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괴리되는 증시…트럼프에게 ‘전쟁 장기화’ 용기 주는 사상 최고치 경신 행진

미국 증시가 또다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 지수는 11일(현지시간) 사상 처음 7400을 돌파했고, 나스닥 지수도 26274.125로 장을 마감해 이전 기록을 또 한 번 깼다. 만약 미·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이 시작된 지난 2월28일 어떤 증시 전문가가 “호르무즈 해협이 5월까지 열리지 않더라도 증시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고 말했다면 그는 분명히 ‘사기꾼’ 취급을 받았을 테지만, 그 믿기지 않는 일이 지금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초대형 빅테크를 뜻하는 ‘M7’(매그니피센트7)에 편중된 주가지수, 인공지능(AI) 산업의 ‘대마불사’ 기대감, 증시를 자신의 성과 척도로 여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슨 일이 있어도 주가 하락을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는 ‘트럼프 풋’ 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증시와 실물 경제의 단절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일 미시간대학이 발표한 미 소비자 심리 지수는 48.2를 기록해 1952년 데이터 수집이 시작된 이래 최저점을 찍었다. 이는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2001년 9·11 테러,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때보다도 낮은 수치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주가지수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미국 경제에서 소비자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70%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소비 심리 위축은 통상 증시에 악영향을 미치지만, 이와 정 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진 못했던 듯하다. 그는 최근 CNBC 인터뷰에서 “나는 주가가 20% 또는 상당한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생각했다”며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증시가 치솟는 주요 동력은 AI 산업과 이를 이끄는 M7을 둘러싼 기대감 때문이다. 현재 S&P500 지수에서 구글·메타·아마존·애플 등 M7이 차지하는 비중은 30% 이상이다. 10년 전 약 12%에서 크게 증가했다. MSCI 월드 지수에서 엔비디아·애플·마이크로소프트 등 상위 10개 종목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에는 9%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5% 이상에 달한다.
무디스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마크 잔디는 “AI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승하는 기술 기업이 전체 시가총액의 절반을 차지한다”며 “AI에 대한 열광은 전쟁이나 다른 경제 상황과는 별개의 독자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트리오도스 은행의 이코노미스트인 한스 스테게만은 “지수가 이렇게 상위 일부 종목에 편중되면 이는 사실상 전체적인 경제 상황에 대해 거의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의 중개 자산 규모는 410조 달러에 달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배가 넘는다”며 “이는 2차 시장 거래의 대부분이 실물 경제와 사실상 단절된 채 금융 시스템 내에서만 재순환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증시가 ‘나 홀로’ 상승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소위 ‘트럼프 풋’ 효과다. 주가를 경제정책 성과 척도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가 하락을 절대 방치하지 않을 것이며, 만약 시장이 침체하면 증시를 다시 띄우기 위해 무엇이든 할 것이란 기대감이다.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인 카일라 스탠론은 “현재 시장에는 AI로 인한 생산성 증대 효과가 일자리 감소를 상쇄할 것이란 가치평가가 내재해 있다”며 “하지만 그보다 더 심오한 가정은 만약 AI가 실패하더라도 정부가 모든 지원책을 동원해 산업을 구제할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지적했다. 은행이 망하더라도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반드시 구제할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가 ‘AI 대마불사’로 전환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인 질리언 테트는 현실과 괴리된 증시의 ‘나 홀로’ 급등이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주식 시장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스탠론도 “만약 이란 전쟁 때문에 주식시장이 폭락했다면 이 전쟁은 일찌감치 끝났을지도 모른다”면서 “증시는 트럼프 정부가 시장 붕괴를 방치하지 않을 것이란 가정하에 이란 전쟁을 애써 외면하고 있고, 이는 세계 경제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시장은 전쟁을 오히려 추가 상승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발표했다가 유예하면 주가가 올랐던 것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문명을 없애버릴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가 이란과의 협상 내용을 유출하면 주춤했던 주가가 다시 오르는 식이다. 스탠론은 “위기가 콘텐츠가 되고 거래 대상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테트는 “미국인 중 주식을 보유한 사람은 62%에 불과하며, 자산가치 기준으로 상위 10%의 부유층이 전체 주식의 88%를 소유하고 있다”면서 “트럼프는 시장을 자신의 성공지표로 여기고, 투자자들은 시장을 미래 예측 도구로 볼지 모르지만, 사실 시장은 우리 세상을 아주 불완전하게 반영하는 거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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