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만 보내도 트래블룰? 특금법 개정안에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울 판”

안갑성 기자(ksahn@mk.co.kr) 2026. 5. 1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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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국회 개정 특금법 시행령 관련 세미나
美, 발행자에 ‘동결·소각’ 통제 의무화
韓 특금법, 트래블룰 등 글로벌 기준 역행
“과도한 규제가 되레 자금세탁 사각지대 키워”
12일 국회에서 열린 스테이블코인 및 특금법 정비 과제 세미나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 [사진=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미국이 스테이블코인 관련 입법(지니어스 법·GENIUS Act)을 통해 ‘디지털 달러’ 패권을 글로벌 자본시장으로 확장하려는 가운데 한국은 글로벌 표준에 역행하는 과도한 규제로 자국 내 가상자산 자본의 해외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2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는 민병덕·박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MRI(Monetary Research & Initiatives)가 주관한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AML 규율체계와 한국 특정금융정보법 정비 과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는 가상자산 업계 및 법조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최근 입법예고된 금융위원회의 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시장에 미칠 파장과 미국의 최신 규제 동향을 심도 있게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규제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글로벌 확산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한편 한국 특금법 개정안은 글로벌 정합성보다 앞선 규제 강도로 오히려 이용자와 사업자를 국경 밖으로 밀어내는 역설을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12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3간담회실에서 열린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AML 규율체계와 한국 특금법 정비 과제’ 세미나에서 공동 주최자인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개회사를 통해 민병덕 의원은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글로벌 결제·송금·정산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되면 한국은 디지털 환경에서 원화 공간이 줄어드는 현실과 마주하게 될 수 있다”면서 “이는 산업 경쟁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통화주권의 문제”라고 경고했다.

이어서 신장식 의원은 “한국 제도는 여전히 거래소 중심 규율에 머물러 있고, 발행자·지갑사업자·해외 가상자산사업자(VASP) 등 다양한 주체에 대한 기능별 책임 구조가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다”며 국내 제도 정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美, 스테이블코인 발행자를 글로벌 통제 거점으로
미국 금융범죄단속국(FinCEN)과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스테이블코인 1·2차 시장별 자금세탁방지(AML) 의무 적용 비교표. [자료=엑스크립톤]
첫 발제자로 나선 김종승 MRI 대표는 최근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국(FinCEN)과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공동 발표한 제안규칙(NPRM)을 집중 분석했다.

김 대표는 “미국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민간 실험이 아닌 글로벌 자금 흐름을 통제할 전략적 수단으로 보고 있다”며, 지니어스 법안 체제하에서 허가받은 결제 스테이블코인 발행자(PPSI)에게 강력한 자금세탁방지(AML) 및 제재준수 프로그램(SCP) 의무가 부과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술적 통제 능력’의 의무화다. 미국은 1차 시장(직접 발행·상환)뿐만 아니라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한 2차 시장 유통 과정에서도 위법 거래를 차단·동결·거부하고, 합법적 명령에 따라 자산을 압류·소각할 수 있는 기술적 인프라를 발행 시점부터 갖추도록 강제하고 있다.

PPSI가 직접 당사자로 참여하는 1차시장(발행·환전·상환)에는 SAR 보고·AML 모니터링 의무가 집중 적용된다. 반면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서만 관여하는 2차시장 거래(개인 간 P2P, 탈중앙 거래소 활용)에는 일반 SAR 보고 의무가 부과되지 않는다.

그러나 차단·동결·거부 기술 능력과 합법명령(lawful order) 대응 의무는 1차·2차 시장 전체에 적용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NPRM 최종 규칙은 발령일로부터 12개월 후 시행이 제안되며, 의견 제출 기한은 2026년 6월 9일까지다.

합법명령이란 법원이나 연방기관이 스테이블코인의 압류·동결·소각·이전금지를 요구하는 명령으로, PPSI는 이 명령을 이행할 기술적 능력을 발행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이 비대칭 설계는 한편으로 PPSI에게 2차시장을 모니터링하도록 요구하지 않지만, 다른 한편 OFAC 제재 대상자가 2차시장 스마트 컨트랙트에서 거래하는 것을 차단하고 동결 자산을 압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PPSI가 실무적으로 방어 가능한 2차시장 거래 모니터링 접근법을 확립해야 하는 책임성을 부여한다.

OFAC 역시 경영진의 약속, 위험평가, 내부통제, 감사, 교육으로 구성된 SCP 5요소를 미국 법령 사상 최초로 규정 본문에 명문화하며 스테이블코인 전 생애주기에 걸친 강력한 통제망을 구축했다.

◆ 韓 특금법 개정안, 글로벌 스탠더드 역행 논란
주요국과 한국의 트래블룰 및 개인지갑 규제 비교표. 한국의 특금법 개정안은 100만원 기준 금액을 폐지하고 수취사업자에게 거래거절 의무를 부과하는 등 글로벌 표준(FATF 권고안)에 비해 과도하게 엄격한 것으로 평가된다. [자료=법무법인 광장]
반면, 한국의 규제 방향은 산업의 현실과 국제적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졌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한서희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최근 입법 예고된 특금법 시행령 및 감독규정 개정안을 규제 차익과 이용자 편익 관점에서 조명했다.

한 변호사는 “개정안에 따라 2027년부터 트래블룰 기준금액(100만원)이 전면 폐지되고, 외국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위험평가 의무, 비수탁형 개인지갑 거래 제한 조치 등이 시행되면 국내 시장은 고립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가액이나 수량에 무관하게 모든 가상자산 이전거래에 송신 가상자산사업자의 정보제공 의무가 부과된다. 국내 가상자산 이전거래 건수의 60%가 100만원 미만인 상황에서 모든 이전거래를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업계에서 규제 수준과 실무 부담이 과도하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FATF(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 권고안이나 미국, EU(MiCA),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어디에서도 채택하지 않은 ‘일률적 거래거절 의무’와 ‘개인지갑 통제’를 한국만 유일하게 강제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FATF는 1000달러 또는 1000유로를 권고 임계치로 제시하고, 미국 FinCEN의 기준은 3000달러다. EU는 가상자산서비스제공자(CASP) 간 거래에는 임계치가 없지만 자기보관 주소와의 거래는 1000유로 이상일 때만 소유권 검증을 요구한다.

싱가포르는 1500싱가포르달러를 기준으로 차등 적용하며 일본만 임계치 없이 모든 거래에 트래블룰을 적용하지만 자기보관 지갑 검증의무는 부과하지 않는다. 한국(개정안 기준)만이 기준금액 ‘0원’과 자동 STR, 거래거절 의무를 동시에 적용하는 전 세계 유일 규율 체계를 갖추게 된다.

12일 세미나에서 발표된 ‘자동 STR의 역설’ 자료. 특금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규제 부담을 느낀 투자자들이 국내 거래소를 이탈해 해외 거래소나 디파이(DeFi)로 직접 이주하면서 국내 과세 당국과 금융당국의 통제력이 사실상 상실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자료=법무법인 광장]
특히 1000만원 이상 거래 시 자동 의심거래보고(STR) 대상이 되는 조항은 이용자 편익을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크다.

개정안은 외국 가상자산사업자와의 거래에 대해 4단계 조치를 의무화한다. ① 외국 사업자의 AML 수준 평가, ② 위험 낮음→허용, 위험 높음→거래금지, ③ 1000만원 이상 이전거래는 FIU에 의심거래보고 자동 부과, ④ 거래 모니터링 강화. 비수탁형 개인지갑에 대해서는 고객과 이전거래 상대방이 동일한 경우에만 거래를 허용한다.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DAXA)가 개정안 기준을 적용해 5대 원화거래소의 지난해 STR 예상 건수를 집계한 결과 544만5133건에 달했다. 기존 6만3408건 대비 8487% 급증한 수치다. 건별 검토와 보고서 작성, 내부 승인 절차가 필요한 STR 특성상 사업자의 실무 부담은 사실상 한계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가령 국내 거래소에서 1억 5000만원 상당의 비트코인 1개를 이전하려면 STR에 따른 지연을 피하기 위해 990만원 단위로 약 15회에 걸쳐 분할 송금해야 하는 촌극이 벌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가스비(네트워크 수수료)와 시세 변동 리스크는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 된다.

1,000만 원 이상 가상자산 이전 시 자동 의심거래보고(STR) 의무화에 따른 거래소들의 연간 인건비 증가 추정치. 일반적 자동화를 가정한 중간 시나리오에서도 연간 1300억원 이상의 막대한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료=DAXA]
미국 규제당국도 철회한 ‘가상자산 수취사업자의 거래거절 의무’를 신설한 점도 지적됐다. 개정안은 가상자산을 이전받는 수신사업자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한다. 송신사업자로부터 송신인·수신인 정보를 받지 못하면 거래를 거절해야 한다.

한서희 변호사는 미국의 선례를 인용했다. “FinCEN은 2020년 12월 비수탁형 지갑 거래에 신원확인 의무를 도입하는 규칙을 공고했다가, 비수탁 지갑의 본질적 특성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2024년 12월 최종 철회했다. 미국이 도입조차 하지 않은 규제를 한국이 더 강화된 형태로 도입하려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서희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경고한 대목은 규제 차익 문제였다. “지금까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가 자금세탁 추적의 거점(anchor) 역할을 해 왔는데 개정안이 시행되면 합리적인 이용자는 한국 거래소를 떠나 해외 거래소나 개인지갑으로 완전히 이주하게 된다”며 “완전히 해외로 떠난 국내 가상자산에 대해 규제당국은 자금세탁을 추적할 통제력을 오히려 상실한다”고 경고했다.

이미 2025년 한 해 동안 약 160조원에 달하는 한국 자금이 해외 거래소로 이동한 상황에서 규제가 강화되면 시행일 이전에 이탈이 압축적으로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 규제의 역설…‘풍선효과’로 자금세탁 위험 오히려 커져
입법 예고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 및 감독규정 일부개정안의 주요 조항별 시행 일정. 트래블룰 기준금액 폐지 및 비수탁 지갑 의무 등 파장이 큰 핵심 규제는 2027년 1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자료=법무법인 광장]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 좌장을 맡은 천창민 서울과학기술대교수는 “미국 재무부의 규제 변화가 곧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는 상황에서, 한국만 갈라파고스적 규제를 고집해선 안 된다”며 논의의 포문을 열었다.

이어 황석진 동국대 교수는 “현행 특금법 개정안은 자금세탁방지라는 본연의 목적보다 거래소와 이용자를 옥죄는 데 치중하고 있다”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되지 않도록 글로벌 정합성에 맞춘 법안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하게 꼬집었다.

산업 현장의 실질적인 우려도 제기됐다. 정상훈 전북은행 부행장은 “전통 금융권 입장에서도 지나치게 경직된 가상자산 규제는 핀테크 및 은행권의 블록체인 신사업 진출을 원천적으로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며, 획일적 통제가 아닌 위험 기반 접근(RBA)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영석 보난자팩토리 대표 역시 “과도한 규제로 자본이 해외로 이탈하면 과세 당국과 금융정보분석원(FIU)의 추적 가시권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는 셈”이라며 “국내 거래소를 자금세탁 통제의 안전한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트래블룰 및 신원확인(KYC)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규제 정합성을 맞추면서도 시장을 음성화하지 않는 스마트한 규제 설계, 즉 ‘비례적 위험관리’로의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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