 자신의 경계성을 피하고 도망가려 하기도 한다. 또 경계성을 개인의, 자신만의 문제로 삼는다”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경계성을 깨뜨리는 경험을 하는 게 필요하다. 진정한 이해는 차이를 알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감독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15년 만이다. 타이헨은 <브레인>을 통해 오는 15일부터 3일 동안 한국 관객과 만난다. 공연이 열리는 모두예술극장에서는 그의 예술 인생을 조명한 연계 전시 ‘디바만리’도 함께 진행된다. 그는 한국 관객이 무엇을 느끼기를 바랄까. “한국에서도 타이헨의 아방가르드적인 면을 찾아낼 수 있길 기대한다. 신체 장애인의 신체 표현을 긍정적으로 인식해 달라고, 감히 말씀드린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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