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급이 갈라 놓은 대기업…이젠 노사 아닌 ‘노노 갈등’

박선강 기자 2026. 5. 1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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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등 부서별·직군별 이해관계 엇갈려
과거 ‘기본급 인상’ 공동 목표 달성 노력 실종
사측 “다양한 이해관계 모두 만족” 숙제 안아
지난달 23일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에서 열린 투쟁 결의대회. 연합뉴스

삼성전자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불거진 성과급 산정 방식 논란이 이제는 일시적인 갈등을 넘어 산업계 전반의 고질적인 '노노(勞勞) 갈등'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노동자들이 '기본급 인상'이라는 공동 목표 아래 뭉쳤다면, 이제는 한정된 성과 보상을 두고 부서별·직군별·노조별 이해관계가 엇갈리며 내부 갈등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이런 갈등은 새로운 경영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 명확한 성과급 기준 제시 요구 받아
1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산업계 전반에서 나타나는 노노 갈등과 성과급 기준 공개 요구는 몇 년 전부터 이어진 변화가 누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2021년 SK하이닉스에서 불거진 성과급(PS) 산정 방식 논란과, 2024년 상반기 삼성전자 창사 이후 처음 발생한 대규모 파업·초기업노조 출범은 단순한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노동 환경 변화의 시작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기업들은 '경제적 부가가치(EVA)' 같은 복잡한 기준보다 실제 회사 실적과 연결된 명확한 성과급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특히 공정성과 합리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대가 기업의 핵심 실무진으로 자리 잡으면서, 납득하기 어려운 보상 체계에 대한 불만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업이 이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파업이나 내부 갈등은 물론, 핵심 인재가 경쟁사로 이탈하는 상황도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커지는 부서별 위화감…노조 간 대립도
최근 기업들이 더 부담을 느끼는 것은 전통적인 노사 갈등보다 직원들 내부에서 벌어지는 '노노 갈등'이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사업부별 실적 차이에 따른 성과급 격차가 꼽힌다.

반도체(DS)와 모바일·가전(DX)처럼 여러 사업부를 운영하는 대기업의 경우, 한 해 실적에 따라 부서별 성과급 규모가 크게 달라진다. 이 때문에 "회사 전체 성과에 함께 기여했는데도 어느 부서에 속했느냐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의 2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에서는 반도체 사업부(DS) 중심의 성과급 문제에만 집중하고, 완제품 사업부(DX) 조합원 요구는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1대 노조인 초기업노조에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여기에 3대 노조인 삼성전자 동행노조도 공동교섭단에서 이탈하는 등 노노 갈등이 심화되는 분위기다.

이 같은 상대적 박탈감은 기존 대형 노조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고, 결국 특정 직군이나 사업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소규모 노조들이 잇따라 등장하는 배경이 됐다.

문제는 한 회사 안에서 여러 노조가 교섭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면서, 노조 간 갈등이 오히려 사측과의 협상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사측 "여러 노조 요구 동시에 조율해야"
노조가 사업부·직군별로 점점 세분화되면서 기업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첨단 산업 분야에서는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규모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실적이 좋을 때 발생한 이익을 성과급으로 모두 지급하기보다, 미래 투자 재원으로 일부 남겨둘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과거처럼 단일 노조와 회사가 합의하면 갈등이 마무리되던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제는 사업부와 직군별로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노조의 요구를 동시에 조율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단일 노조와 사측 양측의 합의만 이끌어내면 갈등이 봉합됐지만, 이제는 부서와 직군별로 쪼개진 노조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첩첩산중의 상황"이라며 "기업들이 과거의 하향식 통보에서 벗어나 투명한 보상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과정에서 겪는 진통은 앞으로도 한국 기업 문화의 상수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