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낸 한철] 거울 속의 고깔모자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2026. 5. 1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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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현국 시인·시와반시 주간

모자를 보면 사고 싶어진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 나는 자주, 모자가 진열된 매점 앞을 서성거리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저거다 싶으면 구입하는 버릇이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버릇 때문에 많은 모자를 갖게 되었다. 흔히 야구모자로 불리는 운동모 중심이지만, 페도라도 있고, 중절모도 있고, 밀짚모자도 여럿 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여기 저기 찾아보면 20여개는 족히 될 것 같다. 모자의 물리적 쓰임새는 햇빛 차단과 보온장치이고, 문화적 쓰임새는 멋 내기 패션이다. 나는 왜 모자를 보면 사고 싶어지는 것일까? 모자 없이도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고 처지인데도 모자에 대한 소유욕은 식을 줄 모른다. 왜 그럴까? 이른바 '그림자 (shadow)'가 문제이다. 카를 융이 말한 그림자란, 나 자신에게서 외면해 온 또 하나의 나이다. 예컨대 욕망, 이기심, 공격성, 질투 등 사회적 가면(페르소나) 뒤에 숨겨진 내면의 모습들이다.

엊그제 같은, 그러나 어느덧 70년 전 이야기이다. … 대책 없는 추위로부터, 고개를 넘고 물을 건너야 하는 십리 등굣길로부터, 당신의 어린 아들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는 아랫목에 내의를 묻고 흐린 호롱불 아래에서 밤늦도록 헤진 양말을 기우셨다. 까치소리가 허공에 얼어붙는 날이면 으레 세수한 손이 문고리에 쩍쩍 달라붙곤 했는데 그런 날이면 예외 없이 버선을 신기고 고깔모자를 씌워서 학교에 보내셨다. 명주로 만든 고깔모자와 솜을 넣어 만든 버선은 어머니 사랑이 아니라 하더라도 참 포근하고 따뜻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고깔모자 대신 나무꾼이나 사냥꾼들이 쓰고 다니는 국방색 방한모를 쓰고 싶었다. 구뎡 불란사로 수를 놓은 꽃버선이 아닌 아랫마을 아이들처럼 차라리 발가락이 다 나온 헤진 양말을 신고 싶었다. 사내답고 싶었던 것이다. 감추고 싶었던 여성성, 그 기표인 고깔모자와 버선이 모자 소유욕을 부추기는 그림자이겠다.

모자의 유례는 단순한 복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질서와 문화를 보여주는 상징의 역사이다. 그것은 각각, 신으로부터 위임 받은 통치권의 상징(중세)으로, 신분의 상징에서 계층적 취향(근대)으로, 계층보다는 사회적 기능(산업사회)으로, 개성과 자기 연출(현대)의 패션으로 그 주된 쓰임새가 이동 변모한다. 이동과 변모를 관통하는 모자의 쓰임새, 그 심리적 이면에는 '감춤과 드러냄'의 욕망이 있다. 인간은 보이기를 원하는 과시충동과 숨기고 싶은 은폐욕구를 가진 역설적 존재이다. 서부 총잡이들의 카우보이 햇과 방랑시인 김병연의 삿갓은 각각 과시충동과 은폐욕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감춤으로 드러내고 드러냄으로 감추는 양가적(兩價적) 이미지가 모자 쓰기의 미학이다. 두발상태를 감춘 모자는 허리 굽은 황혼을 드러내고, 우아함을 드러내는 플로피 햇은 출세한 여인의 좁은 어깨를 감춘다. 우리는 너나없이 감추려 할 때도 모자를 쓰고, 드러내려 할 때도 모자를 쓴다.

거울 앞에서 모자를 고쳐 쓰다 문득 손길을 멈출 때가 있다. 고깔모자를 쓴 어린아이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가 그러하다. 환상일까, 아니면 착시일까. 고깔모자 대신 국방색 방한모를 쓰고 싶어 했던 그 아이를, 나는 모자 끝을 매만지며 "그래, 그래. 미안해…" 하고 가만가만 다독여보곤 하는 것이다. 거울 속 아이와 거울 밖 나의 조우, 그것은 어쩌면 너무 오래 미뤄두었던 화해의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내게 있어 모자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이어주는 가장 은밀한 통로이다. 머나먼 그때 그곳, 대책 없이 추웠던 십리 등굣길을 되돌아본다. 그 시린 기억 위에 수많은 모자를 겹겹이 덧씌우며 살아온 세월. 내가 보낸 한철이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